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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태공동체

생체공동체를 찾아서...세번째(11-15)

by 치우 posted May 14,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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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푸른누리 생태 공동체

하늘·땅·사람 살림터 푸른누리공동체

주 소 : 742-870 경북 상주시 화북면 입석리 545
전 화 : 054-536-9820 | 전 송 : 054-536-9821
대 표 : 최한실

 

역사
푸른누리는 1995년 12월 1일 경기도 안성군 죽산면 산골마을에서 최한실씨와 박의준씨가 시작한 생태공동체이다. 97년 2월에 죽산에서 경북 상주군 화북면으로 이사를 하여 지금은 새로운 보금자리를 가꾸고 있다.

설립목적
푸른누리는 무소유, 무아집, 절대평등, 늘 행복한 세상을 이상으로 하고 있다.

'무소유 세상'이란 지금은 '우리가 이것은 내 것, 저것은 네 것, 이것은 우리 것'하면서 따지고 챙기며 사는데, 있는 그대로 살펴보았을 때 사실은 누구의 것도 아니지 않는가 하는 것이다. 무소유의 세상은 '그것이 좋으니까 그렇게 살아보자'라기 보다 본래 세상의 참모습이 그 누구의 것도 아닌데, 다만 인간들이 착각하여 '네 것, 내 것'하고 있을 뿐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본래 모습에 맞게 사는 것이 참 행복이라는 것이다. 이 세상에 있는 그 어떤 것이라도 누구의 것도 아니므로 누가 써도 좋다. 쓰임새에 맞게 쓰이면 된다. 또 그렇게 쓰이고 있다. 어떤 사람에게만 인간에게만, 생명있는 것에만 유익하게 쓰이는 게 아니라 모든 존재에게 유익하게 쓰여야 하지 않을까 하는 의미이다.  '무아집'이란 내 생각이 옳다고 고집하거나 단정하지 않는 것이다. 내 생각이란 것이 나의 것 또는 나의 인격과 동일시되는 것이라기 보다 그냥 나한테서 일어나는 생각일 뿐이고 늘 바뀐다는 것, 내 생각에 더 무게 중심이 있을 수 없다는 것이다.  어쩌면 내 생각이 안맞을지도 모른다는 마음상태가 되어 내 생각과 다른 사람의 생각을 같은 무게로, 생각 그 자체로 바라보고, 늘 진실은 어떠한가라고 살펴갈 수 있는 사람이 되고자 하는 것이다.  '절대 평등세상'은 정말은 모든 것이 다 소중하고, 그것 자체로 우주이기 때문에 인간끼리도, 인간과 인간이 아닌 것 사이에도 높고 낮음이 없다는 것이다.  '늘 행복한 세상'은 모든 것이 감사하고 행복한 세상이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불행하다, 슬프다, 괴롭다, 살기 어렵다고 하지만 정말은 살아있는 것 그 자체만으로도 인생은 늘 행복하다는 것이다.  이 네가지 이상과 목적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며, 그것을 실현하기 위해서 억지로 힘쓰고 노력하는 것이 아니라 보다 사실은 있는 그대로 접하여 우주와 자기 자신이 자연과 인간이 하나임을 깨달아 '나 혼자'만의 갇힌 나에서 '우리 모두'의 넓은 나로, 본래 모습을 회복하여 참되게 살아보자는 것이다.  이런 삶을 살고 싶은 사람들이 모여 사는 곳이 바로 푸른누리이다.

구성원
초기에 두 명으로 시작한 공동체가 지금은(97년 8월 현재)10명의 가족으로 늘어났다. 결혼한 2가정 7명과 미혼남녀 3명이 푸른누리의 모든 식구들이다.  푸른누리의 가족이 되는 조건에 금전적인 요건은 없다. 다만 푸른누리의 수련프로그램에 참여해야 하며 공동체에 살고 싶은가를 기준으로 판단한다. 이 곳에 있는 구성원들은 대부분 푸른누리에서 하는 '참 나를 찾아서'라는 수련과 '참 사람살이'수련을 계기로 공동체 일원이 되었다.

경제
푸른누리는 무소유 공동체이다. 초기에는 최한실 씨의 2,000만원으로 시작했다. 그러나 이제 이 돈은 푸른누리 공동체의 밑천이 되었을 뿐 누구의 것도 아니다. 그 후에 공동체에 직접 참여해 같이 살지는 않지만 수련과정을 통해 그 이상에 동조하는 많은 사람들이 성금을 내어 새로운 보금자리를 장만하는 기틀을 마련했다. 이곳에서는 생활에 필요한 모든 것, 즉 옷, 신발, 돈 등 일체를 공동체에서 함께 쓰고 있다. 또한 옷 보관하는 방, 책 놓는 방 등이 있어 누구나 필요한 대로 사용할 수 있고 농기구 등도 모두 한 곳에 보관하고 사용한다. 큰 돈이 필요한 경우 '참밝힘'에서 함께 의논하여 결정하고 일상적으로 필요한 돈은 금전 담당자와 상의하고 사용한다.  공동체의 생활비는 수확물 일부의 판매대금과 일반인을 대상으로 운영되는 수련 프로그램의 참가비로 충당한다. 가끔씩 외부의 일을 해주고 받는 품삯이 있기도 하다.

생활
푸른누리에서는 어떠한 행위를 강제하는 규율은 없으며 철저히 자신의 문제로 자율적으로 해나간다. 푸른누리에서는 의무적으로 해야 되는 것은 없으나 참밝힘에서 모두 함께 결정한 일은 해 나간다.  오전 6시경 모든 식구들이 앞마당에 모여 맨손체조를 하고 일터로 나간다. 그리고 하루에 두 차례, 오전 10시와 저녁 6시에 모든 구성원들이 함께 하는 식사 시간을 갖는다.  푸른누리 일과의 핵심은 '참밝힘'이다. '참밝힘'은 어떠한 편견이나 고정관념엇이 오직 정말은 어떤가, 어떻게 하는 것이 가장 좋은가를 모든 구성원들이 지혜를 모아 구명해 나가는 자리이다.  공동체의 의사결정은 이 '참밝힘'을 통하여 만장일치로 이루어진다. 결정이 너무 오랜 시간이 걸리거나 합의점이 찾아지지 않으면 다음으로 미루기도 한다. 공동체 생활에서 구성원들간의 대립이나 갈등은 '참밝힘'을 통하여 모두 풀어내기 때문에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수련
푸른누리에서는 일반인을 대상으로 한 달에 한 번씩 '참 나를 찾아서'라는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참 나를 찾아서'는 우리가 가지고 있는 자기라는 고정관념을 포함하여 일체의 고정관념을 깨뜨리고 진정한 나는 어떤것인가를 살펴가는 수련이다. 인간은 보통 자기 관념의 틀을 깨뜨릴 때 참 자기가 드러난다. 그러므로 이 관념의 벽이 허무어질 때 무엇이든지 할 수 있는 사람, 화가 나지 않는 사람, 누구와도 친해질 수 있는 사람, 늘 행복한 사람이 된다. 그리고 이 수련을 거친 사람은 '참 사람살이'수련에 참가할 수 있다. '참사람살이'는 '나, 혼자'의 사람에서 '우리, 모두'의 사람으로 더 넓게 열린 자기를 체험하는 수련으로 이 우주와 동료와 자신이 한 몸임을 체득할 수 있다. 방학을 이용하여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하는 '자연과 하나되어'라는 수련(4박5일)과 중·고등학생을 대상으로 하는 '청소년 수련'도 진행하고 있다.

주변 마을과의 관계
공동체가 나름대로의 문화를 정립할 때까지는 당분간 문화적으로 떨어져 있기를 바란다. 왜냐하면 기존의 문화와 공동체가 지향하는 문화는 방향이 많이 다르기 때문이다. 하지만 공동체가 궁극적으로 지향하는 것은 온 세상 사람들이 다 행복해지는 것이므로 지역에서 눈에 보이고 할 수 있는 일은 해가고 있다. 실제로 지금 주변 마을 사람들과 몇가지 일을 함께 해 나가고 있는데 그 예로 '푸른누리 한문교실'을 들 수 있다. 주변 마을 초등학생들을 모아 빈 교실에서 한문을 가르치고 기타 생태문제, 자연과 하나되어 사는 문제 등에 대해 아이들과 함께 해 나가고 있다. 또 인근 새터 마을 뒷산에 돌광산을 개발하려는 석건회사를 상대로 마을 사람들과 연대하여 저지운동을 펼치고 있다. 장기적으로는 이 지역에 유기농업단지를 조성하려는 계획도 갖고 있다.

앞으로의 계획
공동체 내부적으로 많은 계획을 가지고 있다.  무엇보다도 환경적인 면에서 모범적인 공동체가 되기를 바란다. 쓰레기를 내부에서 모두 소화할 수 있는 생활을 계획하고 있다. 삶 자체가 모든 것이 순환되어 쓰레기가 나오지 않는 사람을 지향한다. 또한 생산과정에서 오염을 일으키는 생산물인 전기, 시멘트 등을 사용할 것인가의 문제등도 참밝힘에서 논의하고 있다. 장기적으로 주력할 부분은 각종 대안교육이다. 이미 수련이란 이름으로 어른·아이·청소년을 대상으로 여러 가지 교육 형태를 실험과 모색하고 있다. 앞으로 푸른누리의 이념을 실현할 수 있는 학교를 세울 계획을 가지고 있다.

소개된 자료
[환경운동]96년 4월호. 건강[단] 97년 4월호, 동아일보 97년 5월10일자

간행물
[푸른누리]

무소유 생태공동체 '푸른누리' 네것 내것이 없는 소박한 세상

'푸른누리'에서 사람들은 네것, 내것을 나누지 않는다. 벗어 놓은 신발도 옷도 모두 내것, 네것으로 나누지 않는다. 돈도 그렇고 집도 그렇고 모든 것이 그렇다. 아무것도 소유하지 않는다. 굳이 필요하다면 '참밝힘'이라는 이야기 나눔을 통해서 모두의 동의를 구하고 그저 알맞게 쓰면 될뿐이다. 농삿일이나 집안일에도 남녀의 구분이 없다. 서로서로 자기 일로 알고 기쁘게 한다. 이는 모두 푸른누리가 인간이 만들어낸 고정관념을 깨뜨린 자리에서 시작된 덕분이다. 때문에 지금까지 푸른누리에는 따로 목적이나 규칙이 정해져 있지않다. 다만 푸른누리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진실을 찾아가는 참밝힘 과정을 통해 날마다 새롭게 창조해갈 뿐이다. "세상 사람들은 무엇무엇 때문에. 누구 때문에 안 된다고 많이 생각하잖아요. 푸른누리에서는 그런 것들을 전반적으로 돌아봄으로써 내가 참으로 어떤 삶을 살고, 어떤 존재인가를 생각해봐요. 그러면 인간은 본래 괴로움이 없고 자유로운 존재라는 것을 알 수 있어요." 햇수로 3년째 푸른누리에서 살고 있는 장유경(33세) 씨가 환한 웃음으로 건네는 이야기이다. 푸른누리는 지난 '95년 12월1일 경기도 안성군 죽산면 산골마을에서 최한실 씨와 박의준 씨가 시작한 무소유 생태공동체의 이름이다. 인간과 인간. 인간과 자연이 상호 조화롭게 공존(共存) · 상생(相生)할 수 있는 새로운 생활양식이라 할 생태공동체는 경쟁과 갈등의 증폭 등 현대산업사회의 발전이 가져온 많은 문제점들에 대한 자각을 바탕에 두고 있다. 그리고 오늘날 전 인류의 생존 자체마저 위협하는 환경문제는 생태공동체가 해결하고자 하는 주된 문제이다. 때문에 푸른누리의 사람들 역시 그러한 생각을 직접 현실생활에서 실현하고자 한다. 농사를 통해 자급자족을 이루려는 것도 그것이 환경문제를 가장 덜 가져오는 체제라는 믿음에서이다.

현재 푸른누리(경북 상주시 화북면 입석리 645번지)에는 소박한 농사를 지으며 그렇게 살고자 하는 최한실(50), 장유경(33), 강나루(32) 씨와 한 명의 예비식구가 생활하고 있다. 역할이나 지위의 높고 낮음이 없이 누구나가 평등한 푸른누리이지만 그래도 최한실 씨는 제일 나이 많은 어른(?)인 셈이다. 젊어서 사회변혁운동에 열심이었던 그는 인간의 여러 문제가 사회의 불평등에서 비롯된다고 생각했었다. 이후 인간의 문제가 단순한 사람만의 문제가 아닌 인간과 자연과의 문제를 기본으로 하고 있다는 데에 생각이 모아졌다. 자연히 관심은 환경문제 쪽으로 기울었고 새로운 문명과 문화. 새로운 생활양식을 모색하는 것이 인간문제의 보다 근본적인 해결책인 셈이었다. 그 때가 80년대 말이었는데 그 즈음 그는 그런 일을 알려나가느라 이곳 저곳으로 강연을 다니고 있었다.

'91년, 한국불교환경교육원이 설립될 당시에는 그 방향과 실질적인 프로그램을 제시하기도 했다. 사회일반에까지 주목을 받으며 현재 한국불교환경교육원에서 16기까지 진행되고 있는 생태학교도 그가 제안했던 프로그램의 하나였다. 그리고 그 자신은 문경 정토수련원의 수련프로그램을 지도하면서 그와 같은 생각을 전달했다. 자연스레 그와 뜻을 같이하는 사람들이 생겨났고 그러한 생각들을 직접 실현해보고자 푸른누리라는 이름으로 공동체 생활을 시작하게 된 것이다.

푸른누리는 '97년 2월 지금의 상주군 입석리 속리산 언저리로 보금자리를 옮겨왔다. 수련과 삶의 터전으로 뿌리를 내릴 알맞은 장소를 찾아온 것이다. 그리고 지금까지 푸른누리는 수련장과 생활관 건립 등 생활공간 마련에 정신없이 바쁜 시간을 보냈다. 그동안 푸른누리의 수련을 거쳐간 전국 각지의 회원들이 직접 며칠, 몇 달을 머물면서 자신의 재능과 몸으로 집짓는 일에서부터 씨부리고 거두는 일까지를 도왔고, 또 더러는 몫돈을 내놓기도 했다.  그 과정 속에서 푸른누리 식구들은 푸른누리의 모습에 대해 많은 논의를 했고 적잖은 부침을 겪기도 했다. 박의준 씨 가족이 죽산의 푸른누리터에 남아 있는 것으로 생각이 모아지기도 했고 한편으로 푸른누리의 성격이나 모습에 대해 또 많은 이야기들이 오갔다.

"사실 이렇게 큰 집 지을 필요는 없는 거지요. 내부에서도 그에 대한 논의를 많이 했어요. 반대도 많았지만 지금 이렇게까지 온 것은 참밝힘을 통해서 함께 해온 것이지요. 이제 이 두 건물은 외부인을 위한 것으로 주위의 마을공동체나 사람들이 이 곳을 이용하고 수련을 통해 진실의 세계를 알아나갔으면 하는 것이지요."

최한실 씨를 비롯 푸른누리 식구는 이제 푸른누리의 이러한 생각이 단순히 개인적 차원의 움직임으로 놓아둘 것이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궁극적으로 이와 같은 삶을 살기를 바란다. 그리고 꼭 같지는 않더라도 현실에서 다양한 방법이 있음을 인정하고 있다. 그래서 푸른누리에서는 이와 같은 뜻을 알려나가기 위해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하는 수련프로그램을 운영하며 매달 첫째주 토요일 에는 회원의 날 행사를 갖기도 한다.  그동안 31기까지 진행되어온 '참나를 찾아' 수련은 한 달에 한 번 4박5일 일정으로 개최되며 자아관념, 소유관념 같은 우리들의 뿌리깊은 고정관념들을 근본에서부터 다시 살펴보게 하는 과정이다. 그리고 계절마다 8박9일 일정으로 열리는 '참사람살이' 수련은 '참나를 찾아' 수련을 마친 이들로 하여금 실제 생활과 일을 해나가면서 자신의 삶을 어떤 자세로, 어떤 방법으로 살아갈 것인지에 대해 구체적으로 살펴보게 하는 것이다.

참여하는 사람들도 공장노동자, 대학생, 교사를 비롯해 그야말로 전국 각지의 각양각색의 사람들이다. 또 수련을 마치면 이들은 푸른누리 회원(수련을 마친 사람들의 모임)으로 지속적으로 푸른누리의 활동에 참여하기도 한다. 지금 푸른누리 식구들은 그 어느 때보다도 가슴벅차하고 있다. 지난 27일 시작된 32기에 이어 이달 24일부터 33기 참나를 찾아 수련을 이곳 속리산 물아이 계곡의 수련장에서 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달 7일에는 그동안 푸른누리와 인연 있는 모든 분들과 함께 물아이 계곡 푸른누리터에서 집들이를 할 예정이다.  아직 창고와 지을 건물들이 많이 남아 있고 오천 여 평의 농사도 벅차지만 그런 것은 입주를 하고 살아가면서 하나하나 해나갈 생각이다. 푸른누리는 앞으로 100여명에 달하는 푸른누리회(수련을 마친 사람들의 모임)회원들과의 논의를 통해 좀더 본격적인 수련과 도시에서 할 수 있는 일들을 조직적으로 펼칠 계획을 갖고 있다.

 불규칙하게 발간해 오던 소식지 「푸른누리」도 두 달에 한 번 정도 꾸준히 펴낼 계획이고 자연과 하나되어 살려고 하는 사람들이나 단체들과 연대를 통해 토론회도 계획하고 있으며 기반이 형성되는 대로 지역을 중심으로 한 생태고등학교도 만들고자 한다. 새로운 문명관, 문화관에 입각해서 살고자 하는 사람들이 체계적으로 공부할 수 있는 교육체계를 꾸려보았으면 하는 바람 때문이다.  요즘도 푸른누리 식구들은 눈코뜰새 없이 바쁘기만 하다. 수련과 집들이 준비에도 일손이 달리는데 지금이 또 한해 농사에 있어서 가장 중요하고 바쁜 시기이니 말이다. 그래도 그들의 일과는 변함없다. 아침 5시나 6시면 어김없이 일어나 앞마당에 모여 함께 맨손체조로 하루를 시작해 각자 할 수 있는 일을 해나간다.

"푸른누리에 사는 데 조건은 없어요. 1차 수련인 '참나를 찾아'와 2차 수련인 '참사람살이'를 거친 후 현재 살고 있는 식구의 동의를 거쳐 6개월간 예비식구로 살아본 다음에 정식으로 푸른누리 가족으로 살지를 결정하는 것뿐이예요." 장유경 씨의 말처럼 푸른누리의 가족이 되는 데에는 별다른 조건이 없다. 돈도 학벌도 필요없다. 다만 수련과정을 거쳐 뜻을 같이해 함께 살면서, 일하면서 느끼기만 하면 된다. 되도록 사실에 기초하여 더 자유롭고 자연스럽게 되는 쪽으로 하루하루를 살펴나아갈 뿐이다. 푸른누리는 그렇게 누구에게라도 자유롭게 열려있는 것이다.

푸른누리는 이제 본격적인 푸른누리 농사에 들어섰다. 거창한 이념이 아닌 생생한 삶의 현장으로, 소박한 농사로, 아담소담한 살림의 마을로 물아이 계곡에서 푸른누리터를 가꾸어 가고자 하는 것이다.

푸른누리(경북 상주시 화북면 입석리 645번지 전화 0582-536-8946)에 가려면 남부 터미널이나 동서울 터미널에서 청주시외버스 터미널까지 가는 버스를 타고 청주시외터미널에서 내린후 40,50분 간격으로 있는 화북이나 옥양동 가는 버스를 타고 입석 초등학교 앞에서 내리면 된다.

 

무소유 공동체 ‘푸른누리’  최석진씨

가을볕이 가득한 경상북도 상주시 화북면 입석리 무소유 공동체 ‘푸른누리’ 마당에서 최석진(51)씨가 낟알을 말리고 있다.

름한 작업복과 볕에 그슬린 머리칼이며 얼굴은 여늬 농꾼과 다름 없지만 무소유 공동체라는 매우 특별한 모임을 꾸리고 있는 그는 푸른누리를 시작하기 전엔 더 ‘특별한’ 이력을 살았다.

제도개혁보다 마음밭이 더 중요”

는 지난 79년 남조선민족해방전선(남민전) 조직원으로 검거되어 1심에서 사형, 2심에서 무기를 선고받았다. 복역 중 만성신장염이 악화되어 84년 겨울 형집행정지로 출소한 그는 한살림운동 등이 출발하던 88년 여름부터 환경, 생태교육에 관심을 갖고 활동하기 시작했다. 남민전 전사였을 당시엔 생각해본 적이 없던 분야였다. 감옥에 있을 때 그에게는 종교서적이나 과학서적만 허락되었다. 그는 그런 책에서 독일 녹색당을 알게 되었다.

눌린 사람, 힘없는 사람, 일하는 사람들이 주인이 되면 그것만으로 충분히 좋은 세상이 된다고 생각했지요. 사람과 사람 관계만 생각했던 거지요. 그런데 곰곰 생각해보니 억압받는 이들로 분노한다는 사람들이 소 개 지렁이같은 다른 생명에 대해선 함부로 하고 있었어요. 가진 자가 못 가진 자를 대하는 마음보다 더 심하고 잔인하게 굴고 있다는 자각이 생긴 거지요.”

는 옛 동지들과 함께 공생의 삶을 실현하는 농사짓기를 계획했다. 하지만 쉽지 않았다. 아이들 교육 때문에, 집사람이 반대해서 등등의 이유로 계획은 계획에 그쳤다. “새로운 삶의 방식은 확고한 자기 철학과 세계관이 서야 가능하다는 생각이 들어 수련 프로그램에 눈을 돌렸습니다.”

는 정토회(대표 법륜 스님)가 운영하는 수련회에 “사람이란 우주, 자연과 한몸이며 자타일체라는 사실을 각성하는 프로그램”을 마련했다. “단순한 제도 개혁보다는 마음밭을 가꾸는 게 중요하겠다는 생각이 자꾸 들었어요.”

수련 프로그램을 3년 정도 하면서 “눈을 반짝이는 젊은 친구들 대여섯명”을 만난 그는 94년 경기도 안성군 죽산면에서 처음 푸른누리를 출범시켰다. 속리산 아래 입석리에 땅을 사서 이사한 것은 3년 전. 이곳 6,000여평의 땅에서 푸른누리 식구들은 쌀을 비롯해 온갖 자급자족에 필요한 산물을 길러낸다.

푸른누리에서 가장 예쁜 건물은 단연 ‘뒷간’이다. 조그만 돌멩이가 숭숭 박힌 토담에 초가를 올린 이 뒤간채엔 널찍한 토방(?) 4개가 있다. 그 방엔 편편한 나무밑둥 두 개 사이에 주둥이가 삐죽한 고무통이 하나 있고 구석엔 나무뚜껑을 해덮은 기다란 고무통과 모래그릇, 휴지통이 놓여 있다. “오줌과 똥이 섞이면 발효가 늦어집니다. 오줌은 그날 받아서 그날 밭에 뿌려도 아무 상관 없어요.”

푸른누리 사람들은 농약과 제초제를 쓰지 않고 흙에서 생겨난 부산물은 모두 흙으로 되돌리는 일을 충실히 실천하고 있다. 그렇게 먹거리를 생산하는 건 “그야말로 뼈골 빠진다는 말을 실감하게 하는 일”이다. 뼈골이 빠져야 비로소 제대로 된 먹거리가 생겨나는 것이니 먹을 걸 만드는 일이란 애초에 돈벌이로 삼을 수 없는 일이다. “먹거리는 돈과 연관되는 순간 오염될 수밖에 없습니다.”

오고 가는 사람 막지 않는다

그래서 그는 “매우 비현실적이고 과격한 생각”을 해보곤 한다. “다른 생명체들은 모두 다 자기 먹을 건 스스로 해결하지 않아요? 우리 사람도 자기 먹을 건 자기가 직접 짓고 남은 시간에 다른 활동을 하게 하면 사기 치고 헛소리 할 시간도 줄어들겠지요.” 하지만 그는 이런 생각을 소리높여 외치지는 않는다. 다만 그것을 24시간 실천해 보일 뿐이다. 푸른누리는 “오는 사람 막지 않고, 가는 사람 잡지 않는다” 그래서 푸른누리의 식구 수는 일정하지 않다. 그는 젊은 식구들에게도 자신의 생각을 소리 높이지 않는다. 짐승을 사람 뜻대로 부리는 걸 내켜하지 않는 젊은 식구들의 의견에 따라 푸른누리에 있던 가축도 모두 처분하고 더 이상 기르지 않는다.  푸른누리에선 한달에 한번 ‘참 나를 찾아서’라는 자아발견 프로그램을 열고 2단계로 ‘사람살이 프로그램’을 일년에 두세차례 연다. 2단계 프로그램에서는 공동체 삶을 구체적으로 점검해본다. 푸른누리에 동참하고 싶은 사람은 2단계 프로그램에 참가해야 한다. 아이들을 위해선 방학 동안 ‘환경캠프’를 연다. 아이들을 자연 속에 풀어놓고 그냥 놀게 하는 프로그램이다.

 

고구마 캐서 북한어린이 돕기도

푸른누리는 무소유 공동체다. 그곳엔 공동의 책방과 옷방이 있고 신발도 발에만 맞으면 아무 거나 신는다. 공동으로 지은 농산물로 거의 자급자족하고 현금지출이라곤 세금과 공공요금이 대부분이다. 개인 용돈은 식구들이 필요하지 않다기에 정하지 않았다.  “분배문제로 에너지를 쓰지 않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삶이 편해지는지 모르겠어요.”

론 식구가 많아지고 독신 식구가 결혼하게 되면 또 다른 문제가 생길 것이다. 그러나 푸른누리엔 미리 상정해놓은 모범답안이 없다. 식구들 모두가 실제로 실천해나가면서 직접 겪는 일들 하나하나가 답안이다.  

무어 무어 합시다!! 하는 그런 거, 예전에 많이 해보지 않았습니까?” 그에게 무소유란 미리 만들어진 것에 끄달리지 않는 ‘무집착’과도 상통하는 말인 모양이다. 요즘 푸른누리는 고구마 캐기에 바쁘다. 고구마 판매대금은 정토회를 통해 북한의 배고픈 아이들에게 전달된다.

 

 

12.청미래 마을 / 경남 함양군 백전면

 

“참 아름다운 삶을 꿈꾸는 생태공동체”

경남 함양의 청미래 마을엔 오늘도 집을 짓는 손길이 바쁘다. 도심에서는 마을이라 해도 한두 달이면 그 헝태가 만들어지지만 이곳은 해를 지나면서 이제 겨우 집터 고르기를 끝내고 두어 채의 집이 들어섰을 뿐이다. 국내 최초의 대안 대학인 녹색대학이 지향하는 생태적인 삶. 인간다운 삶의 방식을 공유하려는 마을공동체를 지원하고, 그 공동체가 얻은 삶의 행복을 타인과 타지역에 확대시키려는 대안교육의 배후지로서 조성되고 있는 청미래 마을은 시작하는 과정이기에 더욱 중요한 사례가 되고 있다.

경상남도 함양군 백전면 대안리
일대 약 38,000평, 함양읍에서 약 12km, 백전면에서 약 3km 거리에 자리한 청미래 마을은 주변 산세가 팔로 벌려 안고 있는 듯한 안정되고 편안한 땅이다. 풍수학적으로 보면 닭이 알을 품고 있는 듯한 산세를 이루고 있다.

 

마을길 초입에서 마주치는 첫 번째 마을부지가 있는데, 이 부지는 집 지을 대지와 농사 지을 땅이 함께 붙어있는 것이 특징이다 부지 옆 길 건너는 공동 공간으로 꾸며진다. 마을회관, 공터, 놀이터, 연못과 같은 친수공간, 그리고 마을 정자 등 마을람들을 하나로 모아주는 공간이 그것.
작은 마을 길을 경계로 두 번째 마을부지. 이 곳의 집들은 집터와 농지가 다소 떨어져 있는 것이 특징이다. 도자기 굽는 가마터와 대장간터, 외부 손님들을 위한 숙소도 만들 예정이다. 언덕 윗자락은 숲에 둘러싸여 있다. 숲은 들어서기만 해도 금새 더없이 차분한 명상의 호수가 되는데, 이 숲에 명상센터를 계획하고 있다. 센터라고 번듯한 건물은 아니고 짚단을 올린 작은 오두막 한 채쯤의 소박한 건물이 될 예정이다.

현재 부지는 경사지를 계단식으로 만들고, 건물의 남향 배치를 통해서 태양열의 활용이 용이하도록 하였다. 또한 바람의 활용이라는 측면에서는 여름철의 바람의 이동 통로를 막지 않으면서 겨울철의 바람은 차단이 되도록 건물과 수목의 배치가 이루어질 예정이다.

 

 

생태적인 삶을 지향하는 대안교육의 배후지로
녹색대학 생태마을로 조성되는 청미래 마을은 현재 부지정리가 거의 끝나고 제1호 집인 녹색대학 장회익 총장의 집만이 완성되었으며, 이장인 김연찬씨의 집과 한옥 한 채는 구조와 지붕만을 올린 상태였다.

김연찬씨는 마을 입구 빈집에 살면서 녹색대학에 출강을 하는 틈틈이 마을 만들기에 직접 나서고 있다. 인부들과 함께 직접 흙벽돌을 만들기도 하고, 입주 예정자들과의 유대를 만들어 가는 일도 한다.

“녹색대학에서 모집하여 분양하는 것인 만큼 대학이 지향하는 생태적인 삶을 바탕으로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굳이 생태마을이라는 말로 규정지어 가둘 필요는 없다고 봅니다. 우리의 전통 마을이 그랬듯이 자연에 순응하며 살아가면 그것이 바로 생태적인 삶이 아니겠습니까?”

생태마을은 마을의 공간적 환경과 사회적 환경을 농촌의 자연생태계와 조화를 이루도록 조성하여 환경 친화적인 생활을 할 수 있는 마을이다. 하지만 좀 더 구체적으로 들어가 보면 기술적인 문제, 물리적인 문제 등 몇 가지의 조건을 두고 있다.

그러나 사실 우리나라 전통주택과 마을은 생태적인 관점에서 보면 많은 부분에서 이미 자연적으로 생태마을의 조건들을 갖추고 살아왔다. 기후에 적합한 건축과 생태적인 재료의 사용, 생태계와 공존하는 자연관이라는 관점에서의 배려 등이 그것이다.

 

 

기후에 적합한 건축이라는 측면에서 보면 마루와 온돌이 그렇고, 건축재료의 관점에서 보면 초가집의 경우 지붕은 볏집으로 이루어져 농업용 부산물을 재활용하고 있으며, 벽은 황토흙을 이용함으로 농촌지역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재료를 사용하고 있다.

건물의 골조는 목재를 사용하고 있으며, 주춧돌은 그 지역의 돌을 사용하고 있어 모든 재료를 농촌의 산이나 하천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토착재료를 사용하고 있다. 또한 남향의 건물배치를 통한 태양열을 활용하고, 건물의 문과 창을 관통이 되도록 하여 바람이 실내를 관통해 흐르도록 함으로서 실내의 냉방효과를 거두었다.

화장실도 재래식 화장실이어서 분뇨를 부엌 아궁이에서 나온 재와 섞어 거름으로 만들고 소변은 받아서 거름으로 사용해 왔기 때문에 수세식 화장실과는 다르게 물의 소비가 전혀 없으며, 따라서 수질오염을 유발시키지도 않았다.

마을의 입지도 풍수지리를 고려해 배산임수의 자연지형에 순응한 터를 잡았기 때문에 자연훼손을 전혀 하지 않았다. 청미래 마을도 기본적으로 우리 전통마을의 생태학적 측면을 모두
살리는 방향으로 진행되고 있다.

마을의 배치가 그렇고, 재래식 실과 온돌방이 그렇다. 집의 골조는 편의성을 위해 콘크리트나 구조를 갖기도 하지만 최소한으로 하면서 가능한 자연재료를 사용하도록 권장하고 있다. 하지만 건축 규약에 따라 조적조 및 조립물은 지을 수 없다.

 

삶의 질을 다시 생각해보는 공동체

“개인에게는 약 300평의 밭도 함께 분양됩니다. 철저한 유기농법으로 지어야 하기 때문에 그 이상은 실질적으로 농사를 짓기 어렵고 또한 집은 가능한 크지 않게 짓는 것을 원칙으로 했습니다.

집이 크면 그만큼 공동으로 사용할 수 있는 공간이 줄어드는 때문입니다.”

청미래 마을은 ‘생태공동체’에 가깝다. 마을 내에 공동작업장이나 공동 빨래터 외에도 농사짓고 살아가는 일에 있어서도 공동체적인 생활이 가능하도록 만들어지고 있다. 또한 집은 ‘불편한 집’이 될 것 같다고 한다.

 

 

 

그러나 그런 불편함은 문명의 이기를 조금이라도 덜 사용해 보자는 의미이며, 대신 자연이 주는 생명력 있는 삶을 보다 더 많이 누려보고자 하는 의미의 불편함이다.

청미래 마을은 2001년 10월에 공동체 토지 분양을 완료(15가구)하고, 2002년 3월에 1, 2차를 통해 총 26가구를 확정했다. 올 4월에 대상부지를 청미래 마을회로 이전 등기필하면서 본격적인 집짓기가 시작되었다.

“생태마을이라고 그렇게 거창하게 생각할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또한 아직은 완성된 단계도 아니고, 이루어 가는 과정이므로 좀 더 관심을 갖고 지켜보았으면 합니다.

많지 않은 몇 집이라도 어디에 해 끼치지 않고 평화롭게 농사짓고 살 수 있으면, 그 삶이 참 아름다운 삶이 되지 않겠습니까.”

삶에 대한 이 같은 발상의 전환은 궁극적으로 미래세대에 의존해야 할 일인지도 모른다. 일정 부분 개인의 권리를 제한하면서 이루어지는 생태공동체는 생활양식의 변화뿐 아니라 사회공동체의 동네의식과 마을주민들간의 유대관계가 중요한 요소가 된다.

 

 

생태마을은 마을구성원들의 공동체가 잘 이루어졌을 때 마을조성이 용이해지며 생태적 삶을 영위하는 것도 쉬워진다.

청미래마을은 완공시기를 못박고 있지는 않지만 대략 5년 이내로 예상하고 있다.

그 전이라도 집이 완성 되는대로 입주를 희망하는사람은 먼저 들어와 살 수 있다.

생태마을이 농촌마을을 주대상으로 하여 농촌의 생활환경 뿐 아니라 농업생산활동과 생활양식까지도 친환경적이 되는 마을이라고 말할 때 청미래마을은 이미 지역과 환경적인 바탕은 갖추어져 있는 셈이다.

이제 겨우 싹을 틔우기 시작한 생태마을로서 청미래 마을은 그렇게 푸른 미래를 조금씩 열어가고 있다. 

 

지도 확인하기

 

 

 

13.공생농 두레농장 - 경남 창녕군 남지읍

‘땅과 함께 사람과 함께’  공생농 두레농장 

지게를 지고 산길을 오르는 제대엽(33). 고려대 생명공학과 박사과정을 그만두고 복제유전자 대신 택한 퇴비 만드는 일. 그는 지난해 이맘때의 결심이 없었더라면 지금쯤 지게끈 대신 실험실에서 시험관을 손에 쥐고 있었을 것이다. 구마고속도로에서 창녕 인터체인지로 빠져 꼬불꼬불한 비포장 도로를 1시간 가까이 덜컹거리며 올라가면 나타나는 `공생농 두레농장'. 경남 창녕군 남지읍 수래리. 이 첩첩산중의 농장에서 예순하나의 `청년' 천규석씨와 제씨처럼 `도시를 버리고' 찾아온 7명의 젊은이들이 새해에도 변함없이 구슬땀을 흘리고 있다. 

앞산과 뒷산에 둘러싸인 논밭 8,000여평. 창고 앞에 주렁주렁 매달린 시래기. 평상 한편에는 양파, 말린 고구마순, 통마늘이 쌓여 있다. 안방 벽에 붙은 농사일정표에는 1월 중순까지 `퇴비 만들기'라고 적혀 있다. 창고 앞마당 한쪽엔 짚더미랑 농작물 찌꺼기가 눈비를 맞아가며 퇴비가 되어가고 있다.

65년 서울대 미학과를 졸업하자마자 고향으로 귀농해버린 농사꾼 천씨의 꿈이 고스란히 담겨 있는 곳.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이 시작될 무렵 엉뚱하게도 그는 우리 고유의 농촌공동체인 `두레'를 만들겠다는 꿈을 이루기 위해 농촌에 파묻혔다. 천씨는 애당초 돈 많이 버는 농사는 꿈도 꾸지 않았다. `공생농법'을 실험하고 실천했다.

“공생농이 유기농하고 같은 말이라고 지레짐작하는 사람들이 많제. 하지만 유기농은 남의 땅에서 난 퇴비까지 사다가 지 땅에 뿌리는 기라. 그렇게 되면 퇴비를 빼앗긴 그 땅은 우짤끼고. 공생농은 내 땅에서 난 퇴비로 내 땅을 기름지게 하는 기라. 그래야 생태적으로 지속가능한 공생농사가 되는기제. 남의 땅은 우째 되든 말든 내 땅만 기름지면 된다? 이건 안될 말이제”

 95년 도시와 농촌간 농산물 직거래 운동을 펴는 `대구 한살림회'를 조직했다. 200여명의 회원들로부터 2억여원을 보조받아 평생의 꿈인 공생농 두레농장을 세웠다. 전혀 외부에 의존하지 않는 지역적 자립의 공생농. 비료나 기계를 사용하지 않고 오로지 손으로 농사를 짓는 일이 쉬울 수는 없다.그런 어려움을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 바로 이웃끼리 일손을 공유하는 전통의 두레다.

“여기는 공생농을 할 농부를 길러내는 학굔기라. 여기서 한 2~3년 훈련을 받고 나면 농촌에 정착하는 기반을 마련할 수 있제. 그냥 농부가 아니라 공생농부를 키우는 곳이라. 벌써 몇몇 사람은 근처에 정착을 했제”

이곳에 들어가려면 엄격한 심사를 거쳐야 한다. 먼저 들어간 사람들과 대화를 한 뒤에 만장일치로 결정한다. 지금 농장에서 일을 배우고 있는 사람들은 모두 농사라고는 처음 지어본 책상물림들. 강민경씨(26)는 부산에서 직장을 다니다 지난해 3월 이곳에 들어왔다. 제씨는 6개월째. 영어 강사를 하는 아내도 곧 이곳으로 옮겨올 준비를 하고 있다. 학교 선후배인 황경민(32·중대 문창과 졸), 김병순(29·"), 장형규(27·")씨는 이제 겨우 석달이 지났다. 미술을 전공한 김정서(37)·정덕수(37)씨 부부도 뒤늦게 농사로 진로를 정했다.

“우리들은 아직 일이 서툴러서 천선생님이 농사를 거의 다 짓고 있는 셈이죠. 지게질이나 호미질에 아무리 힘을 써도 선생님 반의 반도 못따라가요”

제씨가 전공한 환경공학과 두레의 공생농은 정반대의 작업. 유전자를 조작해서 주먹만한 쌀알을 열리게 하거나 황소를 복제해내는 생명공학. 그에 비해 공생농은 농약 한번 치지 않고 고집스레 땅만 갈아먹는다. 요즘 유행이 된 유기농이나 특수작물 재배처럼 돈버는 농사도 아니다. 어찌 보면 시대에 뒤떨어져도 한참 뒤떨어진 농법이라고 할 수 있다.

화학비료, 합성세제, 트랙터 같은 것은 이 농장에서 찾아볼 수 없다. 읍내까지 나가려면 하루에 몇번 들어오는 버스를 시간 맞춰 타야 한다. 여름엔 새벽 동틀녘, 농한기인 겨울에는 10시쯤 일을 시작한다. 해뜨면 농사짓고 해지면 들어오는 일이 전부다. 

 “벌써 완전한 농사꾼이 되는 것을 바랄 수는 없지만 솔직히 내 성에는 안차. 일요일은 쉬겠다고 하고, 읍에도 자주 나가면서 어떻게 농사를 지을라나 원”

농사꾼의 쉬는 날이란 비오는 날이고, 웬만해서는 땅을 떠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 천씨의 `농사꾼론'. 신세대 농군들을 대견해 하기보다 꾸짖는 것도 제대로 된 농부를 만들려는 천씨의 욕심 때문이다. 그래서 10명이 들어오면 겨우 1~2명이 제대로 버텨내고 모두 중도탈락한다.

천씨에게 새천년의 두레는 농촌과 도시를 하나로 묶는 단위. 농민들이 공생농법으로 생산한 농산물을 도시인들이 중간상을 거치지 않고 직접 가져다 먹는 것까지 포함시키고 있다. 더 나아가서는 도시인들이 틈틈이 일손을 거들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러면 농촌은 수백, 수천 두레의 `본적지'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공생농은 우리가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선택될 수밖에 없는 최후의 길입니다. 유전공학, 유기농 같은 것은 결국 한두 세대가 지나면 그 폐해가 드러날 수밖에 없습니다”

천씨의 `공생농 철학'에 감동받아 과학을 버리고 흙을 택한 제씨. 그리고 같은 마음으로 자연으로 돌아간 6명의 젊은 두레민들. 오늘도 땀흘려 지구의 한구석을 일구고 알찬 희망의 씨앗을 심는다. 

역사 
90년 도농공동체를 지향하는 대구 한살림 설립때부터 실질적인 도농 공생농 두레농장을 기획하고 공동농장조성을 위한 모금운동을 시작했다.

대구 한살림 회원들을 중심으로 7년 동안 200여명의 회원을 통해 1억 7천여 만원을 모금하여 1995년 9월 창녕군 남지읍 수개리에 두레 전답 8천여평을 마련하였다.

1995년 12월 15일 농업회사법인 '공생농두레'로 설립등기를 하고, 96년 6월에 농장 관리사와 창고를 건립한 뒤, 귀농을 희망하고 있던 세 사람이 입주, 실습을 거쳐 한 사람은 농장인근에 독립해 나가고 지금은 두세대가 상주하며 공생농과 두레를 실험하고 있다.

설립 목적
지금의 공업중심 물량체제나 그 아류(亞流)요 변종(變種)인 정보화·세 계화 시장 체제는 부존 자연자원이 무한하다는 전제 아래 유한한 자연자원 을 무차별적으로 공격 파괴함으로써 그 물량시장이 곧 한계에 부닥칠 한시 적 유한체제다. 그것은 당면해 있는 공해문제로 인한 생명 공멸과 함께 이 것을 아무리 기술적으로 대처한다 해도 자원의 분명한 한계로 지속자체가 불가능한 체제이다.

이같이 유한한 공업문명의 대안은 농업문화일 수밖에 없고 그 문화의 근본인 농업도 지금처럼 공업에 예속되어 공업과 함께 공멸할 에너지 파괴 적인 시한 농업이 아니라 재생순환적으로 자급자족함으로써 지속이 가능한 공생농이 아니면 안된다.

공생농두레는 이같은 공생농을 중심과 근본에 두고 노동의 두레화, 문 화의 토착화, 교육의 지역화, 농지의 지역화, 신용의 자립화를 점진적으로 확대하여 지속가능하고 신명나는 지역자립공동체를 만들기 위한 수업·연수·교육의 근거지와 중심이 되고자 한다.

구성원
지금은 귀농한 두 부부 세대가 공생농두레 생활을 수업 중에 있다. 앞으로도 부부 농업인 2세대정도를 정식 구성원으로 받아 들이고 독신 남녀들은 1년 이내의 기간 동안 공생농두레 귀농 연수인으로 받아들인다는 원칙을 세웠다.

 

생활
농지는 두레 소유다. 부부 귀농인의 경우에는 농지 경작권을 무상으로 분배받아 그 수확물을 제몫으로 할 수 있으나 농사일은 반드시 두레로 해 야 한다. 독신 입소자는 공생농두레 수업·귀농연수생 자격임으로 숙식외 에 어떤 노동의 대가도 제몫의 경작권도 주어지지 않는다. 주거와 식사는 가족단위로 하지만 두레 노동시의 점심과 토요일 저녁식사는 공동으로 한 다. 내부 성원들간의 의사소통 및 의사결정은 매주 토요일 저녁 식사후 두레의 지도위원회에서 주어지는 현안과 주제의 공동학 습과 토론 시간에 같이한다.

도시 회원과의 관계
도시 회원들은 공생농 원칙으로 생산한 농산물을 적정한 생산비로 전량 책임 소비해준다. 그리고 지속적인 회비모금으로 두레 농지를 확대하고 필 요한 시설을 확충해 간다. 또한 수시로 농사일에 대한 지원활동을 한다.

주변 마을과의 관계
처음에는 무공해 농산물이나 취하려는 별난 집단으로 경원시 되었다. 그러나 96년 겨울부터 마을 아이들에 대한 무보수 학습지도, 97년 5월부터 매달 첫째 주에 정례화한 동국대 한의대 생명두레동아리의 지역주민 상대 의 의료진료 활동 등을 통해 지역주민과의 교류가 활발해져 가고 있다.

특이 사항
퇴비를 비롯한 모든 농자재와 노동, 신용 등을 외부에 의존하지 않으며 생산과 내부의 소비에 있어서 지역내에서의 자급자족의 원칙을 가지고 있다.

앞으로의 계획
공생농두레 출발때는 도시회원들의 지속적인 회비지원이 있을 것이라는 전제아래 두레농장을 확대하고 보다 많은 젊은이들의 귀농을 받아들여 지 속가능한 공생농두레마을을 독자적으로 만들면서 동시에 이를 지역마을로 확산해 갈 계획이었다.

그러나 도시회원들의 회비지원이 거의 중단된 지금 으로서는 본래의 계획을 수정하고 있다. 지금의 농장규모는 3∼4세대의 영 농규모밖에 되지 않는다. 이것으로서는 자급자족하는 하나의 독립적인 지역두레를 실현할 수 없다. 그래서 다음과 같이 계획을 수정하게 되었다.

첫째는 공생농두레와 뜻을 같이하면서 경제적인 여유가 있는 귀농희망 자를 두레농장이 있는 지역에 농지구입을 통해 귀농하여 공생농두레화하게 하거나, 농지는 구입했으나 실제 귀농이 늦어지는 경우에는 그 농지를 두 레가 이용한다. 이 계획에 따라 한세대가 귀농했고 두세대가 그전 농지를 구입해 두었다.

두 번째는 두레농장에 입소해 있는 구성원들도 5년이내에 공생농두레 수업과 연수를 통해 두레 확산의 핵심 요원화시키고 이들을 인근 지역 마 을에 파견·정착시켜 두레를 지역에 확산하게 한다.

세 번째는 겨울과 여름 두 계절의 공생농두레 수업의 정례화를 통해 공 생농두레 귀농을 이념적·실천적으로 제공하여 전지역의 두레지역화에 한 몫을 하게 한다.

소개된 자료:『땅 사랑 당신 사랑』천규석 지음 - 명경

14.안솔기 생태마을 - 경남 산청군 신안면 - 산청 '안솔기 생태마을'을 아시나요?

“우리 마을은 공동체가 아닙니다. 그냥 생태마을일 뿐입니다. 보통 생태공동체는 어울려 농사를 짓는데 여기는 그렇지 않아요. 닭치는 것도 농사라면 농사짓는 이는 저 혼잡니다.나머지는 마을 바깥에 일터를 두고 출퇴근을 하지요.”

그러면 생태마을이란 무언가.

산청군 신안면 간디학교 뒤편 안솔기마을 마을 공동 대표인 최세현(41)씨가 이어서 하는 말. “자연과 더불어 생태적으로 집을 짓고 생태적으로 생활하려고 모인 터전이지요. 많은 면에서 일치하려면 너무 힘들고 가능하지 않을 수도 있잖아요. 그래서 다함께 지켜야 할 것은 최소한으로 정하고 나머지는 자유로 하자는 겁니다.”

안솔기는 마을 이름 내송리(內松里)의 우리말 표현. 간디학교 아래 마을인 바깥 솔기(외송리)와 짝을 이루는 말이다. 안솔기에 처음으로 땅을 마련해 들어온 것은 90년대 중반 간디학교 설립자인 양희규씨다.

양씨가 장만한 임야 4만5000평을 지금은 안솔기마을 구성원 15가구가 공동으로 소유하는데 이 가운데 9000평에 대해 길을 내고 집을 짓는 등 한창 형질변경을 하는 중이다.

“18가구가 들어와 사는 것으로 꾸몄지요. 지금 6가구가 살고 있고 내년 8월까지는 9가구가 더 들어와 삽니다. 왜 내년 8월이냐고요. 하하! 군에 신청한 형질변경 작업 기간이 그 때 끝나거든요.”

나머지 3가구에 대해서는 들어와 살고 싶은 이는 마을 회의를 거쳐 ‘이웃으로 더불어 살만한 사람인지’를 확인시킨 다음 남아 있는 200평짜리 대지 3곳 가운데 하나를 골라 사면 된다고 한다. 200평 한 필지의 땅값은 2000만 원. 수도와 전기·통신 시설은 집 앞에까지 끌어다 주지만 땅고르기와 다지기는 따로 돈을 들여 해야 하고(200만 원 안팎) 집짓기도  물론 개인이 해야 한다.

마을회의는 한 달에 한 번 한다. 마을과 관련된 모든 것을 의논하는데 지난해 처음 시작할 때는 표결로 결정하는 때도 더러 있었으나 지금은 모두 합의할 때까지 몇 차례고 토론을 계속하는 쪽으로 풍토가 잡혀가고 있다. 최근에는 마을 안 도로의 포장 문제를 두고 의견이 엇갈렸다. 비만 오면 질퍽거려 걸어다니기조차 어려우니 포장을 하자는 것이었다. 토론 끝에 포장하는 대신 기울기를 낮추고 자갈을 까는 쪽으로 일단 해보기로 했다.

규약도 있다. 수세식 화장실은 안된다, 합성세제는 쓰지 않는다, 생태적으로 집을 짓는다 따위를 정하고 있으며 마을회의에 대한 규정도 물론 있다.

공동작업도 있다. 경옥고를 고는 일이다. 한의사가 있으니 판로는 문제 없다. 꼬박 4일 동안 쉬지 않고 무쇠솥에다 장작불을 때는 일을 여섯 집이 돌아가면서 하고 수익을 나누는 것이다. 한 번 불을 때면 1개에 20만 원짜리인 1kg들이를 30개 가까이 만들 수 있다니 농촌 살림에 짭짤한 보탬이 된다.

“객사(客舍)도 만들기로 했어요. 방문은 언제든지 환영인데 구성원 모두가 같은 정도로 좋아하지는 않거든요. 그래서 묵고 먹을 수 있도록 시설을 갖추고 일정하게 사용료를 받기로 했습니다. 장삿속으로 하는 것은 아니고요, 어른 아이 가릴 것 없이 생태마을을 둘러보고 둘레 자연환경도 살펴보게 함으로써 생태적 삶을 바라는 이가 한 명이라도 더 늘어나기를 바라고 하는 일입니다.”

대표 최세현 씨 "이윤을 위한 경쟁이 싫었어요"

최세현 씨는 안솔기 마을에 아내 이종숙(38) 씨와 아들 힘찬이, 딸 나눔이와 함께 지난해 2월 22일 가장 먼저 이사해 들어왔다.

삼천포 출신으로 진주에서 고등학교를 마치고 서울에서 대학 생활을 보낸 최씨가 얻은 일자리는 충북 제천의 시멘트 공장이었다. 하지만 자본주의의 이윤을 위한 경쟁이 싫어 일찌감치 귀농을 꿈꾸고 차근차근 준비를 했다.

아내와 함께 귀농학교에 등록해 공부를 했고, 99년 2월다니던 회사를 그만뒀다. 귀농 이후 생계를 위해 충북 괴산의 공동체 농장에 들어가 닭치기를 익히기도  했고, 생태건축을 배우려 강원도 횡성에 있는 통나무 학교에 들어가기도 했다.   산청 안솔기에 온 것은 2000년 11월. 통나무 학교 실습생들이 만든 뼈대를 세우고 손수 벽을 치고 해서 완공한 날짜가 이듬해 2월 16일이었다. 최씨는 지금 닭을 키워 여기서 나는 달걀을 팔아 먹고 산다. 400일 된 닭이 360여 마리, 150일 된 닭이 240여 마리 되는데 하루에 300개 안팎으로 달걀이 난다. 유정란이라 하나에 250원을 받는데, 벌써 소문이 나는 바람에 없어서 못팔 정도라고.

“닭장을 너르게 만들었어요. 닭들도 생물인 만큼 충분히 운동하면서 자라도록 공간을 줘야죠. 수탉과 함께 기르니 자연스레 유정란이 되는 거고 사료를 주기는 하지만 산란촉진제나 항생제는 들어 있지 않습니다. 싱싱한 풀을 날마다 먹이고 강제 조명은 절대 안합니다.”

또 뭣보다 가장 큰 특징은 닭장에서 더러운 냄새가 안 나는 것. 숲 속의 부엽토와 흙을 같이 깔아주어 미생물이 활동하게 했기 때문인지 1년이 지나도록 한번도 치우지않아도 될 정도였다. 최씨는 월요일과 목요일 집집마다 배달을 간다. 한 달에 100만 원 남짓 벌이는  된다는데, 욕심을 버리면 충분히 살고도 남는 수준이다.

생태적 삶이야말로 앞날에 사람이 살아야 하고 살 수밖에 없는 양식이라고 여기는 최씨는 그래서 길라잡이 노릇을 자청해 나선다. 안솔기 생태마을을 찾는 이를 언제나 반겨 맞고 자세하게 안내한다. 꼬치꼬치 캐물어도 싫어하지 않고 하나하나 답해준다.

(055) 973-2962, 016-850-4858. 안솔기 생태마을 홈페이지는 http://cafe.daum.net/gandhiecovil

 

15.두레마을 / 경남 함양읍 - 희망의 바람개비 생태마을 미래밝혀 ‘두레공동체’

 

지리산 두메산골에 생태공동체 두레마을이 들어섰다. 마을 둘레는 산머루밭으로 둘려 있고 들머리엔 장승 대신 풍력발전기가 우뚝 섰다. 대전-진주간 고속도로를 타다 함양인터체인지를 빠져나가 남원쪽으로 20여분 동안 달리면 함양읍 죽림리 시목마을이 나온다. 여느 지리산 자락처럼 수수한 수목들로 둘러싸인 마을을 지나 삼봉산 기슭을 100여m 올라가면 조금 비탈진 널따란 평원이 펼쳐진다. 개천절인 지난 3일 이곳에서는 생태공동체를 표방하는 지리산 두레마을 개원 잔치가 벌어졌다. 두레공동체 대표 김진홍 목사는 “30여년 동안 두레공동체를 키워온 경험을 바탕으로 모든 에너지를 자급자족하고 사람과 가축과 자연이 어우러져 사는 생태공동체 마을을 만들어가겠다”고 밝혔다.  두레공동체는 김 목사가 1970년대 청계천 빈민들과 남양만에서 시작한 생활·신앙공동체다.  지리산 두레마을은 기존 생태공동체와 ‘이질적’이다.  지식인들이 생태이념을 구현하기 위해 학교를 중심으로 생태마을을 소규모로 개척해가는 간디학교나 변산공동체와는 먼저 13만평이라는 규모에서 다르다. 또 농림수산부·산림청 등의 지원을 받아 기존 마을을 유기농·순환농법 등으로 생태화하는 대신 ‘백지’상태에서 생태마을을 10여년에 걸쳐 계획적으로 조성해갈 방침이다.  두레마을은 생태에너지의 자급자족에 역점을 두고 있다. 이날 개원식은 돌풍과 소나기로 진행이 순조롭지 않았다. 그러나 식장 뒤편에 설치된 3대의 풍력발전기는 바람개비(프로펠러)를 열심히 돌리며 20와트짜리 전등 6개를 환하게 밝혀 생태에너지마을의 탄생을 자축하고 있었다. 이 풍력발전기는 태양광 겸용 발전기로, 중국 내몽고에서 지난 79년부터 사용해온 기술을 도입한 것이다.   출력 500와트짜리 소형 발전기의 프로펠러는 농부의 이마 땀을 식혀주는 산들바람도 감지할 정도로 예민하다. 초속 1.5m의 바람만 불어도 날개가 돌아가고 3m 정도에서는 충전까지 가능하다.   두레마을에 기술을 소개한 중국 풍력발전기제조업체 협정의 정소진 사장은 “한국은 평균 풍속이 제주와 남해안 일부만이 초속 6m이고 나머지 지역은 3m 미만이라 초속 8~12m의 풍속에서 전기를 발생하는 중대형 풍력발전기보다는 소형발전기가 제격이다”고 했다. 이 소형풍력발전기는 올해 5월 경기 군포기독교청년회관 교육과 옥상과 오산 주유소 한 곳에 실험적으로 설치돼 조명용 전기를 생산하고 있다.   그러나 두레마을의 풍력-태양광 겸용 발전기는 생태마을을 상징하는 ‘장승’이 아니다. 2200만원을 들여 설치된 3대의 발전기는 20와트짜리 할로겐 전등 20개를 밝힐 수 있는 전기를 생산해 마을 가로등과 청소년수련관 등의 조명을 실질적으로 담당한다.  임진철 중국두레공동체운동 본부장(중앙민족대학 아·태경제문화발전연구소장)은 “10여개의 풍력-태양광 겸용 발전기를 추가 설치하고, 골짜기 물을 막아 소수력발전기를 만들고 소·돼지 똥과 풀·농사 부산물 등을 원료로 바이오가스를 생산해 취사용으로 쓰는 등 마을 조성이 완료되는 시점에는 화석연료 대신 자연에너지로 100% 자급할 계획이다”고 말했다. “예전부터 경남과 전북 경계인 팔령재에서 삼봉산과 오봉산 사이로 불어오는 바람이 많았다”는 시목마을 주민 김점철(71)씨 말을 들으면 불가능한 일은 아닐 듯 싶다.  산머루농장은 두레마을이 생태공동체로 생존해갈 두번째 필요충분조건이다. 마을 터로 확보한 13만평 가운데 2만평에는 이 지역 자생 산머루를 개량해 재배하고 있다. 산머루는 농약·비료가 필요없이 퇴비로만 경작이 가능하고 알칼리성 음식이어서 항암 효과가 높아 생태마을에서 가꾸기에 안성맞춤이다.  두레마을 ‘주민 1호’인 지리산 산머루영농조합법인의 이상인 사장은 “3년 전부터 조성한 산머루농장에서 올해 1억여원의 수익이 나왔다”며 “주위 농민과 계약을 통해 50만평 규모로 재배면적을 늘리고 건강식품으로 가공해 중국·일본·미국·러시아 등에 있는 두레공동체를 통해 판매할 계획이다”고 말했다. 공동체에 국제 경영 개념을 도입해 생산-가공-유통의 삼위일체를 이뤄 ‘지리산 지역을 풍요로운 생태마을’로 가꿔 나간다는 것이다.  두레마을은 갑자기 마을이 커지면 환경이 파괴될 우려가 있어 1년에 10여세대씩 10년에 걸쳐 100여세대로 구성된다. 김진홍 목사는 “유기농만으로는 전지구적 위기에 놓인 환경문제에 대처하는 데 한계가 있다”며 “대안에너지 시민운동을 벌이고 분산된 농민의 힘을 모아 생태공동체의 모범을 만드는 것이 지리산 두레마을의 목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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