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 크지 않아도 좋다. 누군가 3칸짜리 한옥을 짓던 퇴계 이황에게 왜 집을 더 크게 짓지 않느냐고
묻자, 선생은 천지가 다 내 집인데 내 한 몸 뉘일 공간 3칸이면 족하다고 했다던가. 그 넉넉함이 부럽다. 아담한 한옥 한 채를, 그것도 내
손으로 지을 수 있다면 그보다 더 즐거운 일은 없을 게다.
집은 그저 단순한 재료의 집합체만은 아니다. 공간을 만드는 건
인간이지만, 그렇게 만들어진 공간은 또 인간을 지배한다. 문명과 문화는 기둥을 세우고 지붕을 얹어 공간을 나누는 데서 출발한다. 그래서 어떤
집은 좀 더 인간적이고, 어떤 집은 삭막하다. 다 지어진 집에 들어가 자신을 거기에 끼워 맞추지 않고 제 살 집을 손수 설계해 짓는 일은 자기
삶과 마주하는 일에 가깝다. 이런 뜬금없는 공상에 들뜨게 되면 “벽에 못질 하나 제대로 못하면서 집은 웬 집이냐”는 아내의 핀잔쯤은 한쪽 귀로
흘려버리게 된다.
나무의 숨결을 느끼고 손맛을 체험 한다
경북 청도의 남산 중턱. 올라가는 길
양편으로 복숭아꽃이 한창이다. 말 그대로 무릉도원이다. 이곳에 한옥 짓는 법을 배울 수 있는 한옥학교가 있다. 너와지붕을 얹은 한옥이 강의실 겸
사무실이다. 비탈진 지형을 이용해 지은 탓에 밖에서 보면 단층인데 들어가니 이층 건물이다. 아래층은 식당으로 쓴다고 한다. 목재가 가득 쌓인
넓은 앞마당에선 전기톱 소리가 요란하다. 한옥학교는 지난해 10월 문을 열었다. 어린이 체험캠프, 스스로 집짓기 강좌, 목수양성 과정 등 3가지
프로그램이 준비돼 있다. 어린이 체험캠프는 초·중·고교생을 대상으로 여름방학에 열린다. 정식 개교 전인 지난해 여름 ‘선사 시대 사람들은 어떻게
살았을까’를 주제로 2박3일 캠프를 열었는데 반응이 아주 좋았단다. 올여름에는 부모와 함께하는 체험캠프를 준비한다. 스스로 집짓기 강좌는 대구
인근에 사는 직장인이 주 대상이다. 4주 과정으로 주중 화요일에는 대구 흥사단에서 이론 강의를 하고 일요일에는 한옥학교에서 실습이 있다. 4주
동안 나무를 직접 다듬어 원두막을 짓는데, 목수양성 과정은 한옥학교의 핵심이다. 전통 한옥의 법식을 전수하는 게 그 목적으로, 3개월 동안 매일
교육이 있다. 설계도 그리기에서부터 자재 산출, 목재 다듬기, 집 세우기까지 하나하나 철저하게 배울 수 있다. 2기 교육생 23명이 이 과정에
있다.
한옥학교에는 두 명의 선생님이 있다. 한 명은 변숙현(44) 교장. 영남대에서 전통건축으로 박사과정을 마친 변 교장은 이론
담당이다. 변 교장은 건설업체를 5년 동안 경영하다 직접 포크레인을 사 고향인 이곳에 터를 닦고 한옥학교를 세웠다. 변 교장은 특히 한옥교육에
관심이 많다. “한옥은 우리 민족과 우리 환경에 적응한 가장 바람직한 주거유형이죠. 안타깝게도 한옥은 주택문화로서는 거의 죽은 거나 마찬가지죠.
우리 한옥의 빛깔 있는 건축 언어를 되찾으려면 교육이 가장 중요해요. 초중고 학생이나 대학 건축과 학생들이 나무의 숨결을 느끼면서 손맛을 체험해
볼 수 있는 기회가 많아져야 합니다. 결국은 이들이 왜곡된 우리 주거문화를 제자리로 돌아가게 만들 주인공들인 거죠.” 변 교장은 2만여평의 넓은
학교 부지에 한옥노천 박물관을 만들 계획을 세워두고 있다.
우리시대 최고의 장인 김창희 대목장
또
한 명의 선생님은 우리 시대 최고의 장인으로 꼽히는 김창희(73) 대목장이다. 한국 건축의 전통 법식과 70평생의 올곧은 삶에서 우러나는
장인정신을 가르친다. 적지 않은 나이에도 직접 톱과 끌, 망치를 들고 온몸으로 시범을 보인다. 조금이라도 어긋났다가는 당장 불호령이다. “보면
모르노!” 노령 탓에 발음이 흩어지는데도 교육생들이 그걸 놓치지 않고 알아듣는 게 신기하다. 산전수전 다 겪으며 전국의 건축현장을 누볐을 노
장인은 젊은 예비 목수들에 둘러싸여 은근히 행복한 표정이다. 장인에게 도판이 따로 있을 리 없다. 몇 가지 궁금한 걸 묻자 플러스펜으로 손바닥에
능숙하게 도면을 그리며 설명해 준다. “일본은 전쟁 끝나고도 전통 집들이 다 그대로 남았는데 우리는 다 없어졌어.” 노 장인이 느끼는
안타까움이다. 그러나 김창희 대목장은 전통만을 고집하지는 않는다. “모든 게 발전하는데 문화재, 고건축은 발전이 하나도 없다! 없어! 그대로
하라고만 해. 그래서 싸움도 많이 했어.” 김창희 대목장은 해인사 대웅전, 부석사 무량수전, 해운대 해운정사 등 수많은 복원, 신축공사의
도편수를 맡았지만 창덕궁 복원공사를 가장 앞자리에 둔다. 김창희의 방식이 방해받지 않고 가장 잘 발휘됐기 때문이다. 김창희 대목장은 현재 자신의
경험을 책으로 엮어내는 작업을 하고 있다.
목수양성 과정의 교육생들은 출신이 제각각이다. 운전기사를 하다온 경우도 있고, 육군 소령
출신도 있다. 그러나 23명의 교육생 가운데 목수 출신은 한 명도 없다. 한옥학교에 온 목적도 모두 다르다. 훌륭한 한옥 목수가 되겠다고 온
사람도 있고, 한옥을 접목시켜 전원주택사업을 하려는 사람도 있다. 살집을 직접 짓기 위해 배우러 온 사람도 5명이나 있다. 기둥 다듬기 작업을
하는 틈에 끼어, 한번 해보겠노라고 청했다. 처음 해보는 대패질이 영 헛돌기만 한다. 처음부터 힘을 주지 말고 마지막에 힘을 주라고 조언하지만
힘 조절이 마음대로 될 리 없다. 한옥 짓기가 예삿일이 아니라는 느낌이 밀려들었다.
건축비 줄이려면 품앗이
활용해야
어려움은 그뿐이 아니다. 건축용어부터 낯설다. 종도리, 중도리, 퇴보, 소로, 주두, 퇴보, 종보. 아무리 들어도
무슨 말인지 알아들기 어렵다. 변숙현 교장은 고유의 건축언어를 다 잃어버린 탓이라고 말한다. 예순이 넘은 이들은 그걸 친숙하게 느낀단다. 한옥을
짓는 게 일상사였기 때문이다. 이웃집 지을 때 가서 도와주고, 내 집 지을 때 도움 받고. 변 교장은 건물을 정면에서 볼 때 가로로 보이는 게
도리고 세로로 보이는 게 보라고 간단하게 정리해 준다. 종도리, 중도리, 뜬도리는 건물에 가로로 놓인다. 대들도, 퇴보, 종보는 세로로
들어간다. 한옥은 가구(架構) 구조다. 기둥과 도리, 보를 짜서 만든 다음, 지붕을 얻고, 마지막으로 벽을 쌓는다.
한옥을 짓는
데는 비용이 만만찮게 들어간다. 일반 건물에 비해 한옥은 건축비가 배 이상 필요하다. 우선 목재값이 비싸고 구하기도 쉽지 않다. 한옥 건축이
활성화되면 이 문제는 어느 정도 해결될 수 있을 것이다. 다음은 인건비다. 좋은 목수가 많지 않기 때문이다. 또 한옥은 양옥건축에 비해 손이
많이 간다. 모든 것을 대부분 수작업으로 해야 한다. 변 교장은 인건비를 줄일 수 있는 방법을 알려준다. 품앗이를 하는 것이다. 한옥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을 모아 두레를 조직하면 된다. 이렇게 할 경우 평당 건축비를 200만~300만원으로 낮출 수 있다.
어쨌든 한옥의
꿈을 실현하려면 한옥 짓는 법부터 배워야 한다. 좋은 건축물을 찾아다니며 안목을 기르는 것도 필수적이다. 직접 자를 갖고 실측을 해보는 게 가장
빠른 방법이다. 그래야 건물이 짜여진 이치와, 비례관계, 치수와 치수의 어떤 만남이 맛이 나는지를 알 수 있다. 세상에 쉽게 되는 일은 없다.
아담한 한옥을 한 채 만들려면 그만큼 공을 들여야 한다. 남산 중턱 무릉도원에 둘러싸인 한옥학교를 내려오며 든 생각이다.
한옥학교(www.hanokschool.net, 054-373-8557)의 문은 언제나 열려 있다.
2004년 04월 23일![]()
글 청도=글 장승규 기자 (skjang@economy21.co.kr)
[Economy21 196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