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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태공동체

생체공동체를 찾아서...두번째(6-10)

by 치우 posted May 14,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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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쌍호공동체-경북 의성군

지난 7일 오후 10시 낙동강가의 조용한 시골마을인 경북 의성군 안사면 쌍호리. 오후 6시가 넘으면 끊어지는 버스때문에 택시를 잡아타고 도착한 쌍호리는 겉으로 보기엔 여느 농촌과 다를 바 없는 평범한 시골마을이었다. 그러나 이곳은 ‘쌍호공동체’라는 이름으로 13년째 유기농을 고집하며 땅과 자연, 인간을 살리는 ‘생명운동’을 실천하는 15가구가 모여살고 있는 곳이다.

15가구 모두 가톨릭 신자인 쌍호공동체에선 ‘나’보다 ‘우리’가 우선이다. 중요한 일은 무엇이든 회의를 통해 결정한다. 어떤 작물을 얼마만큼 재배할 것인지 1년의 농사계획부터 환갑잔치를 어디서 어떻게 할 것인지까지. 회의는 부부동반이 원칙, 성원들의 집을 돌아다니며 두런두런 정담을 나누다보니 모두가 한가족처럼 가깝다.

공동체 성원들은 설도 함께 쇤다. 차례를 마치고 오후에 함께 모여 세배를 하고 선물도 나누며 집집마다 마련한 음식을 가져와 나눠먹는다. 98년에는 같은 해 환갑을 맞은 어른 6명의 환갑잔치를 함께하기도 했다.

8일 오전 비가 내리는 가운데 김정상(50)·조옥희(50)씨 부부는 비닐하우스에서 동치미용 무를 뽑아 손질하고 있었다. 하나하나 정성스럽게 다듬어 6개씩 볏짚으로 묶어냈다.
“무가 100일된 아기 다리처럼 통통하고 예쁘네요. 무슨 일이든 정성을 다하는 것이 중요하죠.” 김씨는 벌레 먹은 농산물을 더럽다고 생각하면 안된다고 강조했다. 벌레도 못먹는 농산물은 사람도 못먹는 것이기 때문이다.

“소비자들도 생명운동에 동참한다는 사명감을 가졌으면 합니다. 소비자의 호응이 없으면 농민들의 생명운동도 지속되기 힘들 테니까요.”

쌍호공동체를 이끌어온 우영식(64)씨 댁으로 발길을 옮기니 직접 깎아 말렸다는 검붉은 빛깔의 맛좋은 곶감을 내놓았다.
“시중에서 파는 발갛게 빛고운 곶감은 먹지 마세요. 감을 깎자마자 유황으로 훈연을 한다고 합디다. 도시사람들이 보기 좋은 것만 따지고 보얗게 분이 난 건 먼지 묻었다며 먹지 않기 때문이라나요.”
우씨의 아내 최아녀(62)씨도 “신선하게 보이기 위해 수확하기 직전에 농약을 많이 뿌리기 때문에 싱싱한 채소도 의심해봐야 한다”고 거들었다.

“편한 방법 마다하고 미련하게 고생한다고 비야냥 거리던 사람들도 이제는 유기농하겠다고 나서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생명운동하겠다는 마음가짐이 안돼 있으면 공동체의 일원으로 받아주지 않습니다.” 농사꾼으로서의 이익을 남기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 땅의 모든 생명을 존중하는 마음가짐이 더 중요하다고 힘을 주어 말하는 우씨의 모습에서 참된 농군의 아름다움이 물씬 배어나왔다.

 

6. 한울공동체-전북 부안군

지난 8일 오전, 전북 부안군 변산면 마포리 한울공동체 김수원(39) 대표 집에 소담한 아침상이 차려졌다. 마침 아내와 아이들은 서울 친척집에 다니러 갔고, 김씨와 그의 어머니 허인균(72)씨만 밥상을 함께 했다.

유기농 채소로 만든 세가지 김치와 맛깔스러운 젓갈, 밭에서 막 뜯어온 향그러운 쑥갓을 듬뿍 넣은 생선찌개가 입맛을 돋웠다. 밥그릇을 깨끗이 비운 후 설거지를 돕겠다고 나섰는데 주방용세제가 보이질 않았다.
“샴푸랑 치약도 안 쓴당께. 우리 유기농하는 집들은 다들 그려. 쌀뜨물 받아놨다 씻으면 기름기도 깨끗하게 닦이니께.” 허씨는 쌀뜨물을 이용해 익숙한 솜씨로 설거지를 마쳤다.

변산면 일대의 유기농 16가구로 이뤄진 한울공동체는 농촌마을로는 드물게 30∼40대 젊은 농사꾼들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토박이와 귀농가구가 절반정도씩이다. 90년부터 이들은 농약과 화학비료를 전혀 쓰지 않고 기계와 비닐도 가급적 쓰지 않는 유기농사를 짓고 있다. 단일 종목으로 대규모 농사를 짓는 단작도 자연의 질서를 무너뜨린다는 이유로 금하고 다품종 소량생산의 원칙을 고수한다. 그리고 합성세제도 쓰지 않는 등 일상생활에서도 철저히 ‘무공해 삶’을 추구하고 있다.

한울공동체에서 유기농을 처음 시작한 이는 정경식(43)씨. 지난 84년부터 홀로 고군분투하던 정씨를 중심으로 토박이 농가 2가구가 뜻을 모아 90년 한울공동체의 싹을 틔웠다. 지역의 소비자들과는 직거래 유통을 통해 농산물을 나눠오다 지난 2000년 한울공동체와 소비자 1000여가구를 잇는 생활협동조합을 설립했다. 전주 시내에 유기농산물매장도 마련했다.

한울공동체는 공동계획에 의해 생산·유통·판매를 함께 한다. 소비자들은 최소 다섯가정 단위로 매주 필요한 농산물을 신청토록 하고 있다. 옆집에 누가 사는지도 모르는 도시 아파트 주민들도 한울공동체의 가족이 되고나서부터 유기농산물 구입을 매개로 자연스럽게 매주 만남을 갖게 되는 것이다.

“지난해 보리수확 때 도시 소비자 20가족이 일손을 돕는다며 내려왔어요. 신명나게 일을 했는데 저녁이 되자 보리 가시 때문에 몸에 두드러기가 나서 다들 밤새 고생을 했죠. 그런 고생을 한 후엔 다들 보리 가격을 더 올려야 한다고 입을 모으더군요.”
정씨는 매년 어린이날 행사, 일손돕기, 추수감사절, 송년의 밤, 여름방학에 마련되는 어린이자연학교와 생명학교 등 각종 행사를 통해 소비자와 생산자 가족이 하나가 된다며 이같이 말했다.

한울공동체 회원들은 4∼7세 유아들의 놀이방을 직접 운영하고 있다. 부모들이 돌아가며 교육을 맡아 문자교육은 배제하고 철저히 자연학습 위주로 가르치고 있으며 간식은 유기농산물을 이용, 직접 만들어 먹인다. 지난 2000년 혈혈단신으로 한울공동체로 귀농한 후 결혼해 살고 있는 김영자(33)씨는 “과소비와 환경파괴가 만연하고 마음의 문까지 꽁꽁 닫아걸고 사는 도시의 삶을 견딜 수가 없었다”며 “공동체 회원들과 끈끈한 정을 나누며 농사지으며 친환경적으로 살아가는 이곳의 생활이 만족스럽다”며 웃었다.

 

"생활 자체를 친환경적으로 바꿔야"

한울공동체 김수원 대표는 “유기농은 농사방법뿐 아니라 삶의 방식 전체를 바꾸는 실천”이라 말한다. 농약과 화학비료를 안 쓰는 것만으로는 땅과 생명을 살리는 진짜 농사꾼의 삶에 반쪽밖에 안된다는 것이다.

김씨는 한울공동체 생산자 회원들은 철저한 유기농법 연구를 위해 끊임없이 공부하며 생활 속에서는 샴푸, 치약, 주방용 세제 등 일체의 합성세제를 사용하지 않는 등 친환경적으로 살기 위해 노력한다고 설명했다.

“한치의 부끄러움도 없도록 일상생활에서도 철저히 친환경적으로 살아가려고 노력합니다. 소비자들에게 건강을 위해 유기농 농산물만 찾을 것이 아니라 삶 자체를 친환경적·생태적으로 바꿔가야 한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습니다.”

그는 “농산물 품질인증제만 할 것이 아니라 ‘생산자 품질인증제’를 도입해야 한다”면서 “생산자들의 삶의 태도를 평가해보면 무공해 삶을 실천하는 한울공동체 회원들이 1등을 차지할 것”이라며 웃었다.

 

7. 실상사 사부대중 공동체-전북 남원시

지난 14일 오전 전북 남원시 산내면 지리산 자락에 자리잡은 실상사 귀농전문학교에는 마을 주민 50여명이 모여 강의를 듣고 있었다.
산내면을 친환경농업지구로 변화시키자는 공감대 속에 마련된 친환경농법교육에 참석한 주민들의 표정은 사뭇 진지했다.
몇몇 주민들은 농약과 제초제를 쓰면서 죄책감을 느껴왔다면서 이제라도 용기를 내 유기농을 시작하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지역주민 주정영(39)씨도 “귀농한 이웃이 농약과 제초제 없이 농사를 짓는 것을 보며 처음엔 제대로 될까 의심했지만 유기농이 농작물을 더 튼튼하게 한다는 것을 알게 됐다”고 말했다.
산내면에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지난 98년 이 지역의 사찰 실상사를 중심으로 시작된 생태공동체 건설 운동이 조금씩 결실을 맺고 있다. ‘실상사 사부대중 공동체’라는 이름 속에는 석가의 가르침을 따르는 네 부류의 사람들, 즉 비구·비구니·남녀 신도 등 ‘사부대중(四部大衆)’이 함께 어우러지자는 의미가 담겨 있다.


공동체는 실상사 주지인 도법스님이 절에 속한 논밭 3만평을 내놓아 귀농전문학교를 세우면서 시작됐다. 귀농학교 졸업생 일부는 99년부터 실상사 농장에 남아 공동체 생활을 시작했다.

8가구로 구성된 농장식구들은 자연농을 실천하며 공동생산·분배하는 한살림을 하고 있다. 또 다른 졸업생들은 산내면으로 귀농을 하기 시작했다.
지금까지 10가구가 귀농했고, 지역 주민들과 어울리며 지역공동체 재건에 힘쓰고 있다. 그 결과 산내면 전체를 친환경농업지구로 변화시키기 위한 움직임도 본격화되고 있다.

2000년 마련된 ‘산내어린이 스스로배움터’에서는 지역주민의 초등학생 자녀 20여명을 보살피고 있으며 내년에는 보육원도 문을 연다.
2001년 설립된 중학교 과정 대안학교인 ‘실상사 작은학교’도 공동체의 중요한 축. 현재 1, 2학년 학생 28명과 교사 10명이 생활과 학습을 함께하는 공동체 생활을 하고 있다.
이곳의 교육과정은 일반학교에서 가르치는 지식외에 체험교육과 특기 살리기에 중점을 두고 있다. 학교엔 기숙사가 따로 없고 학생과 교사가 4∼5명씩 가족을 이뤄 살고 있다.

서울에서 상업에 종사하다 지난 2000년 귀농했다는 김영길(39)씨는 “붕괴된 농촌공동체의 복원을 위해 마을 주민과 귀농한 사람들이 모두 함께 뜻을 모으고 있다”고 말했다.
귀농전문학교 이해경(46) 교감은 “귀농은 도시에서 농촌으로 장소만 옮기는 것이 아니라 삶 자체를 생태적이고 공동체적으로 바꾸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8. 서귀포 "EM환경센타"-제주도 서귀포시

“농약과 비료를 안쓰는 것이 유기농의 전부는 아닙니다. 저희는 유용 미생물군을 농사에 이용, 모든 농사에 관련된 것들이 자연에서 나와 다시 자연으로 돌아가는 사이클구조를 갖도록 하자는 것입니다.”
제주도 서귀포시의 환경생태운동단체 ‘EM환경센터’ 이창홍(37)이사의 말이다. EM이란 Effective Micro-organisms의 머릿글자로 ‘유용 미생물군’이란 뜻. 효모 유산균 누룩균 광합성세균 등 식품의 발효에 관계되는 미생물을 이용해 농산물의 항산화기능을 향상시키면서 부패 방지 효과도 거두는 것이다. 산화는 노화나 부패의 주범으로 알려져 있다.

오는 13일 센터 건물 준공식을 계기로 새출발하는 EM환경센터(이사장 이영민·70)의 연혁은 10여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교편생활 한편으로 지난 80년대 초반부터 자신의 감귤농원에서 각종 유기농법을 시도하던 이영민씨가 지난 91년 일본의 히가 데루오(오키나와대학 원예학과)교수의 ‘유용 미생물이론’을 접하고 자신의 과수원에 도입하면서부터다.

이씨는 교직을 물러나 본격적으로 미생물을 이용한 농사를 시작했으나 관련 정보와 인식 부족으로 초기에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당시 일반농법을 쓰던 감귤농원은 1000평당 연 1500만원의 소득은 충분했으나 EM으로는 그 5분의 1밖에 못거두자 ‘미쳤다’는 손가락질도 숱하게 받았지요. 그러나 지금은 우리 농원의 지력이 월등하고 항산화기능이 우수한 EM감귤은 값이 일반 귤의 2배나 되자 배우려는 사람들이 많아졌습니다.”
이씨의 ‘미친 실험’은 95년 미생물학회에서 히가 데루오교수의 EM이론이 공격받으면서 타격을 받았다. 일부 학자들은 “단일 미생물이 아닌 미생물군을 함께 배양할 경우 히가 교수의 주장과는 다른 결과가 나올 수 있다”며 EM무용론을 제기했고, 급기야 “일본 미생물이 한국 토양을 망친다”는 감정적 반발까지 일었다. 난감해진 이씨는 아들을 자신의 연구작업에 참여시켰다.

이씨는 제주도에서는 알아주는 수재로서 서울대 물리학과(86학번)를 졸업한 아들 창홍씨를 95년 일본에 유학보내 히가교수에게 배우도록 했다. 99년 초 석사학위를 받고 귀국한 창홍씨는 EM을 농사에만 국한시키지 않고 수질정화 등 환경처리에까지 확대시키는 한편 주변 농가 설득에도 나섰다. 때마침 제주 감귤값은 폭락했고, 그동안 비료와 농약으로 지력 약화가 눈에 띄게 나타나 다른 방법을 모색하던 과수농들이 EM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국제통화기금(IMF) 체제 후 귀농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높아진 시대적 영향도 겹쳤다.

현재 남제주지역에만 모두 20여 농가가 EM농법으로 감귤이나 감자 등 밭작물을 재배하고 있다. 이들은 ‘EM항산화감귤’이란 브랜드로 생활협동조합 수도권연합회·한살림공동체 등 직거래 라인을 통해 출하하고 있으며, 값은 올해의 경우 일반 감귤의 2~2.5배 정도에 팔리고 있다. EM작목반 회장 윤석환(46·제주도 남제주군 표선읍)씨는 “순수 외지인 5가구를 포함해 현재 20여 가구가 남제주 일대에서 EM농법을 하고 있으며 공동 출하·정산 등 공동체적 운영을 하고 있다”고 밝혔다. 지난 97년 EM환경농업학교가 문을 연 이래 지난 9월의 59기까지 총 1500여명의 수료생이 EM환경농법을 배우고 갔다.

EM농법은 의외로 간단하다. 각종 유용 미생물 배양액을 물에 1000배 정도 희석시켜 땅이나 작물에 뿌려준다. 잡초는 베어서 바닥에 그냥 깔아줌으로써 자연 퇴비를 만든다. 상한 우유나 음식쓰레기 등 각종 음식쓰레기도 모아 EM원액을 넣어 발효시키면 훌륭한 비료가 된다. 이창홍이사는 “EM은 미생물의 이용여부에 따라 부패와 발효라는 대극적 결과를 가져오는 것”이라며 “실생활 속의 기존 방식과 조건을 그대로 이용하면서 전혀 다른 결과를 가져온다는 것이 최대 장점”이라고 강조했다.

 

9. 정토회-서울 서초동 - ‘맑은 마음 깨끗한 땅’ 꿈꾼다

불교계의 대표적 사회운동단체인 ‘정토회’는 친환경적인 삶의 방식을 실천하는 도심 속의 생태공동체이기도 하다.
‘맑은 마음, 좋은 벗, 깨끗한 땅’을 모토로 지난 88년 창립됐다. 개인은 행복하고, 사회는 평화로우며, 자연은 아름다운 세상을 구현하고자 하는 이들이 법륜스님을 중심으로 모여 만든 단체이다. 북한돕기단체인 좋은벗들, 국제기아·질병·문맹퇴치기구인 JTS, 불교환경교육원 등 탄탄한 산하기관들을 두고 있는 정토회는 지난 99년 서울 서초동 정토회관에 입주한 후부터 ‘쓰레기 제로 운동’등 본격적인 생활환경운동을 시작했다.

정토회관에서는 남녀 활동가 50여명이 공동체 생활을 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출·퇴근하는 상근자 및 자원봉사자들까지 많게는 100여명이 매끼 함께 식사를 하고 있지만 외부로 배출되는 쓰레기가 하나도 없다. 식사 때마다 음식을 남김없이 비우는 ‘발우공양’을 하고 요리를 할 때도 쓰레기를 최소로 줄여 음식 쓰레기가 매끼 한줌 정도밖에 나오지 않기 때문이다. 그나마 이런 쓰레기들도 지렁이에게 먹이로 주거나 옥상 위의 흙통 속에 섞어 퇴비로 만들고 있다.

화장실에는 휴지도 휴지통도 없다. 대신 손을 닦을 수 있는 샤워기가 설치돼 있다. 화학약품이 첨가된 휴지를 쓰는 것은 나무도 죽이고 건강도 해치는 일이기 때문에 뒷물을 하기로 한 것. 대부분의 여성 활동가들은 일회용 생리대가 아닌 면생리대를 쓰고 있다. 또한 회관 안으로 비닐과 일회용품을 반입하는 것 자체가 금지돼 있고 철저한 재활용과 분리수거가 이뤄지고 있다. 한달에 한번 생활 속의 환경운동 실천사항을 점검하는 ‘내 마음의 푸른마당’이라는 환경공청회도 열고 있다.

8년째 정토회에서 공동체 생활을 하고 있는 박석동(33) 불교환경교육원 사무국장은 “쓰레기 제로운동은 쓰레기 양만 줄이자는 것이 아니라 우리 삶의 패턴 자체를 바꿔 자연과 인간이 상생할 수 있는 미래문명을 창조하는 데 핵심이 있다”면서 “회관 내에서 실험 속에 만들어지는 대안적인 실천지침들이 전국의 가정으로 전파될 수 있길 바란다”고 말했다.

성별과 나이에 상관없이 모두 평등한 관계를 맺고 있는 공동체 구성원들은 새벽 4시30분부터 밤 11시 취침시간까지 정확한 일과에 맞춰 함께 일하고 기도하며 생활하고 있다. 어떤 강요도 감시도 없지만 모두들 더 적게 갖고 더 많이 나누려고, 더 많이 일하고 더 적게 자려고 애쓴다. 매일 아침마다 서로의 일과를 공유하는 대화시간을 갖고 매달 둘째주 토요일엔 함께 모여 공동체 구성원으로서 지켜야 할 약속에 어긋난 행위에 대해 스스로 잘못을 밝히고 참회하는 행사인 ‘포살(布薩)’을 진행한다.

“너와 내가 따로 있지 않기 때문에 내가 더 잘 살기 위해 남을 억압하면 그건 곧 나를 해치는 일입니다. 자연과의 관계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적게 먹고 적게 입고 적게 쓰며 조금 불편해도 나의 작은 실천이 자연과 인간을 살린다면 그건 곧 나를 위한 일이고 정말 행복한 일이죠.”

장도연(33) 기획실장은 “정토회에서는 많이 가지고 많이 쓰는 것이 유일한 행복의 기준인 양 강요하는 자본주의적 가치관에 역행하는 실험이 이뤄지고 있다”고 말했다.

 

10.변산공동체 -전라북도 부안군 - 변산공동체 사람들


-도시 버리기

춘천에 사는 유씨는 요즘 이런 생각을 자주 한다. "내가 지금 제대로 살고 있는 건가? 평생 이런 식으로 살아도 되나? 내 뜻대로 내 삶의 방식을 만들어 갈 수는 없는 건가?" 물론 학교에서 배운 대로라면 '노력만 하면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그런데 유씨는 왠지 그렇지 않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 것 같다. 따지고 보면 유씨는 태어난 이후로 30년 가까이 한 가지 정해진 삶의 방식대로 살고 있다.

시멘트로 지어진 집에 살면서 공장에서 대량으로 가공된 음식을 먹고, 기계로 찍어낸 획일적인 옷을 입으며 살아왔다. 유씨는 자본주의적 도시 문명 속에서 획일적인 교육, 획일적인 문화, 획일적인 사람들 속에서 세 들어 살고 있는 셈이다.

1995년부터 전라북도 부안군 변산면 운산리에 뜻있는 사람들과 내려가 공동체를 형성하고 농사를 짓고 있는 윤구병(전 충북대 철학과 교수) 선생은 이런 도시 문화를 상품경제에 바탕을 둔 '만드는 문화'라고 정의한다. 반면에 자연경제에 바탕을 둔 문화는 '기르는 문화', 그 문화를 가꾸어온 생활양식은 '공동체적 생활양식'이다. 기르는 사람이 중심이 되는 기르는 문화에서는 사람과 사용 가치가 우선이지만, 자본이 주체가 되는 만드는 문화는 인간과 자연까지도 상품화해서 공동체를 해체시켜 이익사회로 만든다. 항상 이익이 되는 것, 새로운 것만을 추구하는 도시 문명은 결국 인류를 막다른 곳으로 몰고 간다는 얘기다.  

그래서 윤구병 선생과 뜻을 같이 하는 몇몇 사람은 6년 전부터 아무런 연고가 없는 변산에 내려가 생산 공동체를 형성하고 공동체학교를 열면서 '기르는 문화'를 추구하고 있다. 글쓴이는 지난 8월 14일부터 17일까지 변산으로 여름 연수를 떠난 한림학보사 기자들과 함께 3박4일 동안 지내면서 변산 공동체의 가족들을 만나봤다.


-살림 살리기

변산은 살림하기 좋은 땅이다. 서해의 반도라서 갯벌(요즘 몸살을 앓고 있는 새만금이 바로 근처에 있다)이 많고 들도 충분히 넓어서 벼농사에도 적격이다. 또 공동체 마을은 산자락에 자리잡고 있어서 산살림도 가능한 곳이다. 그래서 이곳에서는 산살림, 들살림, 갯살림을 함께 살 수 있다. 논과 밭에는 약 100여종의 작물을 심어서 철마다 거둬들이고, 산과 들에서는 40여종의 풀을 뜯어다가 효소를 담근다. 갯벌에서 직접 거둬들이는 것은 없지만 아이들의 해변학교의 실습장으로 쓰인다.

변산공동체의 가족 규모는 성인 20명에 아이들 6-7명 정도인데 이들만으로 오천평 정도의 경지에 100여종의 작물을 유기농법으로 기르는 일은 결코 쉽지가 않다. 하지만 공동체의 자급자족을 위해서 투기성 환금 작물 몇 종을 집중적으로 심는 대신 철에 맞는 여러 작물들을 때마다 길러내고 있다. 윤구병 선생은 잘못된 농업 정책, 농촌 일손의 부족, 다수확품종의 선택, 투기영농의 확산, 화학비료와 농약의 사용 증가로 농촌의 땅과 살림 그리고 사람들의 의식이 황폐해졌다고 주장한다. 환금 작물에 연연하지 않은 생명을 살리는 농업만이 인간과 자연을 회복시키고 공동체를 살린다는 것이다.  

그래서 변산 공동체 식구들은 모도 직접 심고 벼도 낫으로 베는 등 농기계의 사용을 최대한 줄였다. 일체의 화학비료를 쓰지 않는 대신 병충해에 강한 토종 씨앗을 발굴하고 한편으로 손을 부지런히 놀려서 김매기를 했다. 물론 처음에는 실패도 많았다. 농약을 쓰지 않아 작물이 제대로 자라지 않거나 열매가 적게 맺혀 소출을 제대로 내지 못했다. 그러나 해를 거듭할수록 유기농의 효과를 보기 시작했다. 지난 5년간 적자를 보던 것이 1999년 말에는 소출과 집필 활동을 합해서 800만원 정도의 흑자를 본 것이다.

변산 공동체의 여름 하루 일과는 새벽 5시 30분에 일어나서 7시까지 식전 작업을 하고, 7시 30분에 식사를 한 다음 8시부터 일을 나누어 오전 작업을 한다. 1시에 점심을 먹는데 날이 더워서 3시까지 쉰다. 3시부터 저녁 6시까지 오후 작업을 마치고 7시에 저녁을 먹은 다음 가족들이 모여서 작업회의를 함으로써 하루를 마무리한다. 작업회의를 빼면 보통 농가와 비슷한 일과이다.

-교육 기르기

우리들이 변산을 방문했을 때는 방학을 해서 학교를 볼 수 가 없었다. 어떤 사람은 "방학이라도 학교는 있을 거 아니냐?"라고 물을지 모르겠지만 방학을 하면 학교도 없다. 변산 공동체에는 학교 건물이 따로 없고 학교가 열릴 때 가족과 손님의 숙소로 쓰는 재실, 산과 들, 갯벌 그리고 폐교 자리가 학교로 쓰인다. 변산 공동체에는 중·고등학교 과정을 함께 열고 있다. 초등학교는 현재 따로 열지않고 문을 닫은 마포 초등학교 자리에 열린 학교를 열 예정이다.  

중고등반의 시간표는 오전 정보교육과 오후 기초살림 교육으로 나뉜다. 정보교육은 일반학교에서도 있는 국어, 철학, 수학 인문학, 영어, 컴퓨터, 제2외국어 등을 말하며, 기초살림 교육은 공예, 학교 텃밭 일구기, 옷감 물들이기, 갯살림 익히기 등이 있다. 학생들은 화요일과 수요일은 마을 재실에 묶으면서 정보교육과 함께 마을 농사일을 거들면서 기초살림 교육을 받게 된다. 월, 금, 토요일에는 마포초등학교에 먹고 자면서 교육에 참여하고 갯살림을 익힌다. 전체 학생은 11명인데 그중 9명이 중학생이고 나머지 2명은 고등학생이다. 선생님은 정보교육 담당 7명, 기초살림 교육 담당 1명이고 공동체 가족들도 교육에 참여하고 있다. 중·고등반 외에도 여름과 겨울에는 다른 지역의 아이들도 참여하는 계절학교가 따로 열린다. 지역 주민은 교육 분야에서 변산 공동체를 높이 신뢰하기 때문에 많은 가구가 자녀를 변산 공동체 학교에 보내고 있으며, 놀이방을 변산 공동체에 위탁 운영하고 있다.

변산 공동체 가족들이 외부 사람에게 가장 많이 받는 질문 중의 하나는 "실험 교육의 효과가 있는가?"이다. 매우 곤혹스런 질문이다. 그러나 윤구병 선생의 답은 간단하다. '교육의 효과는 단번에 나타나지 않는다.' 교육의 효과는 10년, 20년 아니면 더 긴 세월 후에야 나타난다는 것이다. 하기야 흔히 사람들이 쓰는 '교육 효과'라는 말이 '성적' 또는 '시험 합격'과 관련된 말이니, 변산 공동체 학교와는 거리가 먼 말이다.

변산에서 만난 어떤 사람은 "변산 공동체 학교의 아이들은 방치돼서 학습능력이 부족하고 표현력도 떨어진다"라고 말했지만, 아직 교육 효과를 판단하는 것은 이른것 같다. 변산 공동체의 역사는 이제 겨우 6년 정도밖에 안됐고, 학교를 연지도 얼마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지금 '실패'와 '성공'을 판단해버리는 것은 아이들을 마치 비닐하우스에 모아두고 농약과 비료(주입식 강제 교육)를 잔뜩 주고 인재로 만들어 내려는 급한 마음 때문일 것이다. 사실 변산 공동체 학교에서는 아이들의 자연 감각을 살리고 자율성을 회복시키기 위해 의도적으로 '방치' 시켜서 교육을 시킨다고 한다.


-공동체 나누기

공동체 이야기를 하기에 앞서서 변산에서 3일째 되던 날 밤 공동 식당에서 열린 가족과 손님 사이의 간담회에서 오고간 대화를 옮긴다. 변산 공동체에서는 손님들이 돌아가기 전날 밤에 술을 곁드린 대화의 장을 마련한다. 여기에 정리된 내용은 여러 사람이 묻고, 답한 내용을 모은 것이다.

땅은 어떻게 마련했나?
: 재실을 포함한 몇몇 땅은 도지를 내고 빌려 사용하고 있다. 지름밭골의 땅과 마을 양계장 옆에 있는 논은 직접 샀다.

윤 선생님이 이곳데 내려오기 전에 먼저 살고 있던 분들이 있다던데...
: 윤 선생님이 오기 몇몇 사람이 먼저 내려와 살고 있었다. 그 사람들은 지금은 이곳에 남지 않았고 다른 곳에 가서 농사를 지으면서
살고 있다.

농산물은 어떻게 판매하나?
: 주곡, 감자, 마늘, 효소, 술 등을 판매하는데 주로 주문 판매를 한다. 그리고 우리와 관계를 맺고 있는 사람들과는 함께 나눈다.

개인적인 지출은 어떻게 충당되는가?  
: 같이 쓴다. 수당이나 월급은 따로 없지만 담배가 나오고, 식구 중 누가 일이 있어서 밖에 나갈 때면 외출비가 지급된다.

식사당번은 모두 돌아가면서 하는 것 같은데...
: 남자와 여자가 구분 없이 함께 돌아가면서 한다. 식사 당번뿐만 아니라 공동체 각 시설에 대한 관리도 서로 나누어서 한다. 우리 공동체를 포함한 운산리 마을 전체의 일도 울력으로 나누어 한다.

손님이 1년에 천명 정도 찾아오는 것으로 알고 있다. 손님으로 인한 방해는 없는가?
: 당연히 있다. 그래도 손님 덕을 많이 본다. 농사 규모가 우리 식구만으로 안되기 때문이다.  

겨울에는 어떻게 지내나?
: 겨울에는 손님을 받지 않고 바빠서 못한 공동체의 일들을 처리한다. 농한기지만 장작 마련하기, 메주 만들기 등의 일들로 바쁘게 지낸다.

대화에서 비쳐진 대로 변산 공동체는 나눔을 통해 지탱된다. 공동체 가족들은 노동과 책임을 나누고 공동체 회의를 통해 의사를 나눈다. 마을 사람들과는 노동을 나누고 관계를 맺은 사람들에게는 양식을 나눈다. 손님으로 온 사람들과는 잠자리, 양식, 노동을 서로 나누고 헤어지기 전에는 생각과 정을 나눈다. 그리고 도시 사람들에게는 '기르는 문화'라는 살아있는 문제의식을 나누어준다.

물론 아직 변산 공동체에는 가족 내부의 공동체 의식을 기르기 위한 체계적인 프로그램과 수 없이 찾아오는 손님들을 맞고 안내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 아니 어쩌면 변산 공동체는 이러한 것들을 노동과 생활을 통해서 해결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변산 공동체에 손님이 많이 찾아오고 또 어느 정도는 손님들의 노동력에 의존하고 있지만, 이곳이 도시 사람들을 위한 주말 농장은 아니기 때문이다. 윤구병 선생이 분명하게 표방한대로 변산이 '생산 공동체'(종교도 이념도 아닌)이기 때문에 앞으로도 계속해서 공동체의 정체성은 산, 들, 갯 살림과 그 속에 둥지를 튼 공동체 학교를 통해 실현될 것으로 보인다.


 '대안사회'를 체험하고 대안적 삶의 방식의 성공 여부를 따져보기 위해 찾았던 변산에서의 일정이 모두 끝났다. 17일 아침 트럭 짐칸에 실려 나올 때 머리는 텅 비고, 가슴은 허전했다. "뭔가 가슴에 묵직한 게 있어야 하는데.. 아무렇지도 않네... 뭔가 깨달은게 있어야 하는데..." 혼란스러웠다. 아니다 우리는 사흘동안 일만 실컷 했을 뿐, 특별한 무언가를 한 건 아니지 않나! 짧은 일정에서 무언가 '진리'를 발견한다는 것은 말도 안 된다.  

이래저래 복잡한 가운데에도 분명한 것은 밭에서 허리를 숙이고 열심히 일하고 있는 사람을 일으켜 세워 "당신이 사는 게 대안적 삶의 방식이유?"라고 다시는 묻지 않기로 결심한 것이다. 변산 공동체의 이상이 현실에 적합한지, 나아가 도시 문명의 대안적 삶의 방식으로 자리 매김 할 수 있는지는 느긋하게, 관심을 두고, 기다려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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