Skip to content

www.cheewoo.net

* 아래에 보이는 "뷰어로보기" 기능을 이용하면 많은 게시물을 편하게 감상할 수 있습니다...^^

[치우생각] 수행은 정말 절대적일까? (신나이사이트의 아도비님께)

by 치우 posted Dec 19, 2009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수정 삭제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수정 삭제


안녕하세요? 아도비님~
저는 사과나무라고 합니다.
아도비님의 글을 읽고나서 생각이 참 많았습니다.
그것은 아도비님의 글이 제가 평소에 갖고 있던 생각과 많이 달랐기 때문입니다...^^
저는 소모적인 논쟁은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아도비님의 글처럼 정성과 진심이 담긴 글에는 가슴에서 많은 울림이 있기에
이렇게 부족한 생각이나마 함께 나눠 보고자 합니다.
지금부터 드리는 말씀은 경험도 부족하고 생각도 어린 저만의 생각입니다.
부디 님의 생각과 틀린점이 있더라도 넒은 마음으로 이해주시길 부탁드립니다.


먼저 아도비님께 드리고 싶은 말씀은
아도비님은 '다름'과 '우월함'에 대해서 혼동하고 계신듯 합니다.
신나이에서도 수 없이 반복되고
아도비님도 잘 이해하고 계시겠지만
'다름'이란 '다른것(틀린것)'일뿐 '잘못된것'이 아닙니다.
많은 사람들이 '다름'을 '잘못된것'으로 인식하고 반응합니다.
그러다보니 '틀리다'라는 말 조차도 '잘못됐다'와 동의어로 쓰입니다.
하지만 왼손과 오른손이 '틀리듯'
틀림은 그저 다른 뿐 잘못된것이 아닙니다.
다름 즉 다양성이란 생명의 본질이자 신이 우리에게 주신 축복입니다.


아도비님께서는
"신나이가 다른 종교나 가르침과 똑같다"라고 하셨습니다.
물론 모든 종교나 가르침의 본질은 똑같다고 말할도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신나이는 기존 종교나 가르침과는 분명히 다르다"라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그 '다름'이 우리를 지금 이순간 이곳으로 끌여 들였기 때문입니다.
신나이가 기존 종교나 가르침과 똑같다"고 한다면
우리가 지금 귀한 시간과 에너지를 소비하면서 지금 이곳에 있을 필요가 없겠지요.
그리고 이렇게 글로서 서로의 생각을 표현하고 있을 필요조차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신나이책을 읽고 이 사이트를 찾아 오시는 분들이라면
신나이의 메세지에서 기존의 것들과는 분명히 다른 어떤것을 느꼈기 때문일것입니다.
"신나이는 기존 종교나 가르침과는 분명히 다르다"라는 저의 말은
결코 신나이가 다른 것들보다 '우월하다'는 뜻은 아닙니다.
신나이도 그저 또 하나(다른)의 가르침이자 메세지라는 얘기입니다.


아도비님께서는 글속에서 계속해서 '다름'을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는 그 다름이 마치 잘못되었다는 식으로 말씀하셨구요.
하지만 저는 신나이의 그 다름이야 말로 신이 우리에게 주신 축복이자
우리가 지금 여기에 모여 있는 이유라고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아도비님은
"신나이가 다른 전통종교나 다른 가르침과는 전혀 다르다고 누가 말한다면
그것은 다시 신나이를 대단히 작고 협소하게 만드는 것이며
신나이가 다른 모든 영성을 포함하고 있다는 것이 아니라 신나이와 다른 모든 영성을 분리 시키는 일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지만 제 생각에 그말은 "신나이가 다른 전통종교나 다른 가르침 보다 우월하다고 누가 말한다면
그것은 다시 신나이를 대단히 작고 협소하게 만드는 것이며
신나이가 다른 모든 영성을 포함하고 있다는 것이 아니라 신나이와 다른 모든 영성을 분리 시키는 일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라고 말씀하시는 것이 더 적절한 표현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제가 만약 아도비님께 "저는 특별합니다"라고 말하면 그것이 다른 사람과 나를 분리시키는 일일까요?
그것이 과연 저를 대단히 작고 협소하게 만드는 일일까요???
저만 특별하고 저만 잘났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나와 다른 사람을 분리시키는 일입니다.
하지만 저는 저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이 다 특별하다고 생각합니다.
이것은 마치 눈송이 하나 하나의 모양이 다 틀리고 한 사람 한 사람의 얼굴과 개성이 틀린것 처럼
특별하다는 것은 그저 생명의 자기 표현일뿐입니다.
저는 자기 자신과 자신을 둘러싼 모든것들이 특별하다고 느끼는 것이 영성의 출발점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자기 자신과 자신을 둘러싼 것들이 특별하다고 느끼기 시작할때 비로서 우리는 그것들을 사랑하기 시작하기 때문입니다.
이 우주에는 똑같은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왜냐하면 모든 것이 살아있는 생명이기 때문입니다.


아도비님은 또한
"신나이는 그야말로 모든것을 포함하는 가르침이지요
그런데 그 신나이의 가르침을 해석하는 방향은 가지각색인것 까지는 좋은데
신나이와 외견상 다른 가르침에 대해서 누군가가 글을 올리면
그 즉시 비난하고 비꼬며 비추천과 함께 원색적인 공격이 이루어집니다."라고 하셨습니다.


아도비님은 마치 모든 신나이회원분들이
신나이와 다른 모든 종교나 가르침에 대해서 거부하고 배척한다고 말씀한다는 식으로 말씀하셨지만
과연 그런 비난과 원색적인 공격을 하는 분들이 몇분이나 되실까요?
몇몇 분의 글을 전체적인 생각으로 돌리는것은 다분히 문제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런 몇몇분들이 그런 반응을 하게된 이유도 분명히 고려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만약에 아도비님께서 신나이는 어떠한 고의적이고 악의적인 글이나 생각조차도
무조건 '다름'으로 인정하고 받아들여야 한다고 생각하신다면
저는 이렇게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그럼 그런 비난과 원색적인 공격을 하는 신나이회원분들도 그저 '다름'으로 인정하고 받아들이시라구요....^^


여기서 꼭 한가지 짚고 넘어가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자유와 방종에 대한 것입니다.
아도님의 말씀처럼 신나이 사이트에는 참 많은 사람들이 찾아옵니다.
그들은 다양한 방식과 표현으로 자신의 생각을 나눕니다.
그들중 어떤이들은 다른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고 어떤이들은 불편함을 줍니다.
저 또한 '다름'의 중요성을 잘 인식하고 존중하려고 노력 합니다.
신나이를 읽은 후로는 더더욱 그 메세지를 받아들이고 실천하려고 노력하고요.
많은 신나이분들도 그럴것입니다.


하지만 위에서도 말씀드렸듯이 어떤 분들은 계속해서 신나이에 맞지 않고 심지어는 완전 반대되는 이야기를 반복해서 하면서
많은 사람들을 불편하게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신나이사이트가 익숙하신 회원분들은 그러려니 하고 넘어가시겠지만
문제는 그런 몇몇 사람들의 행태로 인해서 이제 막 신나이 메세지를 만나서 신나이 사이트를 방문한 신입회원들에게
아주 막대한 부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과연 이런 경우에 신나이를 읽고 신나이의 가르침을 따라가려 노력하는 우리들은 어떻게 행동해야 할까요?
솔직히 저는 많은 경우에 '과연 예수님이나 부처님이 이곳에 계신다면 어떻게 행동하실까?" 궁금하기도 합니다...^^


저는 자유와 방종은 분명히 구분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적어도 우리가 깨달음의 경지에 오르기 전까지는 그렇습니다.
이해하기 쉽게 예를 들어 설명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
여기 "짜장면"의 참맛을 찾는 사람들이 있다고 합시다.
이 사람들은 맛있는 짜장면을 찾아 전국을 헤메었습니다.
40년 경력의 '손짜장'부터 시작해서 추억의 맛 '옛날짜장'까지....
이들은 전국을 누비면서 짜장면을 먹어 봤지만
뭔가 모를 아쉬움과 허전함을 느꼈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이들은 아주 재밌는 소식을 듣게 됩니다.
그것은 "신과 나눈 짜장면"이라는 책이 나왔다는 소식이었습니다.
책을 쓴 저자가 스스로를 "짜장면의 신"이라는 존재와 글로서 대화를 나눈것을 출판한 책이라고 합니다.


이들은 반신반의 하면서 그 화제의 책 "신과 나눈 짜장면"을 구입해서 읽어 보았습니다.
충격이었습니다. 감동이었습니다.
그들은 눈물과 웃음으로 범벅이된 짜장면을 야식으로 먹으면서
"신나짜"를  밤새 읽었습니다.


신나짜의 메세지는 아주 간결했습니다.
"모든 짜장면은 하나다"
"짜장맛은 환상이다"
"나(신)와 짜장면은 결코 분리될 수 없다"
그리고 짜장면의 참맛을 느낄 수 있는 많은 가르침도 이었습니다.


신나짜에 감동을 먹은 사람들이 모여
서울 종로 한귀퉁이에 "신과 나눈 짜장면집"을 만들게 됩니다.
그리고 많은 신나짜를 읽은 사람들이 "신나집"에 모여서
'신나짜'에 대해 토의도 하고 함께 짜장면을 즐기게 됩니다.


'신나짜'가 유명해지면서 많은 사람들이 '신나집'에 모이게 됩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습니다.
가끔씩 '신나집'에 와서 짬뽕을 달라고 요구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들은 '신나집'은 짜장면전문집이라서 짬뽕이 없다는 말에 분노를 하면서
"세상에 어떻게 짬뽕을 안 팔 수가 있느냐? 짜장면은 음식이 아니다.
짬뽕이야 말로 인생의 참맛을 간직한 진짜 진리다"라고 주장하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에 '신나집' 사람들은 저러다 곧 가겠지 하면서 기다렸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몇날 며칠을 그렇게 소란을 피우다가 사라졌습니다.
그리고 며칠뒤 다른 사람이 찾아와 또 짬뽕을 달라며 소란을 피웠습니다.
어떨때는 주인장 나오라면서 행패를 부리기도 하고
옆 테이블에서 맛있게 짜장면을 먹고 있는 사람들에게
"그게 맛있어요? 그걸 무슨 맛으로 먹어요? 그건 음식이 아니에요! 쓰레기에요, 쓰레기!"라고
막말을 하기도 했습니다.
처음 신나집에 왔던 그 손님들은 정색을 하면서 식당을 나가버렸습니다.


그렇게 점점 힘든 시간이 지나면서 신나집의 사람들은 회의를 하게 됩니다.
"여기에 와서 자꾸 짬뽕을 달라고 소란을 피우고 행패를 부리는 사람들을 과연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할까요?"
어떤이들은 아예 출입문에 경비를 세워서 짬뽕을 찾는 사람을 못들어 오게 하자는 의견도 있었고
또 어떤이들은 그 사람들도 사실은 짜장면이 먹고 싶어서 신나집에 왔지만 자존심때문에 짬뽕을 찾는 것 뿐이니 좀 더 기다리자고도 했습니다.
또 아예 우리도 짬뽕을 팔자는 의견도 있었습니다......^^


"우리가 주장하는 건 우리 짜장면이 세상에서 가장 맛있다는 것도 아닙니다. 우리의 짜장면도 그저 하나의 짜장면에 불과 합니다.
우리의 짜장면이 결코 짬뽕보다 더 낫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짬뽕은 짬뽕이고 짜장면은 짜장면이기 때문입니다.
'신과 나눈 짜장면집'은 그저 '신과 나눈 짜장면'을 읽고 거기에 감동한 사람들이 함께 모여서 '짜장면'에 대해 토론하고 즐기는 공간입니다.
신나집에 와서도 얼마든지 다른 음식에 대해서 얘기할 수 있습니다. 얼마든지 짬뽕맛의 황홀함에 대해 떠들 수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바라는 것은 그저 우리가 짜장면을 맛있게 먹는 것을 방해하지는 말아 달라는것입니다!"


===========================================================


아도비님이 만약 위의 상황이시라면 어떤 결정을 내리시겠습니까? ^^
저는 자신의 자유를 위해서 남의 자유를 침해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만약에 자기의 자유를 위해 남의 자유를 침해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전체의 이익을 위해서 그들에게 어떠한 조치가 취해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제 '수행'에 대해서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아도비님께서는
"수행자들에게 " 왜 수행하십니까? " 하고 질문하면 대체로 네가지 유형으로 대답을 합니다
첫째는 " 삶이 곧 수행인데 뭐하러 굳이 수행을 하지요? "
두번째로는 " 우리는 이미 깨달아있는데 뭐하러 수행하나요? "
세번째 유형은 " 잘 죽거나, 잘살기 위해서 "
그렇지 않으면 " 글쎄요 . . ." 하고 말끝을 흐립니다
위의 네가지 경우에서 보듯이 왜 수행하는지에 대해서 명쾌한 대답을 보여주거나
무엇때문에 수행하는지를 본인이 명확하게 알고 수행하는 경우는 드물다고 할수 있습니다."라고 하셨습니다.


저는 혹시 제가 위글을 잘못 보았나 싶어서 몇번을 다시 읽어 보았습니다.
왜냐하면 위의 질문은 "왜 수행하십니까?"가 아니고 "왜 수행을 안하십니까?"라고 해야지 맞는 대답이라고 느껴졌기 때문입니다.
저는 제 주위에서 수행하는 사람들을 많이 만나보지 못했습니다.
그만큼 수행하는 사람들이 많지 않다는 말이겠지요.
그리고 남에게 자신이 수행한다는 것을 인식시킬 정도의 사람이라면 어느 정도의 경지에 오른 사람일 것입니다.
그런 사람들에게 "왜 수행을 하십니까?"라고 물었는데
"삶이 곧 수행인데 뭐하러 굳이 수행을 하지요?"라고 대답하거나
"우리는 이미 깨달아 있는데 뭐하러 수행하나요?"라고 대답한다는 것은 동문서답이자 어불성설입니다.


수행을 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왜 수행을 안 하십니까?"라고 물었는데
"삶이 곧 수행인데 뭐하러 굳이 수행을 하지요?"라고 대답하거나
"우리는 이미 깨달아 있는데 뭐하러 수행하나요?"라고 대답한다면 수긍이 가겠지요...^^
저는 아직도 혹시 아도비님께서 위 글을 잘못 쓰신게 아닌가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게 아니라면 그저 '수행'을 게을리 하는 사람들에게 주신 일침같은 것을 수도 있겠구요...^^


아도비님은 우리가 수행을 하는 이유는 삶이 고통스럽기 때문이라고 하셨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 말씀에 동의할 수 없습니다.
저는 우리의 삶은 기쁨이며 축복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삶이 곧 신이고 신은 기쁨이자 사랑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아도비님은 우리는 깨달음의 상태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수행을 통해서 머리로 배운 진리를 체득하여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저는 그 생각에도 동의 할 수 없습니다.
수행이 깨달음으로 가는 하나의 길이고 권장할 만한 길이긴 하지만 절대적인 길은 아니라고 믿고 있기 입니다.
저는 깨달음이란 '인식'과 '의식'의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수행이 '인식과 '의식'을 바꿔주는데 도움을 줄 수는 있지만 절대적인 길을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실제로 깨달음을 찾아서 혹은 부처가 되기위해 아니면 신이 되기 위해서 열심히 수행을 하는 사람들은
수행에 대한 그런 열정이 또 다른 '집착'이 되어 그들을 평생 고통속에 머물게 합니다.
반대로 깨달음의 상태에 도달한 사람들중에 평생 그렇게 깨달음과 수행에 집착하다가
다 내려 놓고 수행을 포기하였을때 불현듯 깨달음을 얻은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저는 사람은 자다가도 깨달을 수 있고, 세수하다가도 깨달을 수 있고, 밥먹다가도 깨달을 수 있고,
화장실에서 똥누다가도 깨달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어렸을때부터 호기심이 많았습니다.
초등학교 6학년때부터 단전호흡이니, 마인드컨트롤이니, 최면술이니 이런 책들을 보면서 자랐습니다..^^
수행에 대한 열망은 있었지만 정식으로 배울기회를 갖지 못하고 그저 책을 보면서 한두달 따라 하다 잊혀지고
또 다른 책 사서 따라해보고 잊혀지고.... 뭐...늘 그 정도였습니다.


그러다가 제가 28살때인 2000년에 우연히 단학수련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단학수련을 통해서 신나이를 만나게 되었구요.
단학수련을 시작하고 일주일만에 2박 3일로 여름수련회에 참가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여름캠프에서 돌아오던 날 밤에
잠자리에 들었다가 생전처음으로 '기'라는 것을 체험하게 되었습니다.
깜빡 잠이 들었다가 깨어보니 오른손 손바닥에 무엇인가 엄청난 에너지가 모여 있었습니다.


그것은 눈에는 보이지 않았지만 마치 전기에 감전된 것과 비슷한 느낌이었습니다.
하지만 110볼트, 220볼트 정도가 아닌 몇백만볼트 아니 그 이상의 엄청난 힘이었습니다.
속으로 "우와! 이정도 힘이라면 지구도 파괴 할 수 있겠다"라는 생각이 들정도 였으니까요....^^
영화나 다큐멘타리같은것에서 보았던 핵폭탄보다 더 강하다는 느낌이었습니다.
한 10여초 정도 손바닥에서 기를 느끼다가
'기를 단전으로 보내야 하는데....'라고 생각하는 순간,
손바닥에 있던 기가 팔을 타고 가슴을 지나 아랫배로 슉~ 하고 사라져 버렸습니다.
저는 너무나 놀랐고 충격을 받아서 잠시동안 멍하니 누워 있었습니다.
꿈이 아니라는 것은 너무 확실했습니다.
왜냐하면 팔에 있는 기가 지나간 길에 '찌릿찌릿'한 느낌이 그대로 남아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 느낌은 약 일주일정도 지속되었습니다.


그렇게 첫번째 기체험을 한뒤
거의 2-3일 간격으로 기체험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것들은 언제나 제가 잠이 들면 찾아 왔습니다.
깜빡하고 잠에 빠졌다가 전기같은 기의 느낌에 잠에서 깨었습니다.
비록 첫번째 체험처럼 강렬하진 않았지만 참 신기하고 재밌었던 체험이었습니다.


그렇게 약 3개월이 흐른 어느날,
저는 제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체험을 하게 되었습니다.
역시 잠자리에 들었다가 문득 정신을 차려보니 제가 한강강변에 앉아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이상한 소리가 나서 귀를 귀울였는데 어느틈에 다시 잠자리에 누워있더군요.
그런데 그 이상한 소리는 계속 들렸습니다.
그래서 계속 그 소리에 귀를 기울이다가 그 소리가 제 몸이 내는 소리임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제가 그 소리가 제 몸이 내는 소리임을 깨닫게 된 순간 저는 순식간에 다시 한강변에 앉아 있었습니다.
그리고 한강변에 앉아 있던 제가 갑자기 쭈욱하고 커졌습니다.
그리고 한강에 있던 제가 커지는 순간 제방에 누워 있던 제몸의 가슴에서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기쁨의 에너지가 마치 샘물처럼 솟아 나왔습니다.
그 에너지가 제 몸과 몸속의 세포 하나하나까지 다 적시는 그런 기분이었습니다.
그렇게 저는 한강에서 커지던 저와 방안에서 기쁨의 에너지에 젖어 버린 저,
두개의 나를 동시에 느꼈습니다.
그리고는 제가 하늘에 거의 닿았을때쯤 들리던 소리가 작아지더니
저는 다시 방으로 돌아왔고 깨어났습니다.


저는 처음에 이것이 무슨 체험인지도 몰랐습니다.
그저 제가 영혼을 느낀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약 3년쯤 뒤에 저는 제가 했던 체험이 유체이탈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아무튼 이 체험뒤에 저는 심각한 고민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제가 저의 영혼을 느끼고 나니 다른 사람들에게도 영혼이 있음은 물론
동물들에게도 나의 영혼처럼 그렇게 기쁨을 주는 영혼이 있다는것이 너무나 명확하게 느껴졌기 때문입니다.
저는 그렇게 기쁨을 주는 영혼을 가진 동물을 먹을 수가 없었습니다.
결국 저는 그 체험으로 인해서 채식을 하게 되었습니다.


제가 여러가지 기 체험과 유체이탈 체험을 한뒤 가졌던 한가지 의문점이 있습니다.
그것은 '과연 내가 왜 그런 체험을 했는가?'였습니다.
내가 수련을 오래 했던것도 아니고 남들보다 열심히 했던것도 아닌데 도대체 내가 왜 그런 체험을 하게 되었단 말인가?
단학수련을 시작한뒤 일주일만에 수련회에 갔는데 수련을 했으면 얼마나 했고
열심히 했으면 얼마나 했겠습니까?
그런데 저는 제 인생에서 정말 충격적이고 또 소중한 체험들을 연이어 하게 된것입니다.


오랜 고민과 사색끝에 제가 내린 결론은 '마음'이었습니다.
수련 또는 수행이란 시간이 중요한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흔히 수련을 30년하면 30년의 내공이 쌓이고 60년하면 60년의 내공이 쌓인다는 식으로 생각합니다.
하지만 기라는 것은 정지해 있는 에너지가 아닌 흐르는 물과 같습니다.
때문에 이것은 결코 몸속에 가두어 둘 수있는 것이 아닙니다.
단지 수련을 오래 하면 할 수록 우리는 우리 몸으로 들어오는 에너지의 량을 더 많이 늘리게 됩니다.
왜냐하면 우리몸으로 에너지가 들어오는 관문은 바로 마음이기 때문입니다.
즉 오래하면 오래 수련할 수록 우리의 의식은 더욱 집중되고 마음의 문은 점점 더 많이 열리게 된다는 말입니다.
하지만 이말이 꼭 수련을 오래해야 마음의 문이 열린다는 것은 아닙니다.
할 수만 있다면 마음의 문은 단 하루만에도 또는 단 1시간 또는 1초만에도 얼마든지 열릴 수 있습니다.
마음의 문을 얼만큼 열것이가는 전적으로 우리 자신에게 달려 있기 때문입니다.


제가 채식을 시작하고 나서 저는 육체적, 정신적으로 많은 유익을 얻게 되었습니다.
제가 채식이 얼마나 좋은지 체험하고 나니까
세상에서 가장 오래 사는 사람은 당연히 공기 좋은 산속에서 채식과 소식과 수행을 하시는 스님들이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런 스님들은 거의 100세를 넘기지 못하시더군요.
오히려 적당히 고기도 드시고 생선도 드시고 또 술과 담배까지 하시는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100세를 넘어서 오래 오래 사시더군요.
저는 이부분이 정말로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오랜 시간동안 제가 고민한 그 문제에 대한 대답은 역시 '마음'이었습니다.


원칙적으로 따지자면 깊은 산속에서 채식과 소식 그리고 수행을 하시는 스님들이 가장 오래 사셔야 할 것입니다.
하지만 그 분들은 '마음의 감옥'에 갇혀 사십니다.
바로 '자신들은 깨달아야 한다'는 생각과 교리에서 말하는 여러가지 규칙과 금칙들(하지마라, 해라)....
즉 다시 말씀드리지만 스님들의 마음은 그들의 삶과 하나되지 못했다는게 저의 생각입니다.
그렇게 때문에 그렇게 최고의 환경을 갖고도 그것밖에 살 수 없는 것이지요.
반대로 시골에 사시는 할아버지, 할머니들은 최고의 환경은 아니지만 만족을 느끼면서 행복하게 사십니다.
비록 고기와 생선, 그리고 술과 담배같은 것들도 드시지만
그분들의 마음이 완전하게 그것들을 받아 들이시기 때문에 그것들은 그분들께 그다지 해가 되지 않는것입니다.


비슷한 예로 '세상에 이런일이'같은 프로에 자주나오는 신기한 사람들을 들 수 있습니다.
쇠를 먹는 사람, 흙을 먹는 사람, 썩은 고기만 먹는 사람, 라면만 먹는 사람, 또는 커피나 설탕, 미원, 후추가루 같은 것들을 너무 많이 먹는 사람,
심지어는 형광등을 먹는 사람까지 참으로 다양하고 이상한것을 먹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정말 신기한 것은 그런 사람들의 건강에 아무 이상이 없다는 것입니다.
왜 그럴까요? 바로 마음때문입니다.
그들의 마음이 자신들이 좋아하는 것들을 완전하게 받아 들였기 때문입니다.


모든것은 바로 마음에 달려 있습니다.
깨달음에 이르는 길도 결국 마음에 달려 있습니다.
깨달음은 수행이 아닌 의식과 인식의 문제인데 그 의식과 인식을 변화시키는 열쇠가 바로 마음이기 때문입니다.
바로 이런 이유로 저는 신나이의 메세지를 특별하게 생각합니다.
그것이 비록 지금 당장 우리들을 깨달음의 상태로 옮아가게 만들지는 못하지만
우리가 그 길을 찾아 갈 수 있는 나침반(내면의 소리)을 선물해주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덧붙여서 우리에게 진정으로 우리 자신을 사랑하게 하고 또 신을 사랑하게 해줍니다.
우리에게 희망을 보여주고 우리의 가슴을 뛰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아도비님은 삶이 고통이고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수행을 통해서 그 고통을 극복해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하지만 저는 삶은 기쁨이고 우리가 해야할 일 또는 하지 말아야 할 따위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인생은 우리가 즐겨야 할 축제이지 숙제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럼 과연 수행은 누구의 몫일까요?
그것은 그저 개인의 선택일뿐입니다.
수행을 하고 싶은 사람은 수행을 하면 되고
책을 읽고 싶은 사람은 책을 읽으면 되는 것입니다.


저 또한 언젠가는 목숨을 걸고 수행을 할 생각입니다.
언젠가는 꼭 신과 담판을 짓고 싶거든요....ㅎㅎㅎ
하지만 지금은 아닙니다.
다시 한번 저에게 가슴이 터질것 같은 기쁨이 찾아오면 그때 저는 도박을 해볼 작정입니다.


저는 인간은 영생할 수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저는 죽음은 극복될 것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저는 더 이상의 환생은 하지 않기로 선택했습니다.
저는 신의 자녀들인 인간은 이땅위에서 모든 풍요를 누릴 권리가 있다고 믿습니다.
저는 영성의 진화를 위해서 노력하는 사람들은 모두 가난해야 한다는 생각에 동의하지 않습니다.
저는 천국이란 바로 지금 여기(이 물질우주와 지구)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모든 사람들이 예수님이나 부처님 또는 초인생활에 나오는 성인들처럼 신의 자녀가 가진 능력을 사용하면서 사는 것이 마땅하다고 믿습니다.


아도님께서는
"수행자에게는 모든것이 수행을 위한 최소한의 것이여야 합니다. 수행자가 의복, 거처, 음식, 약품들을 가질때는 수행을
하기위해 최소한의 건강만을 유지하기 위한 것이여야 합니다. 수행을 하기위한 최소한도의 필수품둘울 초과해서 가질때
바로 그곳에 탐욕이 생기고 그 즉시 더 가지고자 하는 욕망으로 인한 고통이 생기게 되는것입니다. 수행자는 적게 먹고,
적게 자고, 적게 가지며 많이 수행해야 합니다."라고 하셨습니다.


수행자가 적게 먹고, 적게 자고, 적게 가지며 많이 수행해야 하는건 맞지만 그 이유가 탐욕 때문은 아닙니다.
수행자가 적게 먹고, 느리게 호흡하고, 적게 자야 하는것은 바로 에너지의 이동원리 때문에 그러합니다.
인간은 삼중의 존재입니다.
인간은 몸과 마음과 영혼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이것은 단학에서는 정, 기, 신으로 표현합니다.
그런데 인간 뿐만 아니라 모든 우주만물은 이 삼위일체의 속성을 갖고 있습니다.
즉 모든 만물속에는 정(몸체), 기(마음, 에너지), 그리고 신(영혼, 의식)이 있다는 말입니다.
이 세가지 극성은 서로 상호보완하면서 진화해 갑니다.


우리 몸에 정기신이 있듯이
음식에도 정기신이 있습니다.
인간중에도 정(몸)이 강한 사람, 기가 쎈 사람, 신이 높은 사람이 있듯이
음식 또한 그렇습니다.
음식중에는 정기가 강한 음식이 있습니다. 이른바 보양식이라고 하는 음식들입니다.
이런 음식속에는 많은 정에너지가 들어있습니다.
때문에 이런 음식을 먹으면 몸이 강해 집니다.
또한 음식중에는 기가 강한 음식이 있습니다.
기가 강한 음식중 가장 유명한 것은 삼산입니다.
죽은 사람도 살린다는 삼산의 효능은 바로 강한 기의 작용입니다.
또 음식중에는 신에너지가 강한 음식이 있습니다.
이른바 대마초와 같은 약초들입니다.
이런 약초들은 환청이나 환각을 일으키기도 하지만 어떤것들은 영적인 세계를 보여주는 다리역할을 하기도 합니다.
북미나 남미의 원주민들은 이런 약초들을 이용해서 병을 고치기고 하고 예언을 하기도 했었습니다.


음식뿐만 아니라 병의 치료법에도 정기신의 구분이 있을 수 있습니다.
우리가 흔히 접하는 서양의학은 정(육체)적인 치료법입니다.
몸을 꼬매거나 자르거나 몸에게 약물이나 주사를 투여해서 병을 치료합니다.
반면 침술이란 침으로 신체의 경혈에 자극을 주어 기의 흐름을 조절하여 병을 치료합니다.
바로 기적인 치료법입니다.
마지막은 바로 신적인 치료법으로 이것은 영적, 종교적, 또는 심령치료법을 말합니다.


정기신 세가지 에너지중 정의 에너지가 가장 낮고 느리며 신에너지가 가장 높고 빠릅니다.
때문에 우리가 얻는 효과도 정에너지가 가장 느리고 신에너지가 가장 빠릅니다.
정기신 에너지는 서로 분리뒤어 있는 것이 아닌 하나의 몸을 구성하는 속성입니다.
때문에 한쪽의 에너지가 고갈되면 다른쪽의 에너지가 이동해서 그것을 채워줍니다.


보통 우리들은 음식을 통해서 정에너지를 보충받습니다.
하지만 계속해서 음식을 먹게 되면 정에너지는 늘 가득 차있게 되고
그렇게 되면 상위 에너지인 기와 신에너지 또한 움직일 수 없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채식이나 소식, 단식과 같은 방법으로
우리몸으로 들어오는 정에너지의 량을 줄이게 되면
결국 부족해진 정에너지를 채워주기 위해서 기에너지가 밑으로 내려오게 됩니다.
그리고 신에너지는 기에너지를 채우기 위해서 아래로 내려오고요.
운동(에너지의 이동)이 있기 위해서는 '공간(비움)'이 필요하다는 말입니다.


단학수련이나 단전호흡같은 수련법에서 호흡을 천천히 하는것도 같은 원리입니다.
호흡은 음식처럼 완전히 끊어 버릴 수 없기에
최대한 천천히 호흡을 하면서 일종의 호흡의 부족상태를 만드는 것입니다.
이것은 바로 '기에너지'의 고갈을 만들어 내고 그렇게 되면 결국 신에너지가 부족해진 기에너지를 보충하게 됩니다.


잠을 자지 않는것 또한 마찬가지 입니다.
우리가 잠을 자지 않게 되면 신에너지가 부족하게 되어 우리의 몸은 부족해진 신에너지를 보충하기 위해 정에너지를 끌어 올립니다.
아울러 잠이 아닌 의식을 통해서 더 많은 신에너지(영적에너지)를 받아 들이기 됩니다.
때문에 진정 깨달은 사람은 잠을 잘 필요가 없습니다. 물론 먹을 필요도 없겠지요?^^
바로 이런 이유로 수행하는 사람들은 적게 먹고, 적게 자고, 느리고 호흡해야 하는것입니다.


지금까지 그냥 아도비님의 글을 보고 저의 생각을 말씀드렸습니다.
혹시나 저의 부족한 글이 아도비님의 기분을 상하게 하지 않았나 모르겠습니다.
제 생각이 아도비님의 생각과 많이 다르더라도 그저 '다름'으로 이해하고 용서해 주시길 부탁드리겠습니다.
아도비님도 그러시겠지만
저도 글쓰는데 시간이 많이 걸립니다...^^
하지만 오늘은 정말 즐겁고 감사한 마음으로 썼습니다.
아도비님 덕분에 다시한번 저 자신과 제 생각을 돌아볼 수 있는 소중한 기회를 얻은것 같습니다.
다시한번 그런 좋은 기회를 주신 아도비님께 감사와 사랑을 전합니다.
그럼 용맹정진하셔서 꼭 성통공완하십시요..!!!


사랑합니다....*^^*




2009해 12달 19날 이른 아침에


-사과나무 올림-



Powered by XE / Designed by Sketchbook / Created by Cheewoo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

나눔글꼴 설치 안내


이 PC에는 나눔글꼴이 설치되어 있지 않습니다.

이 사이트를 나눔글꼴로 보기 위해서는
나눔글꼴을 설치해야 합니다.

설치 취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