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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태공동체

생체공동체를 찾아서...첫번째(1-5)

by 치우 posted May 14,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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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태 공동체를 찿아서

 

1. 산안마을 - 화성시 향남면 - 10가구가 한살림 ‘무소유’ 실천

 

‘돈이 필요 없는 사이좋은 즐거운 마을.’경기도 화성시 향남면 구문천3리 산 141의1번지에 위치한 생태공동체 ‘산안마을’ 어귀에 들어서면 이같은 내용의 입간판이 방문객을 맞는다. 물질보다 끈끈한 인간의 정으로 살고싶은 사람들이 모여 만든 마을임을 세상에 알리고 있는 것이다. 지난 2일 오전 11시, 식사시간이 되자 ‘애화관(愛和館)’이라는 푯말이 붙은 건물에 마을 사람들이 하나둘 모여들었다. 평소 마을에서 키운 유기농 채소와 달걀, 돼지고기 등으로 식사를 하지만, 오늘은 오랜만에 별식인 라면이 식탁에 올랐다.

어젯밤 TV에서 본 토크쇼 얘기를 나누거나 대선후보 품평을 하며 두런거리는 모습은 여느 마을사람들과 다른 모습이 아니다. 그러나 유심히 그들의 모습을 살펴보니 하나둘 다른 점들이 잡히기 시작했다. 그들은 각자 먹을 만큼만 덜어 먹고, 남은 것은 돼지에게 먹일 것과 비료로 만들 것을 분리해 통에 비운 후 그릇은 쌀뜨물로 헹궈 모아놓았다. 버릴 것은 하나도 없었다. 설거지는 음식과 빨래 등을 담당하는 생활부 소속 주민이 마무리지었다.

산안마을은 10가구 44명. 이중엔 한국인 신랑·일본인 신부 커플도 세쌍 포함돼 있다. 그렇지만 이들은 모두 한가족, 한살림이다. 저마다 농사담당 채소부, 닭을 키우는 양계부, 마을의 생산물을 유통시키는 공급부, 아이들을 돌보는 학육부, 생활부 등에 배속돼 일하지만 누구도 월급을 받지 않는다. 마을 돈지갑을 하나로 관리하면서 필요한 사람은 필요한 만큼 받아 쓴다.

마을 안에선 돈이 전혀 필요하지 않다. 음식과 생필품이 가득한 창고 문은 늘 열려 있고 누구라도 가져다 쓰면 된다. 부엌도 옷장도 하나로 같이 먹고 같이 입는다. 아이들도 같이 키운다.

내 자식만 감싸고 도는 게 아니고 모두 내 자식처럼 돌보고 아이들은 마을 어른들을 부모처럼 따른다. 아이들은 모두 ‘태양의 집’이라 불리는 숙소에서 함께 생활하며 서로 친형제·자매처럼 지낸다.

산안마을은 인간과 자연이 공생하며 행복해지는 삶을 제시했던 일본의 농부 야마기시 미요조(1901~1961)의 영향으로 지난 84년 세워졌다. 무소유를 실천하는 산안마을의 이념적 구심은 바로 야마기시 미요조의 성을 딴 ‘야마기시즘’이다.

야마기시즘을 실천하며 살아가는 마을들이 일본과 한국을 비롯, 스위스, 브라질, 태국, 독일, 호주, 미국 등 전세계 50여곳에 세워져 있으며 마을간 교류도 이뤄지고 있다.

마을의 큰아버지격인 윤성렬(60)씨는 “많은 형제들과 함께 생활을 하다보니 사회성이 저절로 키워져 아이들은 학교에서도 적응을 잘하고, 모든 어른들을 자기 부모 모시듯 한다”며 뿌듯해했다.

그는 “가장 지독한 소유욕은 자식에 대한 집착”라고 지적한다. 그리고 “아이들은 누구의 소유도 아니며, 아이들끼리 아이답게 자라나게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산안마을 사람들은 물질과 돈뿐 아니라 사람에 대한 무소유도 실천하는 것이다.

이들 삶의 모토인 무소유는 공동소유와는 다르다. 산안마을 사람들은 마을의 재산도 마을 주민들의 공동소유물이라고 보지 않는다. 사유와 공유, 모두를 넘어선 가지지 않는 사회를 실현하고자 한다. 이들은 세상의 어떤 것도 소유될 수 없으며 다만 쓰일 뿐이라고 여긴다. 마치 태양과 공기가 누구의 소유물이 아니고 누구나 그것을 소유하고 있다고는 생각하고 있지 않은데도, 살아있는 모든 생물들이 함께 혜택을 누리며 활용하고 있는 것처럼 우리들의 삶도 그러해야 한다는 것이다. 세상 모든 것이 그냥 존재하는 것일 뿐 누군가에게 속할 수 없고, 소유는 관념일 뿐 실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마을 사람들은 모든 여성이 육아와 가사노동의 부담을 벗을 수 있는 산안마을을 여성해방구라고 부르기도 한다. 김선희(33)씨는 “식생활과 의생활, 육아 등의 부담이 벗게 되니 남편과 함께 악기를 배우는 등 취미생활도 여유있게 할 수 있다”며 웃었다.

그는 “내 남편, 내 아이의 얼굴만 바라보며 집착하기보다 모두가 행복해질 수 있는 삶을 실현하는 데 보탬이 되고 싶다는 내 삶의 목표를 더 열심히 추구하게 된다”면서 “고학력, 선망의 직업, 번듯한 직장을 추구하는 것보다 진실한 삶을 살아가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려주고, 그 삶을 같이하고 싶다”고 말했다.

오는 12∼19일 산안마을에서는 7박8일의 야마기시즘 특강회가 열린다. 산안마을은 매년 1, 3, 5, 8, 11월, 7박8일간의 야마기시즘 특강회를 통해 세상 사람들이 사적 소유와 공유의 개념을 넘어, 무소유의 경지에 이르러 참자유를 체험할 수 있는 기회의 문을 활짝 열어두고 있다. 문의 031-353-3920

 

산안 마을에 자원봉사를 다녀 온 후...

산안 마을에 자원봉사를 다녀온 후 제가 모르는 또 다른 삶이 내 곁에 있었다는 것을 보고 흠칫 놀랐습니다. 한쪽 눈을 감고 세상을 살았던 것 같습니다. 말이 자원봉사지 많은 것을 배우고 체험하고 온 것이 더 적당한 말인 것 같습니다.

산안 마을과 관련된 이야기 올려봅니다.


생태를 존중하고 보전하려는 사람들이 모여 사는 산안마을로 『야생초편지』의 저자 황대권씨가 물질만능세대의 찌든 때를 씻으러 길을 나섰다. 한 발짝 더 가깝게 다가서서 바라본 산안마을 사람들은 과연 너와 나, 네 것과 내 것을 나누지 않는 ‘우리’가 되어 철저한 무소유를 실천하며 살아가고 있었다.

그러나 황대권씨를 만난 산안마을 사람은 어쩔 수 없는 한계에 대한 고민을 살짝 털어 놓았다. 자본주의적 산업사회의 순환구조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 없는 현실 속에서도 나름의 대안을 만들어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의 향긋한 풀 내음이 묻어나는 상큼한 이야기가 시작된다.

“우리를 생태공동체로 부르는데 그러지 말라고 할 수도 없고, 참 곤란할 때가 많습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모습이 그렇게 생태적인 것 같지도 않고, 또 공동체, 공동체 하지만 엄격히 말하면 우리는 공동체가 아닙니다.”

“아니, 야마기시즘 실현지가 공동체가 아니라면 도대체 뭐라 불러야 합니까?”

“사적 소유를 전제로 하여 이루어진 사회도 공동체입니다. 공동체는 무언가 소유한 사람들의 협력체입니다. 공동체 운동을 하는 사람들이 주장하는 공동체도 사적 소유를 완전히 없애지 않는 한 기존 사회와 다를 바가 없습니다. 아니 오히려 기존 사회보다 살기가 더 어렵습니다. 좁은 범위에서 내 것, 네 것을 헤아리다 보면 더 피곤해집니다.

대부분의 공동체 운동이 실패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공동소유라고는 하지만 거기에 자기 지분에 대한 의식이 있는 한 그것도 사적 소유와 다를 것이 없습니다. 야마기시즘 실현지에는 아예 사적 소유가 없습니다. 무소유이지요. 그래서 우리는 실현지를 공동체라고 부르지 않고 ‘일체사회’라고 부릅니다.”

“그렇지만 이곳의 자산도 법적으로는 공동소유 내지는 법인소유로 되어 있지 않습니까?”

“그렇습니다. 우리도 무슨 등기를 낸다거나 할 때는 서류에 명기된 사람들의 도장을 일일이 받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이 땅에 살아남기 위한 법적 형식일 뿐입니다.

“일체사회라고 하면 개인의 차이가 없는 절대 평등의 사회가 아닙니까? 제가 조사한 바에 의하면 우리 나라의 공동체 운동이 실패한 가장 큰 이유 중의 하나가 개인 또는 가구의 독립성을 무시한 획일적인 공동체성의 강조 때문인 것으로 아는데요. 가령 개인이 하고 싶은 바를 공동체가 억누르게 되면 그것이 결국 문제가 되어 공동체가 약화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개인의 차이가 없다면 그것은 사회가 아니지요. 문제는 개인의 차이를 어떻게 일체화하느냐 입니다. 저희도 이곳에서 그런 문제 때문에 개인의 취미라든가 하고 싶은 바를 권장한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결과는 우리가 지향하는 일체사회와는 거리가 멀어지는 것을 볼 뿐이었습니다. 개인의 사적 욕구가 공동체의 빈 자리를 메워 주는 것이 아니라 개인적 성향을 더욱 강화시킬 뿐이었습니다. 가만히 생각해 보세요. 한 사회 안에서 과연 ‘사적인 행위’라는 것이 있습니까?

개인이 어떤 행위를 하게 되면 그것이 이어져서 전체로 파급되고 전체는 다시 개인의 행위에 영향을 미치게 되는데 과연 개인의 ‘사적인 행위’라는 게 존재합니까? 저는 사적인 행위란 없다고 봅니다. 모든 게 공적입니다. 나의 행위가 어떻게 이어질 것인가를 생각하면 모든 개인의 행위는 공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이렇게 이어져서 일체를 자각하게 되면 일체사회가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어떻게 사적 행위가 공적 행위로까지 확대될 수 있습니까? 과연 그것이 가능합니까?”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연찬을 합니다. 연찬(硏鑽)이란 계속 연마하여 구멍을 뚫는 것을 말합니다. 어떠한 행위나 생각에 대하여 과연 그럴까? 진짜는 어떤가? 하며 끊임없이 물어가는 것입니다. 구멍이 뚫릴 때까지. 연찬을 위한 특별한 의식(儀式)이나 절차 같은 것은 없습니다. 연찬은 생활 속에서 행해집니다. 혼자서 혹은 둘이서 혹은 집단으로 합니다.”

산안마을의 어른 격인 윤성렬씨(60)와 무려 3시간에 이르는 마라톤 대화가 이어졌다. 야마기시즘을 설명하는 그의 말은 한마디, 한마디 확신에 차 있었다.
그러나 그러한 확신도 과연 그럴까? 진짜는 어떤가? 하는 여지는 늘 남겨 놓았다.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다. 탁자 위의 커피는 떨어진 지 오래였다. 나누고 싶은 얘기는 더 있었지만 다리가 저려서 더 앉아 있질 못하겠다. 마침 지역의 『농』민신문 기자가 찾아오는 바람에 자리를 털고 일어설 수 있었다. 카메라를 들고 마을을 한 바퀴 돌겠다며 로비를 나섰다.


사람과 동물과 자연이 어우러지는 삶

산안마을은 한국에서 가장 극단적인 공동체성을 추구하는 공동체 중 하나다. 산안이란 이름은 이 공동체를 설립한 야마기시씨의 이름이다. 산안마을은 원래 일본에서 야마기시회라는 이름으로 시작되었다. 야마기시회(山岸會)는 1953년 야마기시 미요조씨(1901~1961)가 고안한 독창적인 양계법과 야마기시즘에 공명한 10 여명의 사람들에 의해 교토부(京都府)에 만들어진 집단이다.

 당시 일본은 식량난이 심각한 때였으므로 많은 농가들이 야마기시식 양계법을 채택하게 되었고, 이 양계법의 근본정신에 매료된 사람들에 의해 이 운동이 각 지방으로 확대되기 시작하였다.

지금은 일본 각지를 비롯하여 세계 여러 나라(한국, 스위스, 브라질, 타이, 독일, 호주, 미국 등)에 40여 개의 실현지가 있다. 야마기시즘이 우리나라에 처음 소개된 것은 1966년 1월 수원농민회관에서 야마기시즘 특강이 열린 때부터이다. 이 무렵 야마기시즘 특강을 유치한 사람들은 농민운동을 하던 선각자들로, 초기엔 주로 농사기술에 초점을 맞추어 모임이 이루어지다가 1984년에 이르러서야 경기도 화성군 향남면 구문천리에 한국 야마기시즘 사회경향실현지가 마련되었다.

필자가 산안마을을 찾은 것은 일주일간 열린 ‘어린이 청소년 낙원촌 행사’의 마지막 날이었다. 좀더 일찍 가서 행사를 자세히 취재하고 싶었지만 행사에 참여한 사람들과 방문객들이 많아 숙소문제가 여의치 않은데다 외부손님들을 접대할 인력이 모자라다며 마지막 날 오는 것이 좋겠다고 했다.

 

산안마을에는 닭 2만여 마리를 키우는 방대한 양계장이 있는데다 끊임없이 외부 손님들이 찾아와 현재 살고 있는 40여 명의 식구(아이 17명)들로는 모든 일을 원활하게 처리하기가 쉽지 않다. 모든 식구들이 양계부, 공급부, 생활부, 학육부, 채소부에 배치되어 일을 하면서 동시에 외부 손님을 맞고 또 행사를 치러야 하니 결코 여유 있다고 할 수는 없다.

낙원촌 행사는 외부의 어린이와 청소년들로 하여금 돈이 필요 없는 야마기시즘 실현지에서 사람과 동물과 자연이 어우러지는 삶을 맛보고 마을 사람들이 마련한 여러 가지 프로그램을 통하여 기존의 사회에서 느낄 수 없었던 새로운 세계를 경험토록 하자는 것이다. 프로그램은 크게 네 가지로 나눌 수 있는데,

첫째가 야마기시즘 낙원촌의 일상생활을 실제로 해보는 것이다. 부엌에서 밥도 해보고 빨래와 청소도 하고 마을 아이들과 놀아도 보는 등 실제로 마을 주민들이 사는 것을 그대로 해본다.

둘째는 농사체험으로 양계장에서 달걀도 꺼내보고 돼지나 토끼도 돌보고 채소밭에 가서 풀도 뽑아 보고 하는 것이다.

셋째는 생태산책으로 마을 주변의 숲이나 들판을 안내자의 설명을 들으며 자연을 있는 그대로 느껴보는 것이다.

넷째는 야외나 실내에서 다양한 놀이 프로그램을 통해 마음껏 뛰노는 것이다. 이번 낙원촌 행사는 겨울방학에 이루어졌기 때문에 프로그램이 주로 생활체험이나 놀이 프로그램에 치중되었다. 초등학교 1학년부터 중학교 3학년까지 모두 43명이 참가했는데 절반 넘는 아이들이 두 번 이상 참가한 경험이 있으며, 심지어 5번 이상 참가한 아이들도 열 명이 넘는다고 한다. 방학 때만 되면 마치 고향집에 놀러 가듯이 참가하는 아이들이 많다는 것이다.

도시 아이들의 새로운 놀이터

마지막 날이라 일주일 동안의 생활을 총정리하는 마당이 펼쳐지고 있었다. 한쪽 벽에 무대를 만들어 놓고 그룹별로 준비한 촌극이나 무용, 노래 등을 발표하는데 장난기 가득한 아이들인지라 실수하거나 잘못하면 더 큰 박수가 터져 나왔다. 요즘 아이들에게 가장 영향력 있는 것이 TV인 만큼 히트 개그맨인 수다맨을 흉내낸 ‘베지터블 맨’(Vegetable Man)이 나올 때 가장 많은 환성이 터져 나왔다. 베지터블 맨은 채소에 관한 퀴즈로, 출연자들이 맞추지 못할 때 베지터블 맨이 짜잔! 하고 나타나 해결하는 게임이다.

행사가 모두 끝나고 부모들이 와서 아이들을 한 명씩 데려갈 때 참가자들 전원에게 야마기시즘 유정란 한 판과 노란 봉투 하나씩이 주어졌다. 봉투 안에는 행사 중에 찍은 사진과 일기 및 참가자 주소록이 들어 있었다. 주소록을 들여다보니 이 프로그램에 참가하기 위해 전국곳곳에서 아이들이 온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러나 아무래도 수도권에서 온 아이들이 절반은 넘었다. 아이들은 이곳 낙원촌 행사에서 방학 때마다 만나거나 다른 지방에서 온 또래들을 새로 만나 친구로 사귀기도 한다.

행사를 진행하던 김현주씨는 “근래에 여력이 없어서 따로 낙원촌 광고를 하지 않는데도 이 정돈데 만약 광고를 하게되면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신청자가 몰린다”고 말한다. 그도 그럴 것이 이곳 실현지처럼 자연과 농장과 공동체 마을이 완벽하게 갖추어진 곳은 별로 없다. 게다가 이곳은 마을 사람들이 무소유의 삶을 사는 ‘낙원’이 아닌가!

점심을 먹고 마을 주변에서부터 내부시설에 이르기까지 찬찬히 둘러보았다. 먼저 마을의 주변환경이 끔찍하게 변모하고 있었다. 처음 구문천리에 정착했을 적에는 호젓한 시골 농촌에 지나지 않았지만 수도권이 수원을 지나 화성군까지 확대되자 이곳 역시 토지개발의 횡포로부터 자유롭지 않게 되었다.

2003년 1월 현재 39번 국도에서 마을입구에 이르는 거대한 면적이 모두 시뻘겋게 파헤쳐진 채 구획정리 되고 있었다. 게다가 몇 년 전에 마을 바로 앞으로 서해안 고속도로가 개통되는 바람에 밤낮으로 자동차 소음이 웅웅거렸다. 맞바람이 부는 날이면 소음이 더 심하다고 한다. 또 하나 흉물스런 장애물이 있다. 농장 한가운데를 가로지르는 고압 송전탑이다.

고압선이 지나가는 아래에는 전자파 장애가 일어나서 사람에게나 동물에게나 해롭다는 얘기가 있는데 과연 어떤지 모르겠다. 아직까지는 닭들이 유정란을 잘 낳고 있으나 더 장기적으로 볼 때 결코 바람직하지 않은 일이 일어날 수도 있다.

자본주의 사회가 던지는 ‘무소유’의 딜레마

실현지 근처에 와서 어떤 곳이 야마기시즘 사회실현지인지를 식별하기는 별로 어려운 일이 아니다. 야마기시즘 실현지에는 반드시 대규모 양계장이 있기 때문이다. 산안마을에도 길이가 무려 2백미터나 되는 길다란 계사가 18동이나 늘어서 있다. 실현지를 건설하는 초기에 어떻게 이렇게 거대한 공사를 할 수 있었느냐고 물으니 물론 마을 식구들이 엄청나게 땀을 흘렸지만 일본의 실현지에서 물자와 인력을 보내준 측면도 무시할 수 없다고 한다.

 

야마기시즘 실현지들 사이에서는 서로 무상으로 도움을 주고받고 한다는 것이다. 야마기시즘 이념의 산실이었던 계사의 경우 그 독창성과 우수함으로 40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초기 모델이 그대로 사용되고 있었다. 야마기시식 양계법의 특징은 자연과 인위의 조화를 대단히 과학적으로 설계해 놓았다는 것이다. 언뜻 보면 빈틈없는 기계식 계사처럼 보이지만 그 안은 닭의 생리와 감정 등을 세심히 고려한 구조로 되어 있다.

야마기시 유정란이 유명한 것은 이러한 과학적인 계사 덕분이기도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닭을 대하는 마을 사람들의 심성이다. 이들은 닭을 동등한 식구로 보아 닭장을 드나들 때마다 늘 닭에게 인사를 하거나 양해를 구한다. 그렇다고 하여 야마기시식 양계법이 이 방식으로 고정된 것만은 아니다. 윤성렬씨에 의하면 일본의 한 실현지에는 케이지(Cage) 방식을 이용하여 한꺼번에 60만 마리의 닭을 키우고 있단다. 야마기시즘 실현지에서 동물애호단체들이 그렇게 비난하는 케이지 방식을 사용하다니! 믿기지 않지만 사실이란다. 덧붙여 윤성렬씨는 말한다.

“우리는 어떤 고정된 방식이 최고라고 고집하지 않는다. 우리가 처해 있는 현실에 따라서 자본주의 방식으로 실현지를 유지시킬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을 찾을 뿐이다. 현실적으로 최선이지만 어디까지나 자연과 인간이 조화를 이룰 수 있는 지점이다.”

“그렇긴 하더라도 야마기시식은 대규모 생산시설을 너무 선호하는 것이 아닙니까? 오늘날과 같이 대량생산 시대에 대규모 생산시설의 불가피성을 인정하지 않는 바는 아니지만 진정 야마기시즘이 자연과의 조화를 추구한다면 규모의 문제를 좀더 심각하게 고민해야 하는 것 아닙니까?”

“문제가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현실이 그렇게 쉽지가 않습니다. 우리의 양계는 단지 양계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밭농사와 연계함으로써 일종의 순환체계를 이루고 있습니다. 일본 실현지의 경우 인구가 많고 규모가 크기 때문에 농사와 양계가 거의 완전한 순환체계를 이루고 있지만 우리의 경우 아직 쌀 농사를 짓지 못하고 있고, 닭 사료도 거의 전량 수입에 의존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생태주의적 수위가 점차 높아지고 우리도 힘이 축적되면 좀더 이상적인 순환체계를 가질 수 있겠지요. 하지만 지금으로서는 자본주의적 산업사회의 순환구조 속에 나름대로 자리를 잡을 수밖에 없습니다.”

이런 이야기를 나누면서 필자는 산업사회의 순환체계에서 과연 적정한 규모는 어느 정도를 말하는지, 그리고 그 규모를 뒷받침하는 사회구조와 제도적 장치는 어떤 것인지 하는 물음이 연속적으로 떠오르는 것이었다. 욕심 같아서는 야마기시즘 실현지 같은 곳이 이런 문제들에 대해 생태주의적 지향을 가지고 좀더 선도적으로 풀어주었으면 하는 바람도 들었다.

그러나 현실은 엄혹한 것. 일단은 식구들을 먹여 살려야 하고 되도록 이윤을 내어 조직이 추구하는 사업도 원활하게 진행시켜 나가야 한다. 그러자면 현실에서 단지 살아남는 것만 가지고는 충분하지가 않다. 산안마을은 적어도 지금까지는 삭막하기 그지없는 자본주의 경쟁 속에 부유하는 하나의 생산기지로서 무소유의 이상향을 잘도 유지해 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너와 나, 모두가 함께 번영하는

늦은 밤이 되자 방문객들을 위한 숙소인 애화관에 사람들이 하나 가득 모여들었다. 낙원촌 행사를 보조하기 위해 이곳을 방문한 국제워크캠프기구(IWO) 젊은이들과 행사를 진행했던 스태프들, 그리고 마을 식구들이 한자리에 모여 쫑파티를 한단다. 이십여 명이 모인 자리에 일본인이 셋, 프랑스인이 둘이 있었다. 일본인들은 야마기시즘 일본 실현지에서 온 것이고, 프랑스인들은 IWO에서 온 것이었다. 한국말과 일본말 그리고 프랑스말이 뒤섞여 야릇한 흥분상태를 자아낸다. 맥주 잔이 오가고 이야기가 깊어감에 따라 점차 좌중이 시끄러워진다.

어느덧 시간은 자정을 넘어섰고 누가 제의하지 않아도 이때쯤이면 노래로 마무리 짓는 것이 순서라는 것을 다 알고 있는 듯했다. 공급부에서 하루 종일 계란을 팔고 온 유상용씨가 장구를 끌어안고 농부가로 물꼬를 텄다. 약간의 부끄러움과 주저함이 있었지만 시키면 시키는 대로 가요와 민요, 샹송, 일본 엔카 등이 화답을 하듯 이어졌다. “너와 나, 모두가 함께 번영하는” 야마기시즘 경향실현지의 밤은 세 나라에서 온 젊은이들이 빚어내는 화기애애한 열정으로 훈훈하게 데워지고 있었다.

 

 

2. 한마음 공동체-장성군 남면

 

지난 9일과 10일 전남 장성군 남면 마령리 한마음공동체에서는 마을 주민과 도시민 500여명이 어울리는 추수감사축제가 펼쳐졌다.
폐교를 개조해 만든 한마음 자연학교 앞마당엔 20여명이 황토집 지붕에 얹을 이엉을 엮었다.
어르신들의 능숙한 솜씨를 휘둥그레진 눈으로 바라보던 도시 아이들도 신이 나서 짚을 한움큼씩 움켜쥐고 두 손을 비벼댔다.

또 다른 한무리는 자연학교 뒤편 감나무밭에서 빨갛게 익은 감을 따고 있었다. 찬 바람에 아이들의 볼도 익은 감처럼 붉게 상기됐지만,
직접 딴 감을 양손에 들고 한입씩 베어먹으며 추운 줄도 모르고 즐거워했다. 이들은 신선한 유기농산물이 가득한 식탁에서
함께 식사를 하고 줄다리기, 닭싸움, 제기차기 등 민속놀이를 즐기며 한마음으로 어우러졌다.

10여년간 유기농사를 짓고 있다는 전춘섭(63)씨는 “내다팔 농산물엔 농약을 쳐도 자기가 먹을 것엔 농약을 안친다는 이들도 있다지만,
나는 내가 키운 농산물은 모두 내 식구들이 먹을 것이라 생각하고 농사짓는다”면서 “유기농은 이웃과 더불어 모두가 잘 사는 일”이라고 강조했다.

초등학생 아들과 함께 이엉엮기를 하던 회사원 양만승(41·광주시 광산구 월계동)씨는 “도시와 농촌이 서로 믿을 수 있다는 것이 중요하다”면서
“값이 싸다는 이유만으로 수입농산물을 선택한다면 우리 농촌도 망하고 건강도 잃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 90년 출범한 한마음공동체는 화학비료 대신 퇴비를 사용하고 농약 대신 천적을 키워 해충을 잡는 유기농업을 실천하는 60여 농가와
이들이 생산한 유기농산물을 직거래를 통해 애용하는 전남지역 도시민 3000여 가구를 한가족으로 이어주는 모임이다.
한마음공동체 구성원들은 한곳에 모여 공동생활을 하는 것은 아니지만, 생산자와 소비자 관계 이상의 신뢰와 연대감을 갖고 있다.
추수감사축제 외에도 정월대보름, 모내기, 여름휴가 함께하기 등 계절마다 열리는 축제를 통해 공동체 문화를 가꿔가고 있다.

공동체에서는 농산물 직거래뿐 아니라 자연학교와 생태유치원을 설립해 환경농업과 자연체험학습 등 대안교육을 실현하고 있다.
공동체 구성원들은 자연학교에서 천연염색과 유기농사법, 흙집짓기를 배우며 의식주 생활 모두를 건강하게 바꿔가는 운동을 도시와 농촌에서 함께 펼쳐가고 있다.
도시민들은 먼 거리를 마다않고 아이들을 생태유치원에 보내 자연 속에서 뛰놀며 공동체 문화를 배우게 하고 있다.

한마음공동체가 이같은 틀을 갖추게 되기까지는 많은 시행착오와 끊임없는 시도가 있었다.
90년대 초반의 한마음공동체는 생활공동체를 추구하며 공동생산·유통·분배를 하는 협동농장 형식이었다.
그러나 생산의 효율성이 떨어지고 경제적인 어려움을 극복하지 못해 공동생산체제를 포기하게 된다.
대신 직거래를 원칙으로 공동유통망을 넓혀가고 공동체의 의의를 함께 실천해갈 도시 회원가구 확보에 주력했다.

10여가구에 불과했던 유기농가가 60여가구로 늘었고 전남지역 도시의 소비자 가구도 3000여 가구로 늘었다.
2000년 한마음 자연학교와 생태유치원의 문을 열면서 도시와 농촌이 공존하는 생태·문화공동체로서의 새 면모를 갖추게 됐다.

공동체 구성원들은 ‘정의·생명·공동체’라는 모토와 “바로 지금 이곳에서 행복하게 살자”는 말을 가슴에 새기고 산다.
한마음공동체 남상도 대표는 “좋은 대학에 진학하기 위해, 좋은 직장에 들어가기 위해, 승진하기 위해 행복을 끊임없이 미래로 유보하다가는
죽을 때까지 행복할 시간이 없다”면서 “눈앞에 펼쳐진 삶을 충분히 누리며 자연의 순리대로 욕심 없이 함께 사는 것이 행복의 비결”이라고 말했다.

 

3. 문당 마을-홍성군 홍동면 - 환경농업의 중심지 문당리 환경농업마을

 

문당리 환경농업 마을은 문당리 백년 계획을 통하여 생명 및 환경산업으로서의 농업의 가치를 높이고 농업을 통한 다양한 소득원 창출과 유통망을 개선하며, 아울러 삶의 질을 개선하고 생활환경도 환경친화적으로 복원함으로써 국토 환경보전에 주요한 역할을 담당 한다는 취지 하에 조성 되었다.문당리는 홍성군에서 남쪽으로 8 km 떨어진 곳에 위치하며, 동남북쪽으로 산이 둘러쌓여 있고, 서쪽으로는 삽교천이라는 하천이 흐른다. 전체적으로 문당리는 위요되어 있으며, 남쪽으로는 홍동저수지를 접하고 있다.이 작은 마을은 4개 부락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각 부락들은 산으로 둘러쌓인 골짜기를 중심으로 몇개의 가구들이 모여 있다. 문당리 마을은 문산, 동곡, 서근터(안말), 원당의 4개 자연부락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각각의 부락들이 집촌을 이루고 있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때 광제리, 동곡리, 원당리, 하소리, 가곡리, 문산리, 상소리의 각 일부와 규곡면 미정리의 일부를 병합했다 문산과 원당의 이름을 따서 문당리라하고 현재 2개의 행정부락으로 분리되어 있다. 이 중에서 문산은 문산정, 서근터, 안말, 원당으로 나누어 부르며 원당의 서쪽에는 옛날 큰 정자가 있었다 하여 문산정, 서근터는 지보가 곡식이 썩어서 썩은터, 문산정 동남쪽으로 옛날에 큰 무당이 살던 집이 있었다고 해서 원당이라고 한다. 문산정은 옛날에 학문으로 이름 높은 곳이어서 문산정이라고 전해오고 있다. 전주 이씨와 창원 황씨를 위주로 13성이 정착하고 있으며 오리농법을 실천하며 살고 있는 마을이다. 그리고 동곡은 옛날부터 동쪽에 자리한 마을이라 하여 동곡이라 부르며 뒷산에는 오봉산이 있어 인재가 많이 나는  마을이라 한다.  농촌지역의 사회 악화, 삶의 질 및 환경의 질 낙후되고 농산물에 대한 안전성을 위협받는 지금, 국제적 농산물의 경쟁력이 악화되고 있다.
따라서 친환경적 농산물에 의한 환경농업 실현과 농업을 통한 다양한 소득원 창출과 유통망 개선, 삶의 질 개선 및 살기좋은 주거환경, 녹생관광실현, 두레공동체를 회복하고 국토의 환경 보전에 기여하는 농촌환경을 조성하기 위해 문당 환경농업 마을은 힘쓰고 있다.  또한 정보화 기반을 통한 사이버 마케팅, 도시, 농촌교류에 의한 직거래 실시 등 지역 지원형 농업을 지원하며 사업계획의 기대효과로 새로운 마을 공동 소득원을 만들고, 대를 잇는 농촌구현, 주민의 삶의 질을 높이고, 정보화 시대를 앞서며, 두레 공동체로 거듭나려 하고 있다. 이번 정보화 시범마을 사업을 통해 마을 특산품인 유기농쌀(흑향미, 백미, 햅쌀), 유기농 채소, 오리 등의 특산물에 대한 전자상거래로 판로 를 확장하고 마을의 부가가치 향상에 힘쓰며 마을 공동체 형성과 의사결정의 체계화를 이룩하기 위해 주민들의 스스로가 노력하는 마을이다.

 

“돌아와 살고 싶은 농촌을 꿈꾼다”

 

여기 꿈꾸는 농촌마을이 있다. 농민 모두가 안전한 농산물을 재배하고 축사에선 맑은 물을 흘려보내고, 생활폐수는 생태연못에서 정화시키고, 자연에너지로 마을의 불을 밝히고‥‥

그래서 땅과 물이 모두 건강한 마을. 젊은 사람들이 땀흘려 땅을 일구고, 다양한 소득원을 만들어 경제력을 갖추고, 마을공동체를 꾸려 삶의 질을 높이고‥‥

그래서 주민 모두가 함께 잘 사는 마을. 여기 사람과 사람이, 사람과 자연이 더불어 살아가고자 마을의 ‘100년 후 그림’까지 그려가며 회망을 일구는 마을이 있다.

충남 홍성군 홍동면 문당리에서 만났던 지난 가을. 우리 나라의 대표적인 환경농업마을로 잘 알려진 문당마을에도 어김없이 황금들녘이 찾아와 있다. 여름내 논 안을 이리저리 헤집고 다니며 농사꾼 노릇을 톡톡히 해냈을 오리들은 온데간데없고, 논두렁마다 빠짐없이 서 있는 빈 오리집들만이 이곳이 오리농법의 진원지임을 알려준다.

마을 들녘에서 만난 곽태우씨는 지난 94년 마을에서 제일 처음 오리농사를 시작한 주민 중 하나. 6000평 논을 화학비료나 농약 한번 쓰지 않고 오리농법으로 일궈왔다.

“오리가 제초작업을 대신해 주지만 농약 안쓰려니 아무래도 힘이 들지. 그래도 땅이 오염되지 않고 건강도 좋아지니 여러모로 좋아. 흑향미를 오리농법으로 재배하면서 소득도 나아졌고, 그 소득에서 환경기금으로 조금씩 떼어내 마을도 발전시키구. 오리농법 덕분에 지금은 마을 전체가 너나할 것 없이 유기농 쌀과 흑향미를 재배한다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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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리농법이 가져다준 마을 운동

문당리를 소개하기 위해서는 오리농법 이야기를 빼놓을수 없다. ‘오리농법 전도사’로 잘 알려진 이 마을 주민 주헝로씨는 풀무농업학교를 졸업한 후 78년부터 끈질기게 유기농업을 고집해온 친환경농사꾼. 그러나 계속되는 잡초와의 싸움과 소출면에서의 열악함을 면키 어려웠다.

그러던 그가 은사에게 오리농법을 소개받은 93년경 큰 전환점을 맞는다. 인력으로만 하던 제초작업을 오리가 도와주게 되어 유기농업을 많은 면적으로 확대할 수 있게 된 것.

오리농법의 효과는 다양하다. 오리들이 잡초들을 뿌리채 먹어치우는 것은 물론이고, 진공청소기 같은 입으로 벌레와 유충들을 쭉쭉 빨아올린다. 벼 사이를 누비며 벼의 뿌리와 날개를 단단하게 만들어주고, 벼포기들의 간격도 적당히 벌여주어 통풍과 채광도 원활하게 해준다.

오리의 분뇨는 다시 벼의 양분이 되어 자연으로 되돌아가니 오염의 근원이 차단되고 땅도 물도 건강해진다. 오리농법의 도입과 함께, 95년 무렵 높은 소득을 올릴 수 있는 흑향미가 보급되면서 마을 사람들이 급격하게 유기농재배에 동참하게 되었다. 지금은 마을 주민 대부분이 유기농 흑향미와 쌀을 재배하며 올해 10억의 매출을 눈앞에 두고 있다.

문당리의 움직임은 인근 홍동면까지 확산되어 홍동면 논의 3분의 1이상이 오리농법을 도입했다. 전국에서 생산되는 유기농산물이 전체농산물의 1%에도 못미치는 현실을 볼 때, 실로 대단한 반향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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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리농법의 보급으로 마을 전체가 친환경농법으로 하나가 된 문당리. 그러나 마을의 변화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훼손되었던 농토를 되살리는데서 더 나아가 사람과 사람이, 그리고 사람과 자연이 조화롭게 살 수 있는 생태마을로의 도약을 준비하고 있다.

문당리 주민들은 몇해전부터 유기농 벼 한가마에서 1000원씩의 환경기금을 공동으로 모으고, ‘문당리 발전 백년계획서’까지 만들어 세상을 놀라게 했다. 2002년 자연생태우수마을로 지정된 가운데, 백년계획의 내용을 하나씩 실천해가고 있는 문당 마을 속으로 들어가보자.


십시일반 모은 ‘마을환경기금’으로 ‘백년계획’ 세워

마을에서 가장 전망 좋은 곳에 위치한 환경농업교육관은 ‘생태마을’로의 전환을 준비하고 있는 문당리를 ‘상징’하는 곳이다. 3년간 모아온 환경기금으로 회관 지을 땅 3000평을 공동 구입하고 환경을 생각하며 흙벽돌 3만장을 마을주민이 합심해 직접 준비했다.

식당과 최신 정보화 시설, 교육시설을 두루 갖춘 교육관은 문당리를 건강하게 숨쉬게 하는 ‘심장’ 역할을 해내고 있다. 90여가구가 모여사는 작은 농촌마을에 년간 1만여명의 도시민을 불러들여 환경농업의 중요성을 몸소 체험케 하는 작지만 큰 공간인 것.

마을사람들에게는 잃었던 공동체 생활양식을 되살려내는 의미있는 장소로 사용되고 있다. 마을회의며 마을잔치, 결혼식이 이곳에서 치러지고 농번기에는 공동식당을 운영해 바쁜 농촌주부들의 일손을 덜어주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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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은 마을의 정보화센터로도 활용된다. 주민들의 정보화 교육과 인터넷을 통한 도농직거래가 이뤄지는 산실이다. 또 문당리와 뜻을 같이하는 지역사회 단체들의 아지트로도 개방되어 있으며, 인근에 지워놓은 ‘농업박물관’과 연계되어 도시아이들의 교육장으로도 손색이 없다.

교육관 옆 작은 동산에서 재미있는 기구를 발견했다. 4장의 날개가 달린 풍력발전기. 바람이 불자 날개가 돌아가며 교육관 앞마당에서 있는 가로등 불이 훤히 밝혀진다. 방인성 사무국장은 “우리 마을에서 필요한 대부분의 전기를 자연에너지로 충당하는 것이 최종목표”라고 설명해준다. 이 발전기가하루 3kw의 전기를 생산한다. 일반 가정에서 하루 동안 소모하는 전기와 맞먹는 양이다.

블록과 블록 사이에 틈을 주고 잔디를 심어 놓은 주차장도 눈길을 끈다. 앞으로 “집마당과 마을길은 빗물이 통과하지 않는 콘크리트 대신 마사토, 깬돌, 블록, 자연석, 초지 등으로 바러나갈 계획”이란다.

교육관을 나서자, 논과 논 사이에서 홍련으로 가득 덮인 연못이 눈에 띈다. 교육관에서 내려오는 생활폐수를 정화시켜 내보내기 위해 만든 자연연못이다. 이러한 생태연못은 이곳 말고도 2곳이 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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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밖에 마을의 높은 터에는 빗물을 보관하는 저수지를 여러 개 만들고 집집마다 우수저장통을 두어, 자연이 준 물을 내버리는 것이 아니라 순환하게 하는 구조를 만들 것이라는 계획도 귀뜸해주었다.

농업환경에서 생활환경의 변화로 이어진 마을운동

뒤늦게 만난 주형로씨가 새로 만든 유기축사를 보여주겠다며 앞선다. 3동 남짓한 축사에 1차로 들어온 40여 마리의 소가 보금자리를 틀고 있다. 신기한 것은 냄새가 전혀 나지 않는다는 점.

주씨는 그 비법을 “축사의 천장이 열리면서 빛이 들어오는 자기시스템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또 분뇨로 가득찬 바닥에 톱밥미생물제를 뿌려주면 환기와 햇살의 영향으로 냄새와 폐수를 차단할 수 있다는 것이다.

소들의 먹거리도 안전, 그 자체다. 유기농 짚을 비롯해, 항생제나 성장촉진제가 첨가되지 않은 사료와 야채효소만 먹인다. 이렇게 키운 소들은 유기농식품을 전문으로 유통하는 초록마을에서 전량 수급해 간다고.

‘백년계획서’에 따르면, 문당리는 먼 훗날 자연소재의 집들이 들어차고 하천이 깨끗해지고 녹색휴양림이 풍성한 본래의 마을로 되살아난다. 이처럼 마을환경을 생태적으로 가꾸는 것 외에도, 백년 후에도 잘 먹고 잘 살 수 있는 대책들이 상세히 기록되어 있다.

마을 주변의 노는 땅에 공동의 부지를 조성해 한약재를 재배하고, 마을 주민의 건강을 위한 한약국도 공동운영하고, 부가가치가 높은 가공식품을 생산해낼 종합농산물가공장을 만드는 등 다양한 소득원을 찾아갈 것이다.

마을이 지닌 자원을 기반으로 펼쳐질 녹색관광도 기대가 된다. 이렇게 해서 창출된 공동의 소득은 마을공동운영체를 꾸려 관리하고, 다시 마을을 위해 재투자하는 것이 문당리가 꿈꾸는 미래다.

“사람들이 되돌아와서 살고 싶은 농촌, 농민들이 잘 살 수 있는 농촌을 만들려면 농민 스스로 같이 투자해서 같이 먹고 살겠다는 생각을 가져야 합니다.” 공동체가 없으면 생태마을도 없다는 주형로씨의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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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무학교, 생협 등 지역사회 인프라가 큰 도움돼

오늘의 문당리가 있기까지 마을주민들의 노력외에도, 지역사회에 구축되어 있는 다양한 인프라의 역할을 높이치지 않을 수 없다. 특히 홍성군 일대에서 유기농업을 실현해 온 많은 농업일꾼을 배출해온 풀무학교는 오늘의 문당리가 있게 한 정신적 근원지나 다름없다.

문당리에만도 풀무학교 출신이 10여명에 이른다. 그밖에 지역의 유기농산물을 안정적으로 유통해온 풀무생협과 기술 및 자금을 지원한 홍성농업기술센터, 전량 계약재배로 안정적인 판로를 제공해준 농협과 지역에서 생산된 유기농산물로 안전한 먹거리를 개발해온 풀무사람들도 든든한 백그라운드.

“농촌이 단순히 먹거리를 생산하는 곳이 아니라 자연의 섭리와 환경을 배우고 느낄 수 있는 진정한 교육적 가치가 있는 곳임을 인식하고 도시와 농민, 지역사회, 정부가 서로 협조하는 관계가 되어야 더 멋진 미래가 있다”는 주씨의 말처럼, 문당리는 먼훗날 지역사회와 원주민이 함께 일군 생태마을의 좋은 예로 자리잡을 것이다.

국토환경과 국가발전의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지속가능한 개발이 국가적 과제로 자리잡은 오늘날, 스스로 그 비전을 찾아 나선 문당리. 그들의 백년 후를 그려보는 것도 가슴벅찬 일이 아닐 수 없다.

 

4. 방주공동체 -경북 울진군 - '바람 농사’로 생명사상 실천

지난 22일 저녁 어둠이 짙게 깔린 경북 울진군 서면. “비포장 길로 쪼매(조금) 오면 된다”는 말과 달리 비탈에 가까운 울퉁불퉁한 험한 길을 15분 가량 힘겹게 올라가서야 어둠 속에서 하얀 불빛이 반짝인다.
“아이구, 취재할 것도 없는 데 뭐하러 서울에서 여기까지 왔수.”
자동차 소리를 듣고 마중 나온 방주공동체 강문필(49) 회장은 퉁명스러운 말과 달리 환하게 웃으며 악수를 청한다. 이윽고 차려진 저녁밥상. 농촌 특유의 ‘고봉밥’에 진한 청국장과 나물 반찬은 보기만 해도 침이 고인다. 강회장의 부인 최정화씨는 “멸치볶음 빼고는 전부 이곳에서 유기농법으로 재배한 것”이라며 자랑한다.


노아가 타락한 시대에 ‘방주’를 만들어 세상을 구원한 것처럼, 울진군 서면 ‘방주공동체’ 사람들은 농약의 고통에서 해방된 고추, 콩, 대추, 표고버섯 등 유기농산물로 ‘생명구원’을 실천하고 있다. 벌써 9년째. 13가구, 60여명의 ‘방주 공동체’사람들은 인간에게 독약인 농약을 사용하지 않고 퇴비, 가축의 똥 등을 이용한 유기농법으로만 농사를 지으며 살고 있다.

방주공동체는 느슨한 형태의 공동체 운영방식을 택하고 있다. 강회장과 김명중, 김운섭씨네 세 가구만 공동경작·공동분배를 하고 나머지는 각자 농사를 짓고, 생활하는 방식을 택하고 있는 것이다. 김운섭씨는 “무리한 공동생산보다는 ‘유기농업’이란 원칙을 지키는 공동체 마을로 방향을 잡았다”며 “공동생산, 공동분배를 하는 세 가정도 생활은 각자의 집에서 하고 있다”고 말한다.

대신 농자재 구입, 농산물 판매 등은 모두 공동으로 하고 유기농법에 대한 공부도 함께 하고 있다. 이들이 생산한 농산물은 유기농산물 유통체인 ‘한살림 운동본부’에 보내져 전국적으로 소비된다.

유기농법을 신봉하는 방주마을 사람들이지만 이들도 “이젠 유기농법도 ‘무공해 농산물’을 만들어 내진 못한다”고 고백한다. 산성비, 오염된 공기와 물이 이곳 깊숙한 산골까지 침투했기 때문이다. 어떤 농산물이든 ‘무공해’라고 광고하는 것 자체가 허위과대 광고인 셈.

또한 전국에 각종 유기농법이 있지만 이 역시 문제가 많다고 지적한다.

“오리농법을 한다며 오리를 논에서 해충잡아 먹게 부리다가 벼 이삭이 피면 열매 뜯어먹는다고 잡아먹는 게 친환경 농업은 아니지요. 저희들도 유기농법을 하면서도 땅을 죽이는 비닐을 쓰고 있는 것 때문에 죄의식을 느끼곤 합니다.”

방주마을 사람들이 실천하는 또 하나의 농사법은 ‘신바람 농법’. 강 회장이 7년전부터 주창한 신바람 농법은 “즐거운 마음으로 농사를 지어야 곡식도 잘 자란다”는 평범한 진리를 담은 것이다.

생명사상에 따르면 농민이 스트레스나 화를 받으면 그것이 곡식에 영향을 미치고, 그 독기가 고스란히 도시 소비자에게 전해진다는 것이다. 그래서 농사일을 하면서 농담을 하거나 노랠 불러가며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만들고 이것이 공동체의 분위기도 즐겁게 만든다는 것이 강 회장의 말.

최근 방주공동체에선 유기농업만으로 생계를 유지하기 어려워 직접 재배한 콩에다 당귀, 대추, 고추씨 등을 넣은 기능성 옛날된장을 만들어 판매하고 있다. 054-783-5368

 

5. 쌍호공동체-경북 의성군

지난 7일 오후 10시 낙동강가의 조용한 시골마을인 경북 의성군 안사면 쌍호리. 오후 6시가 넘으면 끊어지는 버스때문에 택시를 잡아타고 도착한 쌍호리는 겉으로 보기엔 여느 농촌과 다를 바 없는 평범한 시골마을이었다. 그러나 이곳은 ‘쌍호공동체’라는 이름으로 13년째 유기농을 고집하며 땅과 자연, 인간을 살리는 ‘생명운동’을 실천하는 15가구가 모여살고 있는 곳이다.

15가구 모두 가톨릭 신자인 쌍호공동체에선 ‘나’보다 ‘우리’가 우선이다. 중요한 일은 무엇이든 회의를 통해 결정한다. 어떤 작물을 얼마만큼 재배할 것인지 1년의 농사계획부터 환갑잔치를 어디서 어떻게 할 것인지까지. 회의는 부부동반이 원칙, 성원들의 집을 돌아다니며 두런두런 정담을 나누다보니 모두가 한가족처럼 가깝다.

공동체 성원들은 설도 함께 쇤다. 차례를 마치고 오후에 함께 모여 세배를 하고 선물도 나누며 집집마다 마련한 음식을 가져와 나눠먹는다. 98년에는 같은 해 환갑을 맞은 어른 6명의 환갑잔치를 함께하기도 했다.

8일 오전 비가 내리는 가운데 김정상(50)·조옥희(50)씨 부부는 비닐하우스에서 동치미용 무를 뽑아 손질하고 있었다. 하나하나 정성스럽게 다듬어 6개씩 볏짚으로 묶어냈다.
“무가 100일된 아기 다리처럼 통통하고 예쁘네요. 무슨 일이든 정성을 다하는 것이 중요하죠.” 김씨는 벌레 먹은 농산물을 더럽다고 생각하면 안된다고 강조했다. 벌레도 못먹는 농산물은 사람도 못먹는 것이기 때문이다.

“소비자들도 생명운동에 동참한다는 사명감을 가졌으면 합니다. 소비자의 호응이 없으면 농민들의 생명운동도 지속되기 힘들 테니까요.”

쌍호공동체를 이끌어온 우영식(64)씨 댁으로 발길을 옮기니 직접 깎아 말렸다는 검붉은 빛깔의 맛좋은 곶감을 내놓았다.
“시중에서 파는 발갛게 빛고운 곶감은 먹지 마세요. 감을 깎자마자 유황으로 훈연을 한다고 합디다. 도시사람들이 보기 좋은 것만 따지고 보얗게 분이 난 건 먼지 묻었다며 먹지 않기 때문이라나요.”
우씨의 아내 최아녀(62)씨도 “신선하게 보이기 위해 수확하기 직전에 농약을 많이 뿌리기 때문에 싱싱한 채소도 의심해봐야 한다”고 거들었다.

“편한 방법 마다하고 미련하게 고생한다고 비야냥 거리던 사람들도 이제는 유기농하겠다고 나서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생명운동하겠다는 마음가짐이 안돼 있으면 공동체의 일원으로 받아주지 않습니다.” 농사꾼으로서의 이익을 남기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 땅의 모든 생명을 존중하는 마음가짐이 더 중요하다고 힘을 주어 말하는 우씨의 모습에서 참된 농군의 아름다움이 물씬 배어나왔다.

 

6. 한울공동체-전북 부안군

지난 8일 오전, 전북 부안군 변산면 마포리 한울공동체 김수원(39) 대표 집에 소담한 아침상이 차려졌다. 마침 아내와 아이들은 서울 친척집에 다니러 갔고, 김씨와 그의 어머니 허인균(72)씨만 밥상을 함께 했다.

유기농 채소로 만든 세가지 김치와 맛깔스러운 젓갈, 밭에서 막 뜯어온 향그러운 쑥갓을 듬뿍 넣은 생선찌개가 입맛을 돋웠다. 밥그릇을 깨끗이 비운 후 설거지를 돕겠다고 나섰는데 주방용세제가 보이질 않았다.
“샴푸랑 치약도 안 쓴당께. 우리 유기농하는 집들은 다들 그려. 쌀뜨물 받아놨다 씻으면 기름기도 깨끗하게 닦이니께.” 허씨는 쌀뜨물을 이용해 익숙한 솜씨로 설거지를 마쳤다.

변산면 일대의 유기농 16가구로 이뤄진 한울공동체는 농촌마을로는 드물게 30∼40대 젊은 농사꾼들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토박이와 귀농가구가 절반정도씩이다. 90년부터 이들은 농약과 화학비료를 전혀 쓰지 않고 기계와 비닐도 가급적 쓰지 않는 유기농사를 짓고 있다. 단일 종목으로 대규모 농사를 짓는 단작도 자연의 질서를 무너뜨린다는 이유로 금하고 다품종 소량생산의 원칙을 고수한다. 그리고 합성세제도 쓰지 않는 등 일상생활에서도 철저히 ‘무공해 삶’을 추구하고 있다.

한울공동체에서 유기농을 처음 시작한 이는 정경식(43)씨. 지난 84년부터 홀로 고군분투하던 정씨를 중심으로 토박이 농가 2가구가 뜻을 모아 90년 한울공동체의 싹을 틔웠다. 지역의 소비자들과는 직거래 유통을 통해 농산물을 나눠오다 지난 2000년 한울공동체와 소비자 1000여가구를 잇는 생활협동조합을 설립했다. 전주 시내에 유기농산물매장도 마련했다.

한울공동체는 공동계획에 의해 생산·유통·판매를 함께 한다. 소비자들은 최소 다섯가정 단위로 매주 필요한 농산물을 신청토록 하고 있다. 옆집에 누가 사는지도 모르는 도시 아파트 주민들도 한울공동체의 가족이 되고나서부터 유기농산물 구입을 매개로 자연스럽게 매주 만남을 갖게 되는 것이다.

“지난해 보리수확 때 도시 소비자 20가족이 일손을 돕는다며 내려왔어요. 신명나게 일을 했는데 저녁이 되자 보리 가시 때문에 몸에 두드러기가 나서 다들 밤새 고생을 했죠. 그런 고생을 한 후엔 다들 보리 가격을 더 올려야 한다고 입을 모으더군요.”
정씨는 매년 어린이날 행사, 일손돕기, 추수감사절, 송년의 밤, 여름방학에 마련되는 어린이자연학교와 생명학교 등 각종 행사를 통해 소비자와 생산자 가족이 하나가 된다며 이같이 말했다.

한울공동체 회원들은 4∼7세 유아들의 놀이방을 직접 운영하고 있다. 부모들이 돌아가며 교육을 맡아 문자교육은 배제하고 철저히 자연학습 위주로 가르치고 있으며 간식은 유기농산물을 이용, 직접 만들어 먹인다. 지난 2000년 혈혈단신으로 한울공동체로 귀농한 후 결혼해 살고 있는 김영자(33)씨는 “과소비와 환경파괴가 만연하고 마음의 문까지 꽁꽁 닫아걸고 사는 도시의 삶을 견딜 수가 없었다”며 “공동체 회원들과 끈끈한 정을 나누며 농사지으며 친환경적으로 살아가는 이곳의 생활이 만족스럽다”며 웃었다.

 

"생활 자체를 친환경적으로 바꿔야"

한울공동체 김수원 대표는 “유기농은 농사방법뿐 아니라 삶의 방식 전체를 바꾸는 실천”이라 말한다. 농약과 화학비료를 안 쓰는 것만으로는 땅과 생명을 살리는 진짜 농사꾼의 삶에 반쪽밖에 안된다는 것이다.

김씨는 한울공동체 생산자 회원들은 철저한 유기농법 연구를 위해 끊임없이 공부하며 생활 속에서는 샴푸, 치약, 주방용 세제 등 일체의 합성세제를 사용하지 않는 등 친환경적으로 살기 위해 노력한다고 설명했다.

“한치의 부끄러움도 없도록 일상생활에서도 철저히 친환경적으로 살아가려고 노력합니다. 소비자들에게 건강을 위해 유기농 농산물만 찾을 것이 아니라 삶 자체를 친환경적·생태적으로 바꿔가야 한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습니다.”

그는 “농산물 품질인증제만 할 것이 아니라 ‘생산자 품질인증제’를 도입해야 한다”면서 “생산자들의 삶의 태도를 평가해보면 무공해 삶을 실천하는 한울공동체 회원들이 1등을 차지할 것”이라며 웃었다.

 

7. 실상사 사부대중 공동체-전북 남원시

지난 14일 오전 전북 남원시 산내면 지리산 자락에 자리잡은 실상사 귀농전문학교에는 마을 주민 50여명이 모여 강의를 듣고 있었다.
산내면을 친환경농업지구로 변화시키자는 공감대 속에 마련된 친환경농법교육에 참석한 주민들의 표정은 사뭇 진지했다.
몇몇 주민들은 농약과 제초제를 쓰면서 죄책감을 느껴왔다면서 이제라도 용기를 내 유기농을 시작하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지역주민 주정영(39)씨도 “귀농한 이웃이 농약과 제초제 없이 농사를 짓는 것을 보며 처음엔 제대로 될까 의심했지만 유기농이 농작물을 더 튼튼하게 한다는 것을 알게 됐다”고 말했다.
산내면에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지난 98년 이 지역의 사찰 실상사를 중심으로 시작된 생태공동체 건설 운동이 조금씩 결실을 맺고 있다. ‘실상사 사부대중 공동체’라는 이름 속에는 석가의 가르침을 따르는 네 부류의 사람들, 즉 비구·비구니·남녀 신도 등 ‘사부대중(四部大衆)’이 함께 어우러지자는 의미가 담겨 있다.


공동체는 실상사 주지인 도법스님이 절에 속한 논밭 3만평을 내놓아 귀농전문학교를 세우면서 시작됐다. 귀농학교 졸업생 일부는 99년부터 실상사 농장에 남아 공동체 생활을 시작했다.

8가구로 구성된 농장식구들은 자연농을 실천하며 공동생산·분배하는 한살림을 하고 있다. 또 다른 졸업생들은 산내면으로 귀농을 하기 시작했다.
지금까지 10가구가 귀농했고, 지역 주민들과 어울리며 지역공동체 재건에 힘쓰고 있다. 그 결과 산내면 전체를 친환경농업지구로 변화시키기 위한 움직임도 본격화되고 있다.

2000년 마련된 ‘산내어린이 스스로배움터’에서는 지역주민의 초등학생 자녀 20여명을 보살피고 있으며 내년에는 보육원도 문을 연다.
2001년 설립된 중학교 과정 대안학교인 ‘실상사 작은학교’도 공동체의 중요한 축. 현재 1, 2학년 학생 28명과 교사 10명이 생활과 학습을 함께하는 공동체 생활을 하고 있다.
이곳의 교육과정은 일반학교에서 가르치는 지식외에 체험교육과 특기 살리기에 중점을 두고 있다. 학교엔 기숙사가 따로 없고 학생과 교사가 4∼5명씩 가족을 이뤄 살고 있다.

서울에서 상업에 종사하다 지난 2000년 귀농했다는 김영길(39)씨는 “붕괴된 농촌공동체의 복원을 위해 마을 주민과 귀농한 사람들이 모두 함께 뜻을 모으고 있다”고 말했다.
귀농전문학교 이해경(46) 교감은 “귀농은 도시에서 농촌으로 장소만 옮기는 것이 아니라 삶 자체를 생태적이고 공동체적으로 바꾸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8. 서귀포 "EM환경센타"-제주도 서귀포시

“농약과 비료를 안쓰는 것이 유기농의 전부는 아닙니다. 저희는 유용 미생물군을 농사에 이용, 모든 농사에 관련된 것들이 자연에서 나와 다시 자연으로 돌아가는 사이클구조를 갖도록 하자는 것입니다.”
제주도 서귀포시의 환경생태운동단체 ‘EM환경센터’ 이창홍(37)이사의 말이다. EM이란 Effective Micro-organisms의 머릿글자로 ‘유용 미생물군’이란 뜻. 효모 유산균 누룩균 광합성세균 등 식품의 발효에 관계되는 미생물을 이용해 농산물의 항산화기능을 향상시키면서 부패 방지 효과도 거두는 것이다. 산화는 노화나 부패의 주범으로 알려져 있다.

오는 13일 센터 건물 준공식을 계기로 새출발하는 EM환경센터(이사장 이영민·70)의 연혁은 10여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교편생활 한편으로 지난 80년대 초반부터 자신의 감귤농원에서 각종 유기농법을 시도하던 이영민씨가 지난 91년 일본의 히가 데루오(오키나와대학 원예학과)교수의 ‘유용 미생물이론’을 접하고 자신의 과수원에 도입하면서부터다.

이씨는 교직을 물러나 본격적으로 미생물을 이용한 농사를 시작했으나 관련 정보와 인식 부족으로 초기에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당시 일반농법을 쓰던 감귤농원은 1000평당 연 1500만원의 소득은 충분했으나 EM으로는 그 5분의 1밖에 못거두자 ‘미쳤다’는 손가락질도 숱하게 받았지요. 그러나 지금은 우리 농원의 지력이 월등하고 항산화기능이 우수한 EM감귤은 값이 일반 귤의 2배나 되자 배우려는 사람들이 많아졌습니다.”
이씨의 ‘미친 실험’은 95년 미생물학회에서 히가 데루오교수의 EM이론이 공격받으면서 타격을 받았다. 일부 학자들은 “단일 미생물이 아닌 미생물군을 함께 배양할 경우 히가 교수의 주장과는 다른 결과가 나올 수 있다”며 EM무용론을 제기했고, 급기야 “일본 미생물이 한국 토양을 망친다”는 감정적 반발까지 일었다. 난감해진 이씨는 아들을 자신의 연구작업에 참여시켰다.

이씨는 제주도에서는 알아주는 수재로서 서울대 물리학과(86학번)를 졸업한 아들 창홍씨를 95년 일본에 유학보내 히가교수에게 배우도록 했다. 99년 초 석사학위를 받고 귀국한 창홍씨는 EM을 농사에만 국한시키지 않고 수질정화 등 환경처리에까지 확대시키는 한편 주변 농가 설득에도 나섰다. 때마침 제주 감귤값은 폭락했고, 그동안 비료와 농약으로 지력 약화가 눈에 띄게 나타나 다른 방법을 모색하던 과수농들이 EM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국제통화기금(IMF) 체제 후 귀농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높아진 시대적 영향도 겹쳤다.

현재 남제주지역에만 모두 20여 농가가 EM농법으로 감귤이나 감자 등 밭작물을 재배하고 있다. 이들은 ‘EM항산화감귤’이란 브랜드로 생활협동조합 수도권연합회·한살림공동체 등 직거래 라인을 통해 출하하고 있으며, 값은 올해의 경우 일반 감귤의 2~2.5배 정도에 팔리고 있다. EM작목반 회장 윤석환(46·제주도 남제주군 표선읍)씨는 “순수 외지인 5가구를 포함해 현재 20여 가구가 남제주 일대에서 EM농법을 하고 있으며 공동 출하·정산 등 공동체적 운영을 하고 있다”고 밝혔다. 지난 97년 EM환경농업학교가 문을 연 이래 지난 9월의 59기까지 총 1500여명의 수료생이 EM환경농법을 배우고 갔다.

EM농법은 의외로 간단하다. 각종 유용 미생물 배양액을 물에 1000배 정도 희석시켜 땅이나 작물에 뿌려준다. 잡초는 베어서 바닥에 그냥 깔아줌으로써 자연 퇴비를 만든다. 상한 우유나 음식쓰레기 등 각종 음식쓰레기도 모아 EM원액을 넣어 발효시키면 훌륭한 비료가 된다. 이창홍이사는 “EM은 미생물의 이용여부에 따라 부패와 발효라는 대극적 결과를 가져오는 것”이라며 “실생활 속의 기존 방식과 조건을 그대로 이용하면서 전혀 다른 결과를 가져온다는 것이 최대 장점”이라고 강조했다.

 

9. 정토회-서울 서초동 - ‘맑은 마음 깨끗한 땅’ 꿈꾼다

불교계의 대표적 사회운동단체인 ‘정토회’는 친환경적인 삶의 방식을 실천하는 도심 속의 생태공동체이기도 하다.
‘맑은 마음, 좋은 벗, 깨끗한 땅’을 모토로 지난 88년 창립됐다. 개인은 행복하고, 사회는 평화로우며, 자연은 아름다운 세상을 구현하고자 하는 이들이 법륜스님을 중심으로 모여 만든 단체이다. 북한돕기단체인 좋은벗들, 국제기아·질병·문맹퇴치기구인 JTS, 불교환경교육원 등 탄탄한 산하기관들을 두고 있는 정토회는 지난 99년 서울 서초동 정토회관에 입주한 후부터 ‘쓰레기 제로 운동’등 본격적인 생활환경운동을 시작했다.

정토회관에서는 남녀 활동가 50여명이 공동체 생활을 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출·퇴근하는 상근자 및 자원봉사자들까지 많게는 100여명이 매끼 함께 식사를 하고 있지만 외부로 배출되는 쓰레기가 하나도 없다. 식사 때마다 음식을 남김없이 비우는 ‘발우공양’을 하고 요리를 할 때도 쓰레기를 최소로 줄여 음식 쓰레기가 매끼 한줌 정도밖에 나오지 않기 때문이다. 그나마 이런 쓰레기들도 지렁이에게 먹이로 주거나 옥상 위의 흙통 속에 섞어 퇴비로 만들고 있다.

화장실에는 휴지도 휴지통도 없다. 대신 손을 닦을 수 있는 샤워기가 설치돼 있다. 화학약품이 첨가된 휴지를 쓰는 것은 나무도 죽이고 건강도 해치는 일이기 때문에 뒷물을 하기로 한 것. 대부분의 여성 활동가들은 일회용 생리대가 아닌 면생리대를 쓰고 있다. 또한 회관 안으로 비닐과 일회용품을 반입하는 것 자체가 금지돼 있고 철저한 재활용과 분리수거가 이뤄지고 있다. 한달에 한번 생활 속의 환경운동 실천사항을 점검하는 ‘내 마음의 푸른마당’이라는 환경공청회도 열고 있다.

8년째 정토회에서 공동체 생활을 하고 있는 박석동(33) 불교환경교육원 사무국장은 “쓰레기 제로운동은 쓰레기 양만 줄이자는 것이 아니라 우리 삶의 패턴 자체를 바꿔 자연과 인간이 상생할 수 있는 미래문명을 창조하는 데 핵심이 있다”면서 “회관 내에서 실험 속에 만들어지는 대안적인 실천지침들이 전국의 가정으로 전파될 수 있길 바란다”고 말했다.

성별과 나이에 상관없이 모두 평등한 관계를 맺고 있는 공동체 구성원들은 새벽 4시30분부터 밤 11시 취침시간까지 정확한 일과에 맞춰 함께 일하고 기도하며 생활하고 있다. 어떤 강요도 감시도 없지만 모두들 더 적게 갖고 더 많이 나누려고, 더 많이 일하고 더 적게 자려고 애쓴다. 매일 아침마다 서로의 일과를 공유하는 대화시간을 갖고 매달 둘째주 토요일엔 함께 모여 공동체 구성원으로서 지켜야 할 약속에 어긋난 행위에 대해 스스로 잘못을 밝히고 참회하는 행사인 ‘포살(布薩)’을 진행한다.

“너와 내가 따로 있지 않기 때문에 내가 더 잘 살기 위해 남을 억압하면 그건 곧 나를 해치는 일입니다. 자연과의 관계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적게 먹고 적게 입고 적게 쓰며 조금 불편해도 나의 작은 실천이 자연과 인간을 살린다면 그건 곧 나를 위한 일이고 정말 행복한 일이죠.”

장도연(33) 기획실장은 “정토회에서는 많이 가지고 많이 쓰는 것이 유일한 행복의 기준인 양 강요하는 자본주의적 가치관에 역행하는 실험이 이뤄지고 있다”고 말했다.

 

10.변산공동체 -전라북도 부안군 - 변산공동체 사람들


-도시 버리기

춘천에 사는 유씨는 요즘 이런 생각을 자주 한다. "내가 지금 제대로 살고 있는 건가? 평생 이런 식으로 살아도 되나? 내 뜻대로 내 삶의 방식을 만들어 갈 수는 없는 건가?" 물론 학교에서 배운 대로라면 '노력만 하면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그런데 유씨는 왠지 그렇지 않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 것 같다. 따지고 보면 유씨는 태어난 이후로 30년 가까이 한 가지 정해진 삶의 방식대로 살고 있다.

시멘트로 지어진 집에 살면서 공장에서 대량으로 가공된 음식을 먹고, 기계로 찍어낸 획일적인 옷을 입으며 살아왔다. 유씨는 자본주의적 도시 문명 속에서 획일적인 교육, 획일적인 문화, 획일적인 사람들 속에서 세 들어 살고 있는 셈이다.

1995년부터 전라북도 부안군 변산면 운산리에 뜻있는 사람들과 내려가 공동체를 형성하고 농사를 짓고 있는 윤구병(전 충북대 철학과 교수) 선생은 이런 도시 문화를 상품경제에 바탕을 둔 '만드는 문화'라고 정의한다. 반면에 자연경제에 바탕을 둔 문화는 '기르는 문화', 그 문화를 가꾸어온 생활양식은 '공동체적 생활양식'이다. 기르는 사람이 중심이 되는 기르는 문화에서는 사람과 사용 가치가 우선이지만, 자본이 주체가 되는 만드는 문화는 인간과 자연까지도 상품화해서 공동체를 해체시켜 이익사회로 만든다. 항상 이익이 되는 것, 새로운 것만을 추구하는 도시 문명은 결국 인류를 막다른 곳으로 몰고 간다는 얘기다.  

그래서 윤구병 선생과 뜻을 같이 하는 몇몇 사람은 6년 전부터 아무런 연고가 없는 변산에 내려가 생산 공동체를 형성하고 공동체학교를 열면서 '기르는 문화'를 추구하고 있다. 글쓴이는 지난 8월 14일부터 17일까지 변산으로 여름 연수를 떠난 한림학보사 기자들과 함께 3박4일 동안 지내면서 변산 공동체의 가족들을 만나봤다.


-살림 살리기

변산은 살림하기 좋은 땅이다. 서해의 반도라서 갯벌(요즘 몸살을 앓고 있는 새만금이 바로 근처에 있다)이 많고 들도 충분히 넓어서 벼농사에도 적격이다. 또 공동체 마을은 산자락에 자리잡고 있어서 산살림도 가능한 곳이다. 그래서 이곳에서는 산살림, 들살림, 갯살림을 함께 살 수 있다. 논과 밭에는 약 100여종의 작물을 심어서 철마다 거둬들이고, 산과 들에서는 40여종의 풀을 뜯어다가 효소를 담근다. 갯벌에서 직접 거둬들이는 것은 없지만 아이들의 해변학교의 실습장으로 쓰인다.

변산공동체의 가족 규모는 성인 20명에 아이들 6-7명 정도인데 이들만으로 오천평 정도의 경지에 100여종의 작물을 유기농법으로 기르는 일은 결코 쉽지가 않다. 하지만 공동체의 자급자족을 위해서 투기성 환금 작물 몇 종을 집중적으로 심는 대신 철에 맞는 여러 작물들을 때마다 길러내고 있다. 윤구병 선생은 잘못된 농업 정책, 농촌 일손의 부족, 다수확품종의 선택, 투기영농의 확산, 화학비료와 농약의 사용 증가로 농촌의 땅과 살림 그리고 사람들의 의식이 황폐해졌다고 주장한다. 환금 작물에 연연하지 않은 생명을 살리는 농업만이 인간과 자연을 회복시키고 공동체를 살린다는 것이다.  

그래서 변산 공동체 식구들은 모도 직접 심고 벼도 낫으로 베는 등 농기계의 사용을 최대한 줄였다. 일체의 화학비료를 쓰지 않는 대신 병충해에 강한 토종 씨앗을 발굴하고 한편으로 손을 부지런히 놀려서 김매기를 했다. 물론 처음에는 실패도 많았다. 농약을 쓰지 않아 작물이 제대로 자라지 않거나 열매가 적게 맺혀 소출을 제대로 내지 못했다. 그러나 해를 거듭할수록 유기농의 효과를 보기 시작했다. 지난 5년간 적자를 보던 것이 1999년 말에는 소출과 집필 활동을 합해서 800만원 정도의 흑자를 본 것이다.

변산 공동체의 여름 하루 일과는 새벽 5시 30분에 일어나서 7시까지 식전 작업을 하고, 7시 30분에 식사를 한 다음 8시부터 일을 나누어 오전 작업을 한다. 1시에 점심을 먹는데 날이 더워서 3시까지 쉰다. 3시부터 저녁 6시까지 오후 작업을 마치고 7시에 저녁을 먹은 다음 가족들이 모여서 작업회의를 함으로써 하루를 마무리한다. 작업회의를 빼면 보통 농가와 비슷한 일과이다.

-교육 기르기

우리들이 변산을 방문했을 때는 방학을 해서 학교를 볼 수 가 없었다. 어떤 사람은 "방학이라도 학교는 있을 거 아니냐?"라고 물을지 모르겠지만 방학을 하면 학교도 없다. 변산 공동체에는 학교 건물이 따로 없고 학교가 열릴 때 가족과 손님의 숙소로 쓰는 재실, 산과 들, 갯벌 그리고 폐교 자리가 학교로 쓰인다. 변산 공동체에는 중·고등학교 과정을 함께 열고 있다. 초등학교는 현재 따로 열지않고 문을 닫은 마포 초등학교 자리에 열린 학교를 열 예정이다.  

중고등반의 시간표는 오전 정보교육과 오후 기초살림 교육으로 나뉜다. 정보교육은 일반학교에서도 있는 국어, 철학, 수학 인문학, 영어, 컴퓨터, 제2외국어 등을 말하며, 기초살림 교육은 공예, 학교 텃밭 일구기, 옷감 물들이기, 갯살림 익히기 등이 있다. 학생들은 화요일과 수요일은 마을 재실에 묶으면서 정보교육과 함께 마을 농사일을 거들면서 기초살림 교육을 받게 된다. 월, 금, 토요일에는 마포초등학교에 먹고 자면서 교육에 참여하고 갯살림을 익힌다. 전체 학생은 11명인데 그중 9명이 중학생이고 나머지 2명은 고등학생이다. 선생님은 정보교육 담당 7명, 기초살림 교육 담당 1명이고 공동체 가족들도 교육에 참여하고 있다. 중·고등반 외에도 여름과 겨울에는 다른 지역의 아이들도 참여하는 계절학교가 따로 열린다. 지역 주민은 교육 분야에서 변산 공동체를 높이 신뢰하기 때문에 많은 가구가 자녀를 변산 공동체 학교에 보내고 있으며, 놀이방을 변산 공동체에 위탁 운영하고 있다.

변산 공동체 가족들이 외부 사람에게 가장 많이 받는 질문 중의 하나는 "실험 교육의 효과가 있는가?"이다. 매우 곤혹스런 질문이다. 그러나 윤구병 선생의 답은 간단하다. '교육의 효과는 단번에 나타나지 않는다.' 교육의 효과는 10년, 20년 아니면 더 긴 세월 후에야 나타난다는 것이다. 하기야 흔히 사람들이 쓰는 '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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