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에서 유행하던 오광대놀이든 황해도 일대에서 유행하던 봉산탈춤이든 양반이 걷는
모양새를 보면 가관도 그런 가관이 없다. 손은 궁둥이 밑으로 갖다 대고 배는 앞으로 쑥 내밀고 가슴은 뒤로 확 젖혀져 있다. TV 코미디에
나오는 양반들의 걸음걸이는 이런 모양을 더 우스꽝스럽게 표현하고 있다. 그래서 우리는 이런 것이 양반걸음인 것으로 알고 있다. 공연히 으스대기나
하면서 꼴불견을 보이는 것으로 부정적인 인상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이는 잘못된 인식이다. 양반걸음을 희화화하면 그런 모양이 되겠지만, 원래 양반걸음은 그런 것이 아니다. 19세기 초부터
세도정치가 벌어지면서 양반들의 타락은 극에 달했고, 이에 대해 백성들은 민란으로 대항했다. 이 시기에 부패한 양반을 비판하는 한 형식이
탈춤이었고, 우리는 그때 형성된 탈춤을 보고 있는 것이다.
더구나 양반이 통치하던 나라는 망하고 일제에 강점당했으니, 우리들에게
양반은 못된 것의 대명사가 되다시피 했다. 그와 함께 조선의 것은 성리학부터 시작해서 모든 것이 부정돼야 할 대상이 되고
말았다.
그 대신 일본을 통해서 들어온 서양의 문물은 우리가 꼭 배우고 따라야 할 진리의 기준이 됐다. 우리 것은 모두 잘못된
것이고, 서양 것은 모두 좋은 것이었다. 조국 근대화란 다름 아닌 서양 따라가기였다. 서양만 따라가면 모든 게 잘될 것으로 생각했다. 이제
다행히도 이러한 잘못된 행태에 대한 반성이 이루어지면서 바로 우리 것이 소중한 것이라는 인식이 급속도로 퍼지고 있다.
그 동안
실형을 선고해서 징역에 가두어 놓았던 우리 문화가 사면 복권되고 있다. 복권돼야 할 소중한 우리 것 중에서도 양반걸음은 대표적인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복권시킬 뿐만 아니라 인류의 문화유산으로서 세계적으로 보급해야 할 우리의 무형문화재라고 할 수 있다.
세상에서 가장 좋은 보행법이 바로 양반걸음이기 때문이다. 걸을 때에도 항상 허리를 세우고 가슴을 펴고 고개를 들고
걸어야 하는데, 이렇게 하는 데 가장 좋은 자세가 양반걸음이다. 양반걸음은 다음과 같이 하면 된다. 우리 같이 한번 해 보도록
하자.
| |
| | | | ▲ 앞모습 | | 그냥 뒷짐을 지고
걷는 것이 양반걸음인데, 이때 서로 위아래로 포갠 양손을 놓는 지점은 요추와 흉추가 만나는 지점이나 약간 위 정도이면 된다.
허리에서 가장 안으로 들어간 지점의 바로 위라고 보면 된다. 양손에 힘을 주어 허리를 누르면 뻐근한 느낌을 받게 되는데, 이것은 허리가 뒤로
굽어 있다는 증거이다.
허리를 제대로 세우면 이런 뻐근한 느낌은 사라진다. 걸을 때에는 양손으로 허리를 지그시 눌러 주어야 좋다.
누르지 않으면 몸이 뒤로 굽을 수 있고, 너무 세게 누르면 근육이 굳고 상체가 앞으로 굽어 역효과가 날 수도 있다. 또 배를 내밀거나 가슴 위의
상체를 뒤로 젖혀서는 안 된다.
이렇게 하면 배가 나오고 상체가 뒤로 굽게 될 뿐만 아니라 허리로 힘을 받지 못하게 되므로
양반걸음을 하지 않음만 못하게 될 수도 있다.
이런 자세를 교정하는 방법은 엉덩이를 약간 뒤로 빼 보는 것이다. 그러면 허리에 힘이 빡빡 들어간다는 것을 느끼게 될 것이다. 허리에 힘이 들어간다는 느낌을 확실하게 받으면서 걸어야 허리가
제대로 세워진다.
| |
| | | | ▲ 뒷모습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