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찰자님께~
안녕하세요? 사과나무입니다....
한동안 혼란스러웠던 신나이가 이제 조금 정리가 되어 가는 것 같습니다.
사실 그 동안 있어왔던 관찰자님과 관련된 논란을 바라보면서 꼭 드리고 싶은 말씀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가뜩이나 시끄러운 신나이사이트에 저 까지 끼어 들어서 논란을 부추기고 싶지 않아서
그냥 바라만 보고 있었습니다...^^
물론 제 자신의 생각을 정리할 시간이 필요하기도 했구요.
이제 분위기도 조금 수그러 든것 같고 하니 제 마음속에 있던 은밀한 이야기들을 좀 꺼내어 볼까 합니다...ㅎㅎㅎ
미리 말씀드리지만 제가 갖고 있는 생각이 관찰자님이 갖고 계신 생각과 많이 틀리다보니
앞으로 제가 드릴 말씀이 관찰님의 마음에 조금 불편할 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글의 성격상 조금 공격적인 글이 될것 같습니다.
혹 그렇다해도도 너그러운 마음으로 끝까지 읽어 주시길 부탁드립니다...^^
그리고 제가 이 글을 쓰는 이유는 신나이 사이트에 다시 한번 논란을 부추기고자 함이 아니라
그 동안 관찰자님과 신나이주류 회원들간에 논란이 되어 왔던 영적개념들의 차이점을 명확하게 정리해 보고자 합니다.
-신나이 패러다임
제가 말씀드리고 싶은 이야기는 바로 '신나이패러다임'입니다.
제가 생각하기에는 관찰님께서 갖고 계신 생각과 신나이의 패러다임 사이에는 커다란 차이가 있는것 같습니다.
이미 오랜 시간동안 이 문제로 인해서 몇몇 신나이 회원들과 마찰이 있었던 걸로 알고 있습니다.
관찰자님은 자신의 생각이 신나이패러다임에 부합되며 자신이 얘기하는 영성 용어들의 개념이 신나이 핵심개념과 맞는다고 주장하시지만 많은 신나이 회원들은 그것에 대해 동의하지 않거나 의구심을 갖고 있습니다.
그래서 제일 먼저 어째서 관찰자님의 생각이 신나이 패러다임과 맞지 않는지에 대해서 논의 해보고자 합니다.
이 대화를 전개하는데 있어서 얼마전에 관찰자님께서 '신나이나눔'게시판에 올려서 큰 논란이 되었던
"진화야말로 영혼의 유일한 목표이자, 영적인 목적입니다."라는 글(http://cwgkorea.net/zbxe/461817)이
관찰자님의 생각과 신나이 패러다임의 간극을 확인하는데
매우 유용한 도구라고 생각되기에 함께 살펴 보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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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화야말로 영혼의 유일한 목표이자, 영적인 목적입니다.> -관찰자-
이곳의 구성원들은 고진재를 향하여 나아가고자 하는 사람들이지 아직은 고진재가 아닙니다.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현재의 이 사이트의 모든 상황은
이곳의 구성원들의 진보 상태를 반영하고 있다고도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비유로 표현해서.. 이곳의 구성원들이 초등학생 수준일 수도 있고, 중학생 레벨일 수도 있습니다.
그것 자체에 대해서는 왈가왈부할 수 없습니다.
핵심은 과연 이곳의 구성원들이 고진재를 향하여 나아가고 있느냐,
즉 '진화하고 성장하고 있느냐 아니면 정체하고 퇴보하고 있느냐' 입니다.
이에 대해 모든 사람들이 각자의 진화 상태에서는 최선을 다하고 있으므로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저진재는 저진재대로 최선을 다하고 있다.
고진재는 고진재대로 최선을 다하고 있다."
일견 문제가 없어 보입니다.
하지만 이것은 매우 위험한 발상입니다.
즉 본인이 성장하지 않고, 정체하고 있음을 합리화하는 것으로 사용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 인간에게는 누구라도 부정직함, 나약함, 게으름, 오만함 등의 에고가 (정도의 차이는 다르지만) 있습니다.
이러한 것들을 하나하나 대면하고, 그것을 빛으로 바꾸어가는 것을 진화하고 있다고 표현합니다.
만약 위의 논리대로라면, 우리들이 부정직함이나 나약함을 언제까지라도 대면하지 않고 회파하고 있을지라도
우리들은 이렇게 변명할 수 있습니다.
"나는 나의 낮은 진화상태에서 최선을 다하고 있다."
"지금 내가 나의 부정직함이나 나약함을 대면하고 그것을 통과하는 여부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언젠가는 고진재의 수준으로 진화할 것이니까."
이렇게 우리들은 [완벽한 결과의 보증]이라는 우주 시스템을 가지고,
우리들이 성장하려 하지 않는 것을 정당화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지금이순간 우리 자신의 자유의지로 진화하려는 의지를 내지 않는데,
어떻게 우리가 진화할 수 있을까요?
이러한 말을 하는 이면에는
'지금 대충 하더라도 언젠가는 될 것이다.'
'시간이 해결해 줄 것이다.' 라는 나약한 마음이 있습니다.
관찰자가 이전에 신나이언과 아이의 비유를 들었던 적이 있습니다.
여러분에게 학교를 다니지만 공부는 하지 않고,
놀기만 하고 농뗑이만 피우는 초등학생아이가 있다고 상상해 보십시오.
그 아이에게 "너는 너대로 최선을 다하고 있으니 괜찮다."고 말해줄 부모가 있을까요?
"공부좀 해"라고 아이를 꾸짖자 머리만 큰 아이가 항변합니다.
"어차피 언젠가는 공부를 잘하게 될거예요. 그러니 지금 공부하는 것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아요!"
"그렇게 지적하는 부모님은 얼마나 잘났다고 나를 가르치려 드나요? 나는 나의 상태에서 최선을 다하고 있어요!"
정말로 우리는 최선을 다하고 있는 것일까요?
그냥 변명하고 합리화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결국 이것은 우리 자신의 양심과 정직성의 문제로 귀결됩니다.
진리탐구에서 솔직함이 가장 중요한 이유이기도 합니다.
왜냐하면 진리에 대해 공부할수록, 자신이 배운 것을 가지고
자신의 에고를 합리화하고 정당화할 수 있는 가능성도 더 커지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이야기를 하는 것 자체가 고진재적이지 않다고 말하는 이도 있습니다.
본인이 스스로 공부하는 학생에게는 부모님이나 선생님이 공부하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스스로 알아서 잘하니까요.
하지만 본인 스스로 전혀 공부할 의지를 내지 않는 학생에게는
공부에 대한 자극을 줄 필요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스스로 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스스로 하는 학생은 하나를 말하면 열을 알아듣습니다.
하지만 농뗑이만 피우려 하는 학생은 열을 말해도 하나도 알아듣지를 못합니다.
왜 그럴까요? 자질이 부족하기 때문일까요?
그렇지는 않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성장하고 진보한다는 측면에서
인간으로서 갖추어진 능력은 대동소이하며, 대부분 오십보 백보입니다.
차이가 나는 이유는 단순히 성장하려는 의지가 없고 게으르고 귀찮아하기 때문입니다.
정말로 공부를 해서 본인이 성장하고 있다는 기쁨을 아직껏 체험해 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우주라는 학교시스템에 들어와 공부하고 있다면
더 높은 단계로 올라가려는 향상심,
나보다 더 공부를 잘 하는 사람에게 배우고자 하는 의지가 있어야 합니다.
똑같이 출발했는데 어떤 학생은 벌써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중학교로 나아가고 있는데
본인은 초등학교 저학년 레벨에서 헤매이고 있다면 자신을 반성할 필요가 있습니다.
물론 최종적으로는 본인의 공부이고, 본인의 배움이니 본인이 선택하겠지요.
"내가 알아서 할테니 상관하지 말라." 아이가 끝까지 그렇게 말하면 도리는 없습니다.
하지만 본인이 지구라는 학교에서 육체라는 옷을 입은 좋은 환경에서 공부하는 시기가
언제까지나 보장되어 있지는 않습니다.
또한 지구라는 학교에서 본인에게 공부의 기회를 제공하는 것도 영원하지는 않습니다.
학교에는 시험이라는 것도 있고, 낙제라는 것도 있으니까요.
"가르치려 하니까 싫다."는 것은 본인이 가르침을 받지 않아도
스스로 성장할 수 있는 상태가 되었을 때 말할 수 있는 겁니다.
좀 더 진보한 사람에게 배우고, 앞서가는 사람이 많이 뒤쳐진 사람을 이끌어주는 것이 무엇이 이상한가요?
우리 모두는 지금이순간 나 자신이 성장하기 위해,
진화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는지 솔직하게 돌아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한 노력들이 신한모의 발전에 도움이 되리라고 믿고 있습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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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뜻보면 매우 그럴듯해 보이지만 이 글을 자세히 들여다 보면
관찰자님께서는 전혀 신나이패러다임에 대해서 이해하지 못하고 있음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이 글속에 녹아 있는 관찰자님의 생각은 신나이 패러다임과 맞지도 않을 뿐더러
본인의 말씀처럼 '매우 위험한 발상' 입니다....^^
자~ 그럼 지금부터 어째서 그런지 설명드리겠습니다.
- 삶이란 과정
윗글에서 관찰자님은 진화가 영혼의 유일한 목표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또 우리의 삶이 진화의 정도로 평가 받으며
영혼의 유일한 목표인 진화와 성장을 위해서는 부단히 노력을 해야만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인간은 기본적으로 부족하고 게으르기 때문에
영혼은 정체되거나 퇴화되기 쉬우며
때문에 우리 보다 더 진화한 사람의 충고를 감사히 받아 들여야 한다고 역설하고 계십니다.
하지만 신나이에 보면 삶이란 결과가 아닌 과정이라고 이야기 합니다.
삶이란 표현된 신이고 신이 바로 삶이라고 얘기합니다.
저는 신과 나눈 이야기를 읽고서 가장 감동한 부분이
"너희는 있는 그대로 완벽하다."
"너희가 어디서 무엇을 하든지 너희는 언제나 신으로부터 사랑 받을 자격이 있으며 항상 그런 사랑을 받고 있다." ,
"모든것은 완벽의 일환이자 완성의 과정이다"
"너희와 나는 하나다"라는 부분이었습니다....^^
만약 우리가 정말로 있는 그대로 완벽한 존재이며 언제나 신에게 사랑받는 존재이며
신과 언제나 하나인 존재라고 가정한다면,
관찰자님의 주장대로 과연 어떻게 우리의 영혼이 정체하거나 퇴보할 수 있을까요?
우리가 정체하거나 퇴화한다는 것은 신이 정체하거나 퇴화한다는 말고 같습니다.
왜냐하면 신과 우리는 항상 하나이기 때문입니다.
만약 우리가 퇴화하는데 신이 퇴화하지 않는다면 그 신은 분명 우리와 완전히 분리되어 있어야 합니다.
하지만 신나이에서 신은 자신은 언제나 우리와 하나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때문에 인간적인 부족함과 게으름 때문에 우리의 영혼이 퇴화한다는 생각은 전혀 신나이적인 생각이 아니며
이것은 우리의 영혼과 진화의 본질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하는 소리입니다.
-영혼과 진화의 본질
영혼과 진화의 본질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먼저 생명이란 무엇이지 제대로 알아야 합니다.
그럼 과연 생명의 본질은 무엇일까요?
생명의 본질은 바로 '변화'입니다.
즉 한곳에 가만히 정체되어 있거나 퇴화하는 것이 아니라
매 순간 살아서 움직이며 맥동하는 것이 바로 생명입니다.
이런 생명의 본질인 '변화'를 다른 말로 표현하면 바로 '진화'입니다.
다시 말하자면 생명은 살아 움직이며 맥동하는 파동인데 그 생명의 움직임이 바로 '진화'라는 것입니다.
즉 모든 살아 있는 것은 바로 '진화하고 있는 것'입니다.
진화란 삶이나 생명의 끝자락에서 얻어지는 결과물이 아니라
삶속에서 생명속에서 그것과 함께 호흡하며 맥동하는 과정입니다.
이렇게 볼때 모든 생명의 진수라 할 수 있는 우리의 영혼 또한 매순간
살아 움직이며 맥동하면서 진화하고 있습니다.
때문에 관찰자님께서 주장하셨듯이 인간적인 부족함과 게으름으로 인한 영혼의 퇴화 따위는 없습니다.
제 생각에 관찰자님께서 영혼과 진화에 대해서 이런 잘못된 정의를 갖게 된 이유는
바로 관찰자님의 관점때문인걸로 보여집니다.
윗글에서 잘 보여주듯이 관찰자님은 '목표(결과)지상주의'적 사고를 갖고 계신 듯합니다.
즉 "목표(결과) 가장 중요하며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는 반드시 무엇인가 해야만 한다.
그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는 반드시 남보다 더 열심히 부단히 노력해야 한다."는 생각을 말이지요....^^
그리고 그런 관점때문에 삶속에서 그런 부단한 노력을 하지 않는 사람들을 보면
부족하고 게으르다'라고 판단해 버리시는것 같습니다.
하지만 단순히 어떤 사람의 일면만을 보고서 그 사람이 '부족하고 게으르다'라고 판단하는 것은 매우 위험한 일입니다.
이것은 마치 얼굴만 보고 사람을 평가하는 것과 같고
겉모습만 보고 파인애플의 맛을 평가하는 것과 같은 일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겉모습만을 보고서 파인애플의 달콤함을 알 수 없듯이
어떤이의 삶의 한 단편만을 보고서 그 사람의 진면목과 그 영혼의 숭고한 목적을 알 수 없습니다.
때문에 신나이에서는 "언제나 남에게 충고하지 말며, 다른 사람들이 스스로 충고하게끔 내버려둬라"고 말합니다.
평생을 알콜중독으로 허비한 화가도 죽기전에 불후의 명작을 남길 수 있습니다.
30년을 놀고 먹으면서 살아온 백수건달도 어느날 번뜩이는 아이디어로 세상을 바꿀 수 있는 것입니다.
멀리 뛰기 위하며 개구리가 몸을 움추리듯이 인간도 3보 전진을 위해서 1보 후퇴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충고에 관하여
최근에 관찰자님께서 올리시는 글들을 보면 많은 글들이 '왜 남들에게 충고를 해야 하고, 다른이의 충고를 감사히 받아 들여야 하는가?'하는 이야기인것 같습니다....^^
관찰자님께서 다른 회원들과 마찰을 빚는 부분도 이런 문제 때문이라고 보여 집니다.
관찰자님께 정말 그런 의도가 없는지는 모르겠지만 저 또한 님의 글에서 남을 가르치려는 듯한 의도가 들어 있다고 느껴지는 게 사실입니다...^^
그리고 많은 회원들이 그 부분에 대해 불편해 하고 있는 것이구요.
관찰자님은 모든 인간은 에고(부족함)를 갖고 있기 때문에 더 앞서가는 사람이 뒤쳐진 사람에게 얼마든지 충고할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하지만 충고에 대한 신나이적 생각은 그 반대입니다. 신나이에서는 "언제나 남에게 충고하지 말며, 다른 사람들이 스스로 충고하게끔 내버려둬라"라고 이야기 합니다.
그리고 역설적이지만 우리가 남에게 함부로 충고하면 안되는 이유는
관찰자님께서 윗글에서 말씀하셨던 바로 그 인간적 에고 때문입니다....^^
모든 인간은 관찰자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부정직함, 나약함, 게으름, 오만함을 갖고 있습니다.
그리고 거기에 더해서 자신만의 제한적 경험과 지식, 기억, 관점과 인식능력까지.....
우리가 이런 인간적 에고가 남아 있는 상태에서 남을 향해 내리는 판단이 과연 얼마나 맞을 까요?
과연 우리가 제한된 인간적 시각과 사고로 남을 향해 내리는 판단이 그 영혼의 숭고한 목적과 얼마나 가까울 까요?
때문에 우리는 다른이를 섣불리 판단하지 말고 함부로 충고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런 식의 무책임한 충고는 매우 위험할 수 있으며
충고하는 상대에게도 또 자기 자신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좋은 방법찾기
저는 한옥목수입니다. 제가 채식을 하면서 건강과 환경문제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그런 저의 관심은 '생태건축'으로 발전하다가 결국 '한옥'이라는 새로운 세계로 저를 인도해 주었습니다.
생태나 환경쪽에서 새로운 기술이 나왔을때 그 기술이 과연 인간과 환경에 정말로 좋은 기술인지
점검하는 방법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나만이 아니라 이 세상의 모든이들이 이 방식(기술)으로 살게 되었을때 과연 인간과 지구는 어떤 상태가 되는가? 그리고 그것은 과연 얼마나 지속 가능한가?' 라는 질문을 던져 보는 것입니다.
저는 이것이 물질적 삶뿐만 아니라 영적인 삶에도 적용할 수 있는 아주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을 해서
제 자신의 새로운 아이디어를 갖고서 스스로에게 이런 질문을 자주 던지고 있습니다.
그럼 과연 이 방법을 '관찰자님식 충고하기'에 적용해 보면 어떨까요?
만약 모든 사람들이 이렇게 불완전한 시각과 사고로 남을 판단해서 충고하는 행위를 반복한다면 세상은 어떻게 변할까요?
대부분의 사람들은 제한된 시각과 사고를 갖고 있기 때문에 분명 남에 대해서 그릇된 판단을 내리게 될것이고
자신이 그 사람보다 더 낫다라고 판단할 것이며 때문에 상대에게 충고하려 들 것입니다.
그러면 상대방은 "니가 뭔데 나한테 충고를 해?" 하며 버럭 화를 내면서 똑같은 방식으로 상대에게 충고하려 들겠지요...^^
결국 우리 사회는 혼란과 분란에 빠지게 될 것입니다.
-평온에 이르는 길
신나이를 읽은 많은 분들은 잠시일 지언정 마음의 평화를 얻고 평온을 체험했을 것입니다.
우리가 진정으로 평화로울 수 있던 방법은 부족의 환상에서 벗어나 남에 대한 판단과 '더 낫다'라는 생각을 내려 놓음으로서 가능해집니다.
부족의 환상때문에 경쟁이 일어나고 우월의 환상때문에 싸움이 일어나기 때문입니다.
때문에 관찰자님께서 주장하시듯이 남이 나보다 부족하다고 생각하면 충고해도 된다고 하는 생각은
우리를 혼란과 분란에 빠뜨립니다.
그것은 지금까지 관찰자님의 글과 관련된 수많은 논란으로 신나이에서 이미 증명되었습니다.
만약 관찰자님께서 앞으로도 계속 남에게 '가르침'이나 '충고'를 하시려 한다면
제한된 경험과 지식, 기억, 관점, 인식과 의식을 가진 사람들이 서로가 서로에게 충고를 하면서도 모두가 평화로울 수 있는 방안을 제시하셔야 할 것입니다.
만약 님의 방식이 다른 사람들 모두에게 똑같이 적용되지 않는 관찰자님 혼자만을 위한 방법이라면 그것은 좋은 방법이 아닙니다.
그리고 님이 정말로 게으른 사람에게는 충고가 필요하다고 생각하고 그것이 그 영혼을 돕는 일이라고 생각하신다면
님은 신나이에 계실것이 아니라 지금 당장 서울역으로 달려 가셔야 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서울역에는 님의 관점으로 볼때 게으름과 나약함의 극치를 보여주는 수많은 노숙자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님의 인식으로는 그런 사람들이야 말로 자신들의 인생을 허비하면서 영혼성장을 정체 내지 퇴화시키고 있다고 판단할 것이기에.....
평소 남을 가르치면서 도움을 주는일을 좋아하시는 관찰자님께 서울역이야 말로 최적의 장소라 할 수 있겠습니다....^^
-관찰자님 방식으로 대화하기^^
자~ 그럼 제가 먼저 관찰자님의 방식으로 관찰자님께 충고를 해보겠습니다...ㅎㅎㅎ
저의 관점으로 보았을때 관찰자님은 어린 아이와 같습니다.
그것도 한참 어린 아이입니다.
어린 아이처럼 자신이 일을 저질러 놓고 남에게 탓을 돌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그릇된 관점으로 만들어진 생각들을 신나이패러다임에 부합되는 이야기라면서
서슴없이 '신나이나눔' 게시판에 올리고 있습니다.
허나 관찰자님의 생각과 이야기들은 전혀 신나이적이지 않으며
심지어는 반신나이적이기 까지합니다.
예를 들어 볼까요? ^^
몇달전에 관찰자님은 신나이나눔 게시판에 "독실한 신나이언"이라는 글(http://cwgkorea.net/zbxe/423227)을 올려서 또 한번 소란을 일으키셨습니다.
그 글은 리멤버님께서 '금주의 일깨움'란에 올린 "너희가 가고 있는 곳에 이르지 않을 방도는 없다!!"라는 글(http://cwgkorea.net/zbxe/422356)에 대한 반론이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독실한 신나이언"이라는 글에 "위대한 관찰자"라는 댓글로 응답해 드렸습니다...ㅎㅎㅎ
그 글들을 살표보면 이렇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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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가 가고 있는 곳에 이르지 않을 방도는 없다!!> -리멤버-
너희는 길을 잘못 들 수 없다.
그런 건 계획의 일환이 아니다.
너희가 가고 있는 곳에 이르지 않을 방도는 없다.
너희의 목적지를 놓칠 방도는 없다.
神이 너희의 표적이라면, 너희는 운이 좋다.
왜냐하면 神은 너무 커서 절대로 놓칠 리 없을 것이기에.
삶은 발견이 아니라 창조다.
너희가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건
인생이 너희를 위해 지니고 있는 것을 발견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것을 창조하기 위해서다.
너희는 순간순간 너희 현실을 창조하고 있다.
아마 그것을 의식하지는 못하겠지만.
(이하생략.....)
<독실한 신나이언> -관찰자-
어느날 학교에 다니던 아들이
어떻게 하면 아버지처럼 훌륭한 사람이 될 수 있는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묻습니다.
평소 신나이책을 열심히 탐독하고, 신나이를 진리로 믿던 아버지는 이렇게 대답합니다.
얘야. 너는 잘못된 길을 갈 수 없단다. 그런 건 계획된 것이 아니거든....
얘야. 그리고 너는 결코 성공하지 못할 수 없단다. 사실 실패 같은 것은 없거든...
아들아, 실은 아무 것도 중요하지 않단다...
아들은 아버지에게 학교에서 아이들이 계속 자신을 괴롭힌다고 고민을 털어놓습니다.
아들아, 걱정하지 말거라.. 우주는 항상 너에게 천사만을 보내주고 있단다...
잘못된 것은 없단다...모든 것은 완벽하거든.. 항상 완벽함을 바라보면 된단다...
아들은 그런 이야기를 하는 아버지가 이해할 수도 없고,
한편으로는 신기하기도 해 어떻게 하면 아버지처럼 그렇게 이야기할 수 있는지 궁금해합니다.
아들아, 여기 있는 신나이책을 계속 읽으면 된단다. 그러면 아버지처럼 될 수 있단다.
아들은 그 책이 그렇게 대단한 책인가보다 생각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그 책에서 이야기하는 존재는 누구인지 과연 믿어도 되는지 의구심이 생겨 묻습니다.
걱정하지 말거라. 아들아. 신나이 책에 "나 자신은 神이다"라 분명히 적혀 있단다.
그러니 신나이 책은 하느님(신)의 말씀으로 적혀진 신성한 책이란다.
그리하여 아이는 신나이 책을 열심히 읽었고, 신나이가 하느님의 말씀임을 굳게 믿게 되었답니다.
이렇게 또하나의 독실한 신나이 가족이 생기게 되었습니다.
앞으로 아이는 아버지처럼 믿음으로 성장하여
언제나 신나이의 진리의 말씀을 외우고, 또 친구들에게도 열심히 전하는
독실한 신나이언이 되겠지요.
위대한 관찰자 -사과나무-
매일 매일 신나이사이트를 돌아다니던 아들이
어느날 어떻게 하면 아버지처럼 위대한 관찰자가 될 수 있는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묻습니다.
평소 신나이책을 열심히 탐독하던 아들을 못 마땅해 하고 신나이를 사이비로 믿던 아버지는 이렇게 대답합니다.
얘야. 너는 제대로 된 길을 갈 수 없단다. 세상엔 잘못된 길이 너무 많거든....
얘야. 그리고 너는 결코 성공할 수 없단다. 사실 성공은 불가능하거든.....
아들아, 실은 이 세상엔 중요한게 너무 많아서 너는 무엇이 중요한지 알수도 없단다....
그러니 포기하거라.
아들은 아버지에게 신나이에서 회원들이 계속 자신을 괴롭힌다고 고민을 털어놓습니다.
아들아, 두려하거라.. 세상에는 악마가 드글드글 하고 있단다...
좋은 것이란 없단다...모든 것은 불완전하거든.. 항상 불완전함을 관찰하면 된단다...
아들은 그런 이야기를 하는 아버지가 이해할 수도 없고,
한편으로는 신기하기도 해 어떻게 하면 아버지처럼 그렇게 이야기할 수 있는지 궁금해합니다.
아들아, 니가 갖고 있는 신나이책을 계속 읽으면 안 된단다. 그러면 아버지처럼 될 수 있단다.
아들은 그 책이 그렇게 사악한 책인가보다 생각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그 책에서 이야기하는 존재는 누구인지 과연 믿어도 되는지 의구심이 생겨 묻습니다.
두려워 하거라. 아들아. 신나이 책에 "나 자신은 神이다"라고 말하는 이는 악마가 분명하다.
그러니 신나이 책은 악마의 손으로 쓰여진 사악한 책이란다.
그리하여 아이는 신나이 책을 열심히 찢어 버렸고, 신나이가 악마의 이야기 임을 굳게 믿게 되었답니다.
이렇게 또하나의 위대한 관찰자 가족이 생기게 되었습니다.
앞으로 아이는 아버지처럼 믿음으로 성장하여
언제나 신나이가 악마의 말임을 기억하고, 또 친구들에게도 열심히 전하는
위대한 관찰자가 되겠지요....^^
저는 관찰자님의 '독실한 신나이언' 글을 읽고서 개인적으로 꽤 심한 충격을 받았습니다.
신나이모임의 원로 회원이자 '금주의 일깨움' 필진이신 리멤버님께서 올리신
일깨움글에 대해서 이런 말도 되지 않는 글을 버젓이 '신나이나눔' 게시판에 올린다는 것 자체가
제가 갖고 있는 상식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비유하자면 이런 관찰자님의 행동은 중요한 시험을 앞둔 수험생이
"난 할 수 있다. 불가능은 없다. 난 합격한다!"라고 매일 매일 자기 확신훈련을 하고 있는데
옆에서 도와주지는 못할 망정 그 사람의 귀에 대고
"어이~ 수험생! 정말 잘 할 수 있겠어?
잘 생각해봐. 세상에 불가능한게 얼마나 많은데....
게다가 넌 공부도 잘 못하잖아.....ㅎㅎㅎ"라면서 그 사람을 비웃는 것과 같은 짓거리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영성은 커녕 기본적인 인성과 인격 형성도 안된 사람만이 할 수 있는 행동입니다.
이런 사람은 영성의 추구는 둘째치고 인간이 살아가는데 기본이 되는
예의범절과 배려, 대화법 등을 공부하면서 먼저 인성을 갖춰야 할 것입니다.
기본적인 인성이 결여된 영성의 추구란 어린 아이의 손에 칼자루를 쥐어 주는 것 처럼 위험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관찰자님은 여기에 더해서 자신으로 인해서 야기된 혼란과 분란을 남들 때문이라면서 남탓을 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어린 아이들이 보여주는 전형적인 행동방식입니다.
만약에 관찰자님이 식당에 갔는데 그곳에서 다른 손님과 싸움이 일어 났다면 관찰자님은 그 식당의 사장과 다른 손님들에게 사과하지 않으시는지요?
아무리 자신의 잘못때문에 일어난 일이 아니라 해도
사람은 기본적으로 자신때문에 다른 사람들이 불편이나 고통을 겪게 되면 사과하는 것이 기본입니다.
아무리 관찰자님의 인식능력이 부족해서 자신의 실수를 인식하지 못해서
사실은 자신 때문에 일어난 일임에도 남 때문이라 생각한다해도
자신 때문에 피해를 당한 주위 사람들에게 사과하고 이해를 구하는것이 사람의 기본적인 도리입니다.
하지만 관찰자님은 자신의 삐뚤어진 인식에 의해서 야기된 분란에 대해서 줄기 차게 남탓을 하면서
급기야 운영진에게 책임을 묻는 어처구니 없는 행동을 하고 있습니다.
그 동안 신나이사이트에서 계속 이어저 온 관찰님과 관계된 분란을 관찰하면서 제가 내리게 된 결론은
관찰자님은 영성의 추구는 잠시 내려 놓으시고
인간이 갖추어할 예의범절과 배려, 대화법 등을 먼저 공부하시기 바랍니다.
참, 신나이책들을 매일 매일 정독한다면 매우 큰 변화가 있을 것입니다.....ㅎㅎㅎ
이것이 관찰자님보다 약간 더 앞서가는 사과나무가 관찰자님께 드리는 있는 그대로의 진심어린 충고입니다.
-학생의 본분
ㅎㅎㅎ 어떠 신가요?
이 사과나무가 인간적인 에고를 바탕으로 솔직하게 관찰자님께 드리는 충고가 마음에 드셨나요?
분명 마음이 불편해 지셨을 거라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저의 인간적인 관점과 인식은 매우 제한적이며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분명 관찰자님은 제가 인식하는 것보다 훨씬 괜찮은 분일꺼라 생각합니다.
물론 그렇지 않은 경우만 빼고요....ㅎㅎㅎ
다시 얘기를 관찰자님께서 갖고 계신 '목표지상주의'적 관점으로 돌려 보도록 하겠습니다.
관찰자님의 '목표지상주의' 관점은 관찰자님의 '아이와 공부' 비유에서도 찾을 수 있습니다.
관찰자님은 학생은 반드시 공부를 해야만 한다고 생각하십니다.
왜냐하면 학생의 본분은 공부이고 학생의 목표는 열심히 공부해서 시험에서 좋은 성적을 받는 거라는 믿음이 깔려 있기 때문입니다.
때문에 공부하지 않고 놀려고만 하는 아이는 공부하라고 야단을 쳐서 공부하게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하셨습니다.
하지만 신나이에서는 다른 이야기를 합니다.
학생의 본분은 공부가 아니라 '배움'이며 사실 그 배움이란 '기억해내기'라고 말이지요.
그리고 그 배움이란 꼭 학교와 교과서속에만 들어 있는 것이 아니라
친구들과의 이야기 속에도 들어 있고 집으로 돌아오는 버스속에도
버스에서 흘러 나오는 라디오에서도
집으로 돌아와서 가족들과 함께 먹는 저녁속에도 들어 있습니다.
관찰자님은 학생의 본분은 공부이니 공부를 안하는 아이는 혼내서라도 억지로 공부를 하도록 만들어야 한다고 말씀하시지만 정말 현명하고 지혜로운 부모는 공부란 결코 억지로 해서 되는 것이 아님을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자식을 혼내서 강제로 공부를 시키는 대신에 자녀가 공부에 관심과 흥미를 가질 수 있도록
곁에서 도와주고 이끌어줍니다. 또한 그런 부모들은 세상사람들의 생김새가 모두 틀리듯이
모든 사람은 저마다의 소질과 재능이 다름을 알기에 자신들의 자녀가 꼭 공부만 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세상에는 그림도 있고 음악도 있고 영화와 글쓰기, 음식, 자동차, 농사, 어부 등등 수 없이 많은 직업이 있습니다.
때문에 현명한 부모는 자식에게 억지로 공부하라 강요하지 않고 아이가 어떤것에 흥미가 있고 어떤 재능이 있는지 유심히 관찰해서 그런 재능을 키워 나갈 수 있도록 도와줍니다.
관찰자님은 자식에게 공부안한다고 야단치면서 공부하라 강요하는 강압적인 부모와
관심과 사랑으로 자식을 대하는 지혜로운 부모 중에 어떤 부모가 더 바람직하다고 생각하시는 지요?
또 어떤 아이가 자신이 가진 재능을 마음껏 발휘해서 장차 훌륭한 사람이 된다고 보십니까?
저는 당연히 지혜로운 부모 밑에서 크길 바라고 그런 부모가 되고 싶습니다....^^
-내면의 스승
관찰자님은 인간은 부족하기 때문에 자신보다 나은 사람을 스승으로 받아 들이고 배워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하지만 진정한 스승이란 우리 내면에 거하는 '신성' 밖에 없습니다.
스승과 지도자, 종교와 수행법 그리고 신나이까지도 다른 모든것은
그런 우리 내면의 신성을 가리키는 손가락이자 표지판에 불과 합니다.
때문에 우리가 만약 우리의 밖에서 스승을 찾고 진리를 찾고자 한다면 우리는 방황하게 될 것입니다.
그 어떠한 조언과 충고도 본인 스스로 받아 들이지 않으면 아무런 효과도 발휘 하지 않습니다.
때문에 남을 가르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스스로 변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그리고 스스로 변하도록 유도하는 가장 효율적인 방법은 먼저 모범이 되는 것입니다.
남에게 충고하면서 억지로 변하라고 강요하는 것보다
상대방이 나를 보면서 스스로 '아~ 나도 저렇게 되고 싶다'는 생각이 들게 끔 거울이 되는 것입니다.
실제로 저는 10년동안 채식을 하면서도 주위 사람들에게 채식을 하라고 강요하지 않습니다.
저는 채식이 저의 몸과 마음과 영혼을 위해서 가장 좋은 길이라고 판단했기에 채식을 선택하였고
그 덕분에 많은 정신적, 육체적 이익을 얻었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모든이들이 전부 채식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도 않고 강요하지도 않습니다.
제게 풀을 좋아하고 풀을 먹을 권리가 있듯이 다른이들에게도 자신이 좋아하는 음식을 먹을 권리가 있기 때문입니다.
제가 고기 한점 먹지 않으면서도 힘든 한옥목수일을 잘 이어 가고 있는 모습을 보면서
주위에 많은 사람들이 채식에 대해서 새로운 인식을 갖게 되고 관심을 갖게 되는 것을 많이 경험했습니다.
우리 신나이사이트에도 샤말리님과 저 때문에 채식에 대해서 관심을 갖는 분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어서
개인적으로 매우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완벽한 결과의 보장
이제 관찰자님께서 말씀하셨던 '완벽한 결과의 보장'에 대해서 이야기 해보겠습니다.
완벽한 결과의 보장이란 "우리는 결코 잘못 될수도 잘못 갈수도 없다"는 신의 약속입니다.
관찰자님께서는 게으른 신나이회원들이 그런 신의 약속을 믿고서 자신의 인생을 허비한다고 판단하고 계십니다.
하지만 역시 그런 판단은 인생을 결과로만 판단하고 "완벽한 결과의 보장'이라는 절대적 결과만을 추구하는
'목표지상주의적' 사고 때문에 생긴 불완전한 인식입니다.
그러나 앞에서 이미 말씀드렸듯이 삶이란 결과가 아닌 과정입니다.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우리들 자신을 재벌가의 외아들이라고 생각해 봅시다.
그리고 그 외아들은 재벌총수의 모든 재산을 상속받는 유일한 상속자 입니다.
만약 관찰자님께서 그 아들이라면 어떤 인생을 사시겠습니까?
당신에게는 부족한것이 없습니다. 필요한것은 무엇이든지 얻을 수 있고 배우고 싶은건 무엇이든지 배울 수 있습니다.
과연 당신은 그런 풍요로운 환경속에서 탱자 탱자 놀고 먹으면서 인생을 즐기 시겠습니까?
아니면 더 열심히 배우고 더 열심히 연구해서 아버지보다 더 나은 기업가가 되고 더 훌륭한 회사를 만들려고 노력하겠습니까?
물론 진짜 세상에는 재벌가의 아들로 태어나서 망나니같이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긴 하지만
많은 재벌가의 자식들에게는 승부욕과 성취욕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신의 자녀들인 우리들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신이 우리에게 물려주는 무한한 풍요와 무한한 사랑과 무한한 지혜를 가지고 과연 우리는 어떤걸 할 수 있을까요?
아니 우리는 진정으로 무엇을 하고 싶어 할까요?
저는 진정한 신의 자녀라면 우리의 아버지, 어머니가 이룩한 왕국보다 더욱 아름다운 왕국을 건설하고자 노력 할거라 생각합니다.
때문에 저는 진정한 신나이언이라면 결코 '완벽한 결과의 보장'이란 약속을 무의미하게 만드는 그런 무책임한 행동을 하지 않을 거라 생각합니다.
그런 식의 행동은 마치 "환생이 있으니까 난 내 멋대로 살아도 돼"라고 하면서 온갖 악행을 일삼는 것과 마찬가지 이기 때문입니다.
-완벽과 완전
이제 완벽과 완전에 대해 얘기해 보겠습니다.
완벽이란 결점도 없고 부족함도 없는 상태를 말합니다.
그리고 완전이란 존재하는 전부를 말합니다.
신은 완벽하고 완전한 존재입니다.
하지만 완벽을 '더 이상 좋아질 수 없는 상태'라 규정한다면 신은 완벽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신은 늘 진화하고 있고 더 나아지고 있는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인간은 신의 자녀들이자 신입니다.
때문에 우리 인간들도 완벽하면서 완전한 존재입니다.
하지만 우리들의 실제 삶속에서 우리 스스로가 완벽하면서 완전한 존재로 자신을 인식하기는 매우 어렵습니다.
오히려 우리들은 매일 매일 크고 작은 실수와 실패를 거듭하면서 성장해 나갑니다.
하지만 사실은 이런 실수와 실패야 말로 인간을 완벽하게 만들어 주고 가치있게 해주는 보물입니다.
-인간과 컴퓨터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인간은 불완전합니다. 때문에 실수를 합니다.
하지만 컴퓨터는 완벽합니다. 때문에 실수하지 않습니다.
펜을 이용해서 동그란 원을 그려 보면 인간은 매순간 삐뚤빼뚤 제 각각인 원을 그립니다.
하지만 컴퓨터는 언제나 완벽한 원을 똑같이 그려 냅니다.
인간의 불완전한 손놀림은 매 순간마다, 각 사람마다 다양성을 만들어 내어
그 그림에 가치를 갖게 해줍니다.
컴퓨터의 완벽한 손놀림은 매 순간마다, 각 기계마다 똑같은 획일성을 만들어 내어
컴퓨터가 그린 그림에 별도의 가치를 부여하지 않습니다.
즉 인간의 불완전함이 인간을 완벽하고 가치있게 만들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의 삶도 마찬가지 입니다.
만약 우리가 우리의 삶속에서 어떠한 실수도 실패도 없는 완벽한 존재라고 한다면
이 세상은 과연 어떤 모습일까요?
우리가 생각한것은 모두 이룰 수 있고 원하는 것은 뭐든지 가질 수 있고
가고자 하는 곳엔 어디든지 갈 수 있는 그런 존재였다면.....
아마도 우리는 이 지구에 오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냥 절대계에 머물러 있었겠지요.
이것은 마치 컴퓨터게임을 하는데 자신의 캐릭터가 천하무적인 것과 똑같습니다.
천하무적으로 게임을 해본 사람은 알겠지만 어떤 어려움도 없는 게임은 재미도 사라지고 맙니다.
때문에 우리는 우리 자신들의 완벽함과 완전함을 몸으로 험하기 위해서
스스로 불완전함속으로 뛰어 들었습니다.
그리고 우리의 삶속에서 크고 작은 실수와 실패를 체험하면서
스스로를 인식하고 확장하면서 성장하고 있습니다.
때문에 모든 실수와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이고
우리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들은 완벽의 일환이자 완성의 과정인 것입니다.
우리가 이점을 분명히 인식하게 될때
우리의 삶은 경쟁이나 전쟁이 아닌 선물이자 축복이 될 수 있습니다.
자신에게 일어난 모든 일들에게 감사하면서 더 큰 성장으로 나아 갈 수 있게 됩니다.
-신들의 마라톤경기
우리들의 삶이란 '신들의 마라톤경기'입니다.
우리는 커다란 원의 중심에 모여서 원의 바깥쪽을 향해서 마라톤을 시작했습니다.
이 신들의 마라톤에는 시간제한도 경로제한도 없는 그 야말로 무제한 경기입니다.
원의 테두리를 둘러 싸고 있는 하얗고 빛나는 결승테이프는 바로
우리들의 고향이자 아버지인 '신'입니다.
우리들의 목표인 신은 너무나 커다란 존재이기 때문에 결코 우리는 신을 비껴 갈 수 없습니다.
신은 완전히 우리를 둘러싸고 있기에 우리는 결코 길을 잃을 수 없습니다.
아무런 제한도 없는 마라톤경기이다 보니 많은 사람들은 우리가 이곳에 온 이유를 잊은채
우리를 둘러싼 환경에 빠져서 그곳의 아름다운 풍경을 감상하고 있습니다.
어떤 이들은 들어 누워 잠을 자기고 하고 어떤 일들은 아예 집을 짓고 정착해서 살기도 합니다.
어떤이들은 뛰어 가기도 하고 어떤 이들을 걷기도 하며 또 어떤이들은 기어가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모두가 자기가 가고 싶은 데로 자신들의 방법으로 자신들의 길을 가고 있습니다.
그래도 아무런 상관도 없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언제나 신의 품안에 있으며 우리는 언젠가 반드시 신과 마주치게 될 테니까요.....*^^*
사과나무가 관찰자님께 올립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