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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태공동체

귀농의 의미와 역할

by 치우 posted May 14,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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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농의 의미

몇 년 전 IMF 파동으로 인한 경제위기 상황에서 귀농은 큰 관심사가 되었다. 당시 일자리를 잃은 많은 사람들은 귀농에 관심을 가졌고, 언론과 정부 역시 귀농을 실업극복의 대안으로 집중적으로 다루었다.
그러나 당시 언론이 다루었던 것은 고실업의 상황이 당분간 계속되리라는 전망과 귀농성공사례 등을 중심적으로 소개하는 것이 고작이었다. 그리고 그러한 분위기마저 IMF 파동이 비상국면을 벗어나게 되면서 '탈농이 진행되고 있다'라는 기사와 함께 수그러들었다.

그러나 우리는 이로부터 매우 중요한 사실을 깨닫게 된다.

첫째, 현재의 귀농은 우리 사회가 살아남기 위한 자연적 순환의 표현이라는 것이다.
생명의 논리에서 귀농은 단순히 도시에서 농촌으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본래의 근원자리로 돌아가고자 하는 인간의 회귀본능이다. 개인적인 차원에서 보면 아버지대로만 거슬러올라가도 누구나 농촌을 고향으로 가지고 있는 우리 나라 사람들은 농경사회의 기억을 유전자처럼 간직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 사회는 그 동안 산업화와 도시집중화의 물결 속에서 농촌으로 되돌아오는 순환시스템이 단절되어 있었다. 산업화, 도시집중화의 물결을 한곳으로만 흘렀다. 도시는 도시대로 고인물처럼 썩어가고 농촌은 농촌대로 가뭄 논처럼 피폐해졌다. 귀농은 바로 이처럼 썩어가고 있는 사회를 살릴 수 있는 순환시스템인 것이다.

둘째, 그러나 이러한 순환시스템이 인간의 주체적 실천으로 준비되지 않으면 자본주의 사회는 또한 폭력적으로 이러한 순환구조에 인간을 던져넣을 것이라는 점이다.
고도화된 자본주의는 마치 전쟁터와 같다. IMF 파동 뿐 아니라 곳곳에 경제위기의 복병이 도사리고 있다. 군인 한 사람의 가치가 총 한 자루보다 귀중하지 않은 전쟁과 마찬가지로 자본주의 사회 역시 상품이 주인이며, 인간은 언제나 퇴출 위기에 있는 소모품과 같은 처지에 몰려 있다.

셋째, 농업은 전근대적인 산업이 아니라 우리의 미래를 지켜줄 가장 중요한 생명산업이요 미래산업이라는 사실이다.
아무리 과학이 발달하고 물질적으로 풍요롭다 해도 생명을 유지하는 근간은 농업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아직도 여전히 농업, 농촌, 농부를 과거의 시각에서 바라보고 있다. 농업은 이미 한물 가버린 전근대적 산업이고, 농사를 지어봐야 수익성도 없으니 차라리 공산품 수출을 지향하고 농산물은 수입에 의존하는 편이 훨씬 경제적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몇 가지 사실로부터 우리는 귀농이 가지는 진정한 의미를 종합해볼 수 있을 것이다.
귀농은 역사의 피할 수 없는 흐름이다.
귀농의 출발점은 단순히 먹고 사는 문제가 결코 아니다. 그러한 관점에서 귀농을 바라본다면 세상의 모습을 제대로 바라보지 못하는 것이다. 세상은 변하고 있다. 자본주의도 흔들리고 있다. 자본주의가 영원한 시스템일 수는 없다. 적어도 오늘의 자본주의가 경제논리에만 빠져서 모든 문제를 경쟁력과 생산성으로 해결하고자 한다면 그 자본주의의 위기는 더 빨리 다가오게 될 것이다.

과거의 귀농은 그 시대적 상황에 맞게 행해졌을 수밖에 없다. 급변하는 21세기에 여전히 기존의 고정관념으로 귀농을 바라보는 것은 21세기를 사는 우리의 자세가 아니다.
한 개인의 올바른 귀농은 농촌을 살리고 사회를 개혁하고 인류를 구할 수 있다. 그러나 한 개인의 잘못된 귀농은 농촌을 죽이고 사회를 타락시키며 인류를 공멸하게 만든다는 점을 분명히 인식해야 할 것이다.

불교는 좀처럼 사회운동에 참여해 오지 않은 종교다. 출가자의 입장에서 현실의 일에 관여하는 것은 바람직스럽지 못하다는 사고 때문일 것이다. 어떤 의미에서는 모든 선악을 구분하지 않고 수용하는 불교의 특성때문이라고도 말할 수 있다.

그러나 과거 추세가 어떠했든 최근 사회적으로는 불교의 역할에 대한 중요성이 커진 것은 분명하다. 선과 악, 자연과 인간을 명확하게 구분하여 우열짓는 서구의 2분법적 사상이나 자연의 모든 것을 과학적으로 분석하고 이론화할 수 있다는 과학적 합리주의로는 더 이상 우리가 당면하고 있는 문제들을 해결할 수 없는 한계에 도달했기 때문이다.

오늘날 인간은 생산성증가에 의한 물질적 풍요와 과학발달에 의한 생활의 편리함을 마음껏 누리고 있으나 그것을 누리는 대가로 희생된 손실은 엄청나게 크다. 자연생태계의 무참한 파괴와 온갖 생명체에 대한 멸종위기, 극심한 환경오염은 우리가 당면하고 있는 가장 심각한 문제다. 그런데 오늘날의 문제점을 가장 쉽게 해결할 수 있는 해답을 가지고 있는 사상이 바로 불교적 사상이다. 이와 같이 훌륭한 사상적 기반에도 불구하고 불교가 오늘의 문제를 인식하지 못하거나 아니면 알면서도 모른 채 한다면 아무리 불교가 뛰어난 종교라 할지라도 스스로 존재의미를 부정하는 것이 될 것이다. 따라서 지금은 지구를 위하여, 인류를 위하여, 나아가 온우주의 생명을 위하여 불교의 사상을 적극적으로 서구사상에 결합하여 미래를 열어갈 새로운 패러다임을 탄생시키는 일에 불교가 적극적으로 참여해야만 한다.

귀농운동에 있어서도 불교가 사상적 기반을 제공할 때 귀농이 갖는 의미도 크게 달라진다. 다시 말하면 귀농운동이 단순히 개인의 유기농업, 환경농업, 생태농업운동의 차원에 머무르지 않고 미래적이고 사회의 변화를 이끌어 가는 의식운동으로서 의미를 지니게 되는 것이다. 사회적으로 농사와 같은 힘든 일에 있어서도 땀의 가치, 노동의 가치가 높이 평가되고 수행과 농사가 하나로 되는 선농일치가 최고의 목표이듯이 삶의 목표도 삶과 수행이 하나된 상태가 되어야 한다. 이처럼 불교가 사회적인 역할의 충실히 할 때 곧 불교 스스로도 내부의 변화와 혁신으로 연결되어 진다.
그런 측면에서 99년 9월에 창립한 인드라망생명공동체 운동은 중요한 의미가 있는 셈이다.

 

인드라망생명공동체가 지향하는 귀농

 

(1) 깨달음을 지향하는 귀농

IMF 경제위기를 겪으면서 우리는 냉혹한 자본주의 경제 시스템을 확인하였다. 그처럼 열심히 자기 일처럼 일했지만 하루 아침에 버려졌다. 마치 소모품의 용도가 끝나면 폐기되듯이 수많은 사람들이 기업이나 조직으로부터 길거리로 쫒겨났다. 자본주의 사회는 끝없는 경쟁을 통하여 비인간화를 요구한다. 이윤추구를 위해서 인간성은 말살된다. 자본주의 현실은 우리의 희망이 아니라 무덤임을 깨달아야 한다.

오늘과 같은 극단적 경쟁을 추구하는 자본주의하에서 인간은 더 이상 인간으로서의 존재가치를 가질 수 없다. 삶의 주체는 분명 자기 자신임에도 불구하고 자기의 의지에 의해 자기의 삶을 살지 못하고 타율적인 삶을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현실 탓만 한다.

귀농은 자기 자신을 돌아보는 데서 시작되어야 한다. 자신의 의식, 행동, 삶의 방식에 대한 철저한 반성을 통해 이루어져야 한다. 그리고 자신의 존재가치의 중요성을 깨달아야 한다. 인생은 짧다. 그런데 이 짧은 인생동안 자기가 원하는 대로 살아도 부족할 터인데 어쩔 수 없는 현실 때문에 괴로워하면서 살아간다.

자기 자신의 주체는 다른 사람이 아니고 자기가 다니는 회사도 아니다. 바로 자신이다. 그러므로 자기가 원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억지로 떠밀려서 하는 귀농이 되어서는 안된다. 진정으로 자기 삶의 주인으로서 떳떳하고 당당하며, 자연과 모든 생명체와 화해하는 농부가 되는 귀농이 되어야 한다. 그때 비로소 현실에 대한 불안감을 떨칠 수 있다.

물질과 경제적 기준에서 바라보는 삶의 방식에서 벗어나 마음의 평화와 자유를 얻는 귀농이 될 수 있다. 그것이 곧 깨달음의 귀농, 부처의 귀농이 아닐까?

 

(2) 생태적 가치를 지향하는 귀농

불교적 가치는 생명존중의 가치이다. 불교적 가치는 인드라망 세계관이다. 천상천하유아독존(天上天下唯我獨存)이다. 이 세상 모두가 '나' 아닌 것이 없음은 우주만물이 한몸·한생명임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귀농운동은 인간의 각성을 촉구하는 운동이다. 우주만물이 평등함을 깨달아야 한다. 기존의 인식처럼 인간이 자연의 지배자로서 마구 파괴하고 죽여서는 안되고 인간과 자연간에는 우열이 없음을 깨달아야 한다. 자연이 살아야 인간도 살고 자연이 죽으면 인간도 죽는다.

이 지구의 자연생태계는 우리 후손의 것이다. 우리도 조상으로부터 물려받았듯이 우리 후손에게 잘 보존하여 물려줄 수 없다. 우리는 현재 우리 후손에게 죽음의 생태계를 물려줄 상황에 처해 있다.

지금부터라도 살리는 노력을 해야 한다. 귀농하여 가장 먼저 해야할 일은 죽어가는 땅부터 살리는 일이다. 땅은 모든 생명체의 자궁이요 무덤이다. 모든 순환의 시작점이자 종착점이다. 우리가 돌아갈 근원자리이다. 농사는 생명을 창조하는 일이요 농부는 생명을 가꾸고 지키는 소임을 맡은 사람이다.
이런 신성한 일을 하면서 어찌 함부로 자연에 대한 무자비한 학살을 자행하는가? 우리 후손에게 결코 부끄러운 귀농이 되어서는 안되겠다.

 

(3) 지역적 가치를 지향하는 귀농

지역의 가치는 지역의 사람, 역사, 문화, 경제, 자연, 환경이 유기적인 관계 속에서 나타나는 지역의 정체성이다. 한 지역의 가치는 다른 지역과 차별화되기 때문에 소중한 것이다. 세계가 하나로 글로벌하게 될지라도 지역의 고유가치는 소중히 이어져야 한다. 지역의 가치를 버리고 세계가 동일한 가치로 획일화되는 것은 결국 힘있는 자의 가치로 귀결되고 모든 이익은 힘있는 자들의 손으로 넘어갈 것이다.

이러한 지역가치를 이용하여 인드라망이 추구하는 귀농은 지역자립과 지역공동체이다. 지역자립은 인적자립과 물적자립이다. 그 지역민 누가 그 지역을 위해 열심히 일하는가가 중요하지 중앙에서 누가 출세하였는가가 중요하지 않다. 그러므로 그 지역과 지역주민을 위하여 자신의 역량을 다 쏟아낼 수 있는 인재를 키우는 것이 중요하다.

지역의 물적자립은 지역안에서 생산과 유통이 해결되어야 한다. 우리 나라의 농부가 미국의 소비자를 향하여 농산물을 생산하고 유통시키는 것은 결코 바람직스럽지 않다. 남원 실상사에서 생산된 농산물들이 서울의 소비자들을 대상으로 판매되는 것 또한 옳지 않다. 미국의 농산물은 미국내에서, 한국의 농산물은 한국내에서, 남원의 농산물들은 남원에서 유통 소비되는 것이 바람직하다.

귀농인은 철저한 지역인이 되어야 한다. 죽을 때까지 지역민으로서 지역을 사랑하고 지역을 지키는 마음이 있어야 한다. 설사 그 지역이 아무런 연고도 없는 객지일지라도 일단 귀농하게 되면 그 순간 나의 고향이나 다름이 없다.
귀농인은 지역의 외로운 섬이 되어서는 안된다. 지역의 모든 가치가 유기적인 관계를 맺고 하나의 지역공동체를 형성할 수 있도록 앞장서 노력하여야 한다. 지역의 공동체는 지역의 가치를 바탕으로 한 교육, 복지, 문화, 경제문제를 해결해 나가야 한다. 그러한 역할은 귀농인 개개인의 역할도 중요하지만 지역사찰과 같은 지역과 오랜 연고를 가진 기관, 지역주민단체에서 지역의 중심이 되어 추진해나가는 것이 바람직스럽다.

 

(4) 공동체적 가치를 지향하는 귀농

농촌이 시장경제에 편입되면서 무너진 것은 농촌의 경제만이 아니다. 본래 농촌이 가지고 있던 고유한 정신, 두레정신, 공동체적 정신이 무너져 버렸다. 이런 상황에서 농촌이 발전돼서 소득수준이 높아진다고 전통적인 상부상조의 정신이 반드시 회복되는 것은 아니다.

21세기에는 농촌의 발전개념이 달라져야 한다. 농가 가구당 소득수준이 높아져서 잘사는 농촌이 된다고 해서 농촌이 발전된 것은 아니다. 농촌의 진정한 발전은 살기 좋은 농촌이 되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소득수준이 높으면 바람직스럽겠지만 소득이 높지않더라도 주민들이 서로 마음과 힘을 모아 협동하고, 마을 주민간에 화합하고 상부상조하는 마을을 만드는 것이 진정한 발전인 것이다. 과거 우리의 전통적인 농촌마을 공동체처럼 인정이 넘치고 고통과 어려움을 함께 나누어 극복하는 농촌의 모습을 회복하여야 한다.

자신의 가치관을 바꾸고 삶의 방식을 바꾸는 것은 올바른 사회를 만들기 위한 사회조직원의 당연한 노력이다. 귀농인은 공동체를 만들고 전통적인 농촌두레마을을 만들고 지역협력체를 만드는 일에 앞장서야 한다. 귀농은 개인적인 편안함을 추구하는, 도사가 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이 사회의 모순을 개혁하고 더불어 함께 살아가기 위한 거대한 흐름을 만들어야 한다.

따라서 인드라망의 귀농은 귀농은 개인귀농으로 끝나지 않는다. 귀농인은 그 지역 생산자들과 일종의 생산자공동체(예를 들면 영농조합, 작목반등)를 조직하여 노동, 생산, 가공 등의 문제를 공동으로 풀어가야 한다. 또한 생산자들은 도시의 소비자들과 큰 틀의 생산자-소비자 공동체(일종의 생협)를 통해 유기적 관계를 맺어야 한다. 즉, 생산자는 소비자의 생명을 책임지고 소비자는 생산자의 생존을 책임지는 공동체적 관계를 형성하여야 한다. 이러한 관계가 성립되면 생산자와 소비자의 관계는 단순히 농산물을 팔고사는 경제적 거래관계가 아니라 끈끈한 정으로 맺어지는 인간관계, 신뢰관계를 형성하게 되는 것이다.

역사는 흐른다. 흐르지 않고 변하지 않는 역사는 없다. 현실도 언젠가는 역사의 과거속으로 묻히기 마련이다.
일반적으로 어떤 일을 하면서 우리는 흔히 현실의 잣대로 판단한다.
그러나 현실은 미래에서 보면 항상 과거일 뿐이다. 현실과 미래의 잣대가 동시에 준비되지 않으면 변화가 없다. 항상 과거에서 헤맬 뿐이다. 현실보다 더 나은 미래를 바라보며 나아갈 때 역사는 긍정적인 변화를 가져오는 것이며 희망이 있는 것이다.
자본주의는 영원한 사상이 아니다. 물질중심적 사고로는 21세기로 나아갈 수 없다. 불교의 색즉시공, 공즉시색을 깨닫지 않으면 우리의 미래는 없다. 역사는 한발자국도 나아갈 수 없다. 귀농도 마찬가지다. 귀농을 빵을 나누는 개념정도로만 생각한다면 과거지향적인 귀농이 될 수 밖에 없다. 손가락으로 달을 가리키고 있는데 달은 보지 않고 손가락만 보아서는 안된다. 왜 귀농이 필요한지 아무리 설명하여도 현실적인 삶의 문제만 매달린다면 진정한 귀농의 의미를 찾을 수 없다.
물질적 기준과 잣대로 귀농을 파악하지 마라. 무엇이 우리의 삶을 행복하게 하는가. 무엇이 우리를 자유스럽게 하는가. 무엇이 우리를 편안하게 하는가. 무엇이 우리를 삶의 의미를 갖도록 하는가. 무엇이 우리를 인간답게 하는가를 찾을 때 진정한 귀농의 의미가 있다.
결론적으로 인드라망이 추구하는 귀농은 과거로 회귀하는 것이 아니라 미래세계로 나아가는 길이되어야 한다.

 

격월간 인드라망 2545(2001)년 3/4월호(통권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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