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드, 나체, 그리고 알몸사진 >
얼마전 포토그래퍼가 일하는 모습을 텔레비전에서 본 적이 있다. 화려한 화면구성 속에서 그는 열심히 사진을 찍고 있었다. 화면에서는 포토그래퍼가 열심히 사진 찍는 것만 보이던데, 내가 알고 있는 사진가와 어떻게 다른지 잘 모르겠다.
많은 남자들이 좋아하는 사진에는 세 가지가 있다. 누드사진, 나체사진 그리고 알몸사진. 이들 사진이 어떻게 서로 다른지 여러분은 아시는지. 내 눈에는 세 가지 모두 벌거벗은 여성 사진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데 말이다.
한국 사람들이 써 오는 미묘한 어감의 차이(어떤 사람들은 뉘앙스의 차이라고 한다)에 따르면, 포토그래퍼가 찍은 사진은 누드사진이고, 사진가가 찍은 사진은 나체사진, 나 같은 찍사가 찍은 사진은 알몸사진이라고 부른다. 그래서 품격이나 정론을 앞세우는 잡지와 신문들은 누드사진이나 드물게 나체사진만 싣고, 황색언론이라는 소리를 듣는 곳에서는 알몸사진을 담는다.
외국어가 넘치고 있다는 지적이 많다. 여러분들도 한국 사람의 정서가 녹아있는 순수한 한국말이 사라지고 그 자리를 외국어 - 직설적으로 말하면 영어가 대신하고 있다는 사실에 공감할 것이다.
고등학생때 졸면서 들은바로는 언어는 생명처럼 움직인다고 한다. \'기생\'이니 \'안방\'이니 하는 말을 영어 마을에 시집보내고, \'인터넷\'이니 \'컴퓨터\'니 하는 말을 맞이하면서 커 가는 공동체이기도 하다. 그러나 적어도 한국말에서는 외국어 수입이 너무 지나치다는 느낌이다. 외국에서 들여온 말들이 한국어를 살찌우는 게 아니라 있던 토종 말들을 죄다 쫓아버리기 때문이다. 한자말이 휩쓸고 간 다음엔 일본말이 와서 쑥대밭으로 만들어 놓더니, 이젠 영어가 한국말 터를 초토화한다. 어느 때부터는 영어-영국말이 무시당하고 또 다른 영어-미국말이 한국인 입에 오르내린다.
\"영어라고 다같은 영어가 아녀. \'본네트\'? 그게 어찌 영언감. 그건 저기 변두리 말이고 \'후드\'가 맞는 말이랑께.\"
이렇게 영국말인 \'본네트\'와 미국말인 \'후드\'가 싸우고 있는 동안 한국의 \'덮개\'는 어디 가서 무얼 하고 있는지. \'덮개\'야, 밥은 먹고사니?
6.25 때 미아리 고개 너머 북으로 끌려간 \'동무\'는 살았는지 죽었는지 모르겠다. \'동지\'라는 말이 자주 나오는 거 보면 숙청된 것 같은데... 남쪽에서 아직까진 \'친구\'가 친구세계를 꽉 잡고 있지만, \'보이 프렌드\'나 \'걸 프렌드\' 때문에 많이 힘들어하고 있어 끌려간 \'동무\'가 생각난다.
내가 여기에서 얘기하고 싶은 문제는 외국어가 한국말 마을에 들어오면서 이들이 주인 행세를 하고 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외국어(외래어가 아닌)를 중심으로 말의 계급화가 이뤄진 것이다. 그 동안 한자말이 주인행세를 해 오다가 일본말이 들어와 일본말이 주인이 됐다. 다시 영어가 이 마을에 들어 온 다음부터는 영어가 지주, 한자말과 일본말이 마름, 한국말은 소작농이 됐다.
대낮에 종로거리에서, 멀쩡한 정신으로 순 우리말로 된 여자 생식기 이름을 큰 소리로 외칠 수 있는 사람이 나를 포함한 우리들 가운데 몇이나 될까? 여기서 순 우리말은 거의 금기된 말이 됐다. 그래서 나도 여기에서 쓰지 못한다. 사람들은 \'음부\', \'치부\'라는 한자말을 쓴다. 고귀한 양반들은 \'벌버\'라는 미국말을 쓰겠지.
한글을 가장 깨끗하게 다듬어 쓴 소설가 이태준 선생은 \'문장강화\'에서 \'모던\'한 문장을 위해 외국말을 적극 활용해야 한다고 한 바 있다. 하지만 조선시대와 구한말 시절에 나온 판소리, 창가체, 문어체 문장을 극복하고 현대적인 소설문장을 만들어 가는 시기라서 그렇게 말한 것이지, 지금처럼 한글을 깔아뭉개라는 뜻으로 한 소리는 아닐 게다.
몇몇 사람들은 마땅한 우리말이 없어서 외국어를 쓸 수밖에 없다고 한다. 맞는 말이다. 하루가 다르게 외국 문물과 새 기술이 쏟아지는데 그에 맞는 우리말이 있을 수 있나.
내가 군대에서 막 제대할 때쯤, 한글마을에서는 \'삐삐\'와 \'호출기\'가 열심히 싸우고 있었다. 서로 자기가 잘났다고. 싸움에서 누가 이겼는지 아는가. \'비퍼\'라는 엉뚱한 놈이었다. 위에서 말한 사람들 얘기가 맞다면 \'페이저\'라는 기계가 한국으로 이민 왔을 적에 마땅히 \'페이저\'라는 이름으로 주민등록 신청을 해야 했다. 하지만 호적에는 \'무선 호출기\', 마을 사람들 입에는 \'삐삐\'로 올랐다. 그런데 소리 없이 등장한 \'비퍼\'가 삐삐는 물론이고 페이저까지 없앴다. 제일 먼저 시집 온 \'전자우편\'은 본관이 중국이라서 \'이-메일\'이라는 둘째 부인한테 살해당해도 애써 모른 척하고 있는가.
문제는 말의 계급화가 한국 사회의 계급화와 이어져 있다는 점이다. 똑같은 니콘 사진기로 똑같은 한국 사람을 찍는데, 어퍼 클래스는 포토그래퍼의 누드 이미지를 감상하고, 중산층은 사진가가 촬영한 나체사진을, 나 같은 아랫것들은 찍사가 찍은 알몸사진을 봐야 한다는 사실이다. 그러다 보니 상류층에 끼여들고 싶은 사람들은 \'콩글리시\'라는 사생아를 데리고 상류층 흉내를 낸다.
또 문제는 말의 계급화가 사회계급화로 이어져 있고, 다시 사대주의와 이어져 있다는 점이다. 국어 교과서와 국사 교과서를 읽어봤다면 쉽게 알아챌 게다. 지배계급은 조선시대에는 \'한문\'을 일제시대 때는 \'일본어\'를 그리고 지금은 \'영어단어\'를 쓰고 있다는 것을. 그들은 이라크가 세계 최강자가 되면 아랍어를 쓸 것이라고 추측해 볼 수 있다. 그러면서 자기들의 기득권을 지키려 할 것이다.
이 자리에서 \'날틀\', \'가람\'을 살리자고 주장할 생각은 없다. 납북된 \'동무\'를 구출하자고 선동할 마음도 없다. 얼마 전까지 숨쉬던 \'승강기\'도 고이 묻어주자.
하지만 언어문제를 더 이상 언어문제로만 볼 수 없다는 점은 얘기해야겠다. 언어문제가 외국어를 중심으로 한 계급화, 사회계급화 그리고 사대주의와 이어져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융단폭격으로 초토화한 한글 마을을 한글학자들만으로 복구할 수 없다. 공교육 문제가 대학입시, 사회구성원 문제로 이어져 문교부 장관(지금의 교육부총리) 혼자 힘으로 풀 수 없듯이 말이다.(2000.5.9. 인터넷한겨레에서)
얼마전 포토그래퍼가 일하는 모습을 텔레비전에서 본 적이 있다. 화려한 화면구성 속에서 그는 열심히 사진을 찍고 있었다. 화면에서는 포토그래퍼가 열심히 사진 찍는 것만 보이던데, 내가 알고 있는 사진가와 어떻게 다른지 잘 모르겠다.
많은 남자들이 좋아하는 사진에는 세 가지가 있다. 누드사진, 나체사진 그리고 알몸사진. 이들 사진이 어떻게 서로 다른지 여러분은 아시는지. 내 눈에는 세 가지 모두 벌거벗은 여성 사진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데 말이다.
한국 사람들이 써 오는 미묘한 어감의 차이(어떤 사람들은 뉘앙스의 차이라고 한다)에 따르면, 포토그래퍼가 찍은 사진은 누드사진이고, 사진가가 찍은 사진은 나체사진, 나 같은 찍사가 찍은 사진은 알몸사진이라고 부른다. 그래서 품격이나 정론을 앞세우는 잡지와 신문들은 누드사진이나 드물게 나체사진만 싣고, 황색언론이라는 소리를 듣는 곳에서는 알몸사진을 담는다.
외국어가 넘치고 있다는 지적이 많다. 여러분들도 한국 사람의 정서가 녹아있는 순수한 한국말이 사라지고 그 자리를 외국어 - 직설적으로 말하면 영어가 대신하고 있다는 사실에 공감할 것이다.
고등학생때 졸면서 들은바로는 언어는 생명처럼 움직인다고 한다. \'기생\'이니 \'안방\'이니 하는 말을 영어 마을에 시집보내고, \'인터넷\'이니 \'컴퓨터\'니 하는 말을 맞이하면서 커 가는 공동체이기도 하다. 그러나 적어도 한국말에서는 외국어 수입이 너무 지나치다는 느낌이다. 외국에서 들여온 말들이 한국어를 살찌우는 게 아니라 있던 토종 말들을 죄다 쫓아버리기 때문이다. 한자말이 휩쓸고 간 다음엔 일본말이 와서 쑥대밭으로 만들어 놓더니, 이젠 영어가 한국말 터를 초토화한다. 어느 때부터는 영어-영국말이 무시당하고 또 다른 영어-미국말이 한국인 입에 오르내린다.
\"영어라고 다같은 영어가 아녀. \'본네트\'? 그게 어찌 영언감. 그건 저기 변두리 말이고 \'후드\'가 맞는 말이랑께.\"
이렇게 영국말인 \'본네트\'와 미국말인 \'후드\'가 싸우고 있는 동안 한국의 \'덮개\'는 어디 가서 무얼 하고 있는지. \'덮개\'야, 밥은 먹고사니?
6.25 때 미아리 고개 너머 북으로 끌려간 \'동무\'는 살았는지 죽었는지 모르겠다. \'동지\'라는 말이 자주 나오는 거 보면 숙청된 것 같은데... 남쪽에서 아직까진 \'친구\'가 친구세계를 꽉 잡고 있지만, \'보이 프렌드\'나 \'걸 프렌드\' 때문에 많이 힘들어하고 있어 끌려간 \'동무\'가 생각난다.
내가 여기에서 얘기하고 싶은 문제는 외국어가 한국말 마을에 들어오면서 이들이 주인 행세를 하고 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외국어(외래어가 아닌)를 중심으로 말의 계급화가 이뤄진 것이다. 그 동안 한자말이 주인행세를 해 오다가 일본말이 들어와 일본말이 주인이 됐다. 다시 영어가 이 마을에 들어 온 다음부터는 영어가 지주, 한자말과 일본말이 마름, 한국말은 소작농이 됐다.
대낮에 종로거리에서, 멀쩡한 정신으로 순 우리말로 된 여자 생식기 이름을 큰 소리로 외칠 수 있는 사람이 나를 포함한 우리들 가운데 몇이나 될까? 여기서 순 우리말은 거의 금기된 말이 됐다. 그래서 나도 여기에서 쓰지 못한다. 사람들은 \'음부\', \'치부\'라는 한자말을 쓴다. 고귀한 양반들은 \'벌버\'라는 미국말을 쓰겠지.
한글을 가장 깨끗하게 다듬어 쓴 소설가 이태준 선생은 \'문장강화\'에서 \'모던\'한 문장을 위해 외국말을 적극 활용해야 한다고 한 바 있다. 하지만 조선시대와 구한말 시절에 나온 판소리, 창가체, 문어체 문장을 극복하고 현대적인 소설문장을 만들어 가는 시기라서 그렇게 말한 것이지, 지금처럼 한글을 깔아뭉개라는 뜻으로 한 소리는 아닐 게다.
몇몇 사람들은 마땅한 우리말이 없어서 외국어를 쓸 수밖에 없다고 한다. 맞는 말이다. 하루가 다르게 외국 문물과 새 기술이 쏟아지는데 그에 맞는 우리말이 있을 수 있나.
내가 군대에서 막 제대할 때쯤, 한글마을에서는 \'삐삐\'와 \'호출기\'가 열심히 싸우고 있었다. 서로 자기가 잘났다고. 싸움에서 누가 이겼는지 아는가. \'비퍼\'라는 엉뚱한 놈이었다. 위에서 말한 사람들 얘기가 맞다면 \'페이저\'라는 기계가 한국으로 이민 왔을 적에 마땅히 \'페이저\'라는 이름으로 주민등록 신청을 해야 했다. 하지만 호적에는 \'무선 호출기\', 마을 사람들 입에는 \'삐삐\'로 올랐다. 그런데 소리 없이 등장한 \'비퍼\'가 삐삐는 물론이고 페이저까지 없앴다. 제일 먼저 시집 온 \'전자우편\'은 본관이 중국이라서 \'이-메일\'이라는 둘째 부인한테 살해당해도 애써 모른 척하고 있는가.
문제는 말의 계급화가 한국 사회의 계급화와 이어져 있다는 점이다. 똑같은 니콘 사진기로 똑같은 한국 사람을 찍는데, 어퍼 클래스는 포토그래퍼의 누드 이미지를 감상하고, 중산층은 사진가가 촬영한 나체사진을, 나 같은 아랫것들은 찍사가 찍은 알몸사진을 봐야 한다는 사실이다. 그러다 보니 상류층에 끼여들고 싶은 사람들은 \'콩글리시\'라는 사생아를 데리고 상류층 흉내를 낸다.
또 문제는 말의 계급화가 사회계급화로 이어져 있고, 다시 사대주의와 이어져 있다는 점이다. 국어 교과서와 국사 교과서를 읽어봤다면 쉽게 알아챌 게다. 지배계급은 조선시대에는 \'한문\'을 일제시대 때는 \'일본어\'를 그리고 지금은 \'영어단어\'를 쓰고 있다는 것을. 그들은 이라크가 세계 최강자가 되면 아랍어를 쓸 것이라고 추측해 볼 수 있다. 그러면서 자기들의 기득권을 지키려 할 것이다.
이 자리에서 \'날틀\', \'가람\'을 살리자고 주장할 생각은 없다. 납북된 \'동무\'를 구출하자고 선동할 마음도 없다. 얼마 전까지 숨쉬던 \'승강기\'도 고이 묻어주자.
하지만 언어문제를 더 이상 언어문제로만 볼 수 없다는 점은 얘기해야겠다. 언어문제가 외국어를 중심으로 한 계급화, 사회계급화 그리고 사대주의와 이어져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융단폭격으로 초토화한 한글 마을을 한글학자들만으로 복구할 수 없다. 공교육 문제가 대학입시, 사회구성원 문제로 이어져 문교부 장관(지금의 교육부총리) 혼자 힘으로 풀 수 없듯이 말이다.(2000.5.9. 인터넷한겨레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