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료출처━━━━━━━━━━━━━━━
『 라즈니쉬의 명상건강 (From Medication To Meditation) 』
Written By Osho Rajneesh / C.W. Daniel Company Limitted, 1994
김성식·이경옥·황광우·옮김 / 정신세계사·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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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약·의학(medicine; medication)은 명상(meditation)이란 단어에서 유래되었다. 약·의학은 육체를 치료하고, 명상은 육체와 영혼 둘다 치료한다. ”
Ⅸ. The Food (음식)
[ From the Book; Page 234 ∼ 236, Page 255 ∼ 26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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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식은 독(毒)이 있는 음식을 먹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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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중략) … … 이젠 과학자들도 동물을 죽일 때 그 동물이 공포 때문에 온갖 독소가 분비된다는 사실에 동의한다. 죽음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대가 동물을 죽일 때, 동물의 내부에서는 공포로 인해 엄청난 떨림이 일어난다. 동물은 살아남기를 원한다. 그래서 온갖 종류의 독소를 뿜어내는 것이다. 그대 역시 공포를 느낄 때는 몸 안에 독소가 분비된다. 이 독소들은 그대가 싸우거나 도주하는데 도움이 된다. 때때로 화가 나면 그대는 상상하 지 못했던 일을 할 수 있게 된다.
평상시 흔들지도 못했던 바위를 옮겨 놓을 수가 있다. 하지만 거기에는 분노가 있고 독소가 퍼지고 있다. 공포로 인해 사람들은 올림픽 육상 선수도 앞지를 수 있을 만큼 빨리 뛸 수도 있다. 누군가가 그대를 죽이기 위해 칼을 들고 뒤쫓아오고 있다고 생각해 보라. 그대는 그대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 할 것이다. 그대의 온몸은 최대한으로 작동될 것이다. 그대가 동물을 죽일 때, 이와 같은 분노와 불안과 공포가 일어난다.
동물의 눈앞에 죽음이 닥쳐오고 있다. 동물의 모든 분비기관에서 수많은
종류의 독(毒)이 분비된다. 그래서 현대에는 동물을 죽이기 전에 무의식적으로 만들고 마취시키는 방법을 생각해 냈다. 현대의 도살자들은 마취법을 쓴다. 하지만 이것은 극히 표면적인 차이만 있을 뿐, 별 차이가 없다. 마취가 미치지 못하는 가장 깊은 곳에서는 죽음을 대면해야 하기 때문이다. 동물들 은 그것을 의식하지 못할지도 모르고,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자각하지 못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일은 마치 꿈속에서 처럼 일어나고 있다.
동물은 악몽을 꾸고 있다. 그래서 고기를 먹는 것은 독(毒)이 있는 음식을 먹는 것이다. … … (중략) … … 몸은 마음처럼 복잡하지 않다. 몸은 단순한 현상이다. 몸은 쉽게 정화될 수 있다. 만일 그대가 육식을 해 왔다면, 그것은 그만 둘 수 있다. 그것은 그렇게 큰 일이 아니다. 그래서 고기 먹는 것을 중지한다 면 석달 안에 몸은 채식을 하지 않는 데서 비롯된 모든 독소로부터 깨끗이 벗어버릴 것이다. 그것은 매우 간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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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동물에겐 각자에게 알맞는 음식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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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중략) … … 어떤 동물도 인간처럼 먹지 않는다. 모든 동물에게는 자신이 선택한 음식이 있다. 들소를 정원에 데려다 놓으면 특정한 풀만 먹는다. 아무 것이나 먹어 대지 않는다. 동물들의 식성은 매우 까다롭다. 자신들의 음식에 대해서는 확실한 감각을 지니고 있다.
그러나 인간은 완전히 잃어버려서 자신의 음식에 대해서 확실한 감각이
없다. 그는 계속해서 아무 거나 먹고 있다. 사실 인간이 먹지 못하는 것
은 찾아볼 수 없다. 지구촌의 어떤 곳에서는 개미를 먹고, 어떤 곳에서는 뱀을 먹으며, 또 어떤 곳에서는 개(dog)를 먹는다. 인간은 뭐든지 먹어왔다. 인간은 완전히 미쳤다. 인간은 무엇이 자기 몸에 맞고 무엇이 안 맞는 지 전혀 모른다.
인간의 정신은 완전히 뒤죽박죽으로 되어 있다. 인간은 당연히 채식가여야 한다. 몸 전체가 채식을 위한 구조로 만들어졌기 때문 이다. 인간의 전반적인 몸 구조가 육식을 해서는 안된다는 것을 보여 준다 는 사실을, 과학자들도 시인했다. 인간은 원숭이에서 나왔다. 원숭이는 채식가이다. 철저한 채식가이다. 만일 다윈의 진화론이 사실이라면 인간은
채식가여야만 한다. 어떤 종의 동물이 채식가이고 비채식가인지 판단하는 방식은 이렇다.
그것은 장(腸)의 길이에 달려 있다. 채식을 하지 않는 동물은 장이 매우 짧다. 호랑이나 사자의 장은 아주 짧은데, 고기는 이미 소화된 음식이기 때문이다. 고기를 소화하는 데 긴 장이 필요하지 않다. 이것은 인간이 채식가임을 뜻한다. 긴 장이 필요한 것은 밖으로 쏟아내야 할 배설물이 많기 때문이다. 육식가가 아닌 동물이 계속해서 고기를 먹으면 몸에 부담이 생긴다.
뿐만 아니라 인간의 치아의 구조가 그렇다. 인간의 이빨 모양을 보고, 누가 육식이 가능하다고 말할 수 있는가? 인간의 이빨은 자르고 찧을수 있는 모양일 뿐, 호랑이나 사자처럼 뾰족하고 날카롭지 않다. 곡식과 야채는 그런 이빨로 얼마든지 먹을 수 있다. 심지어 불(火)에 익히지 않고 날 것으로도 먹을 수 있다. 그러나 고기는 그런 이빨로 먹을 수 없다. 그런 이빨로 고기를 먹으려면 필히 불에 충분히 익혀 부드럽게 만든 화식(火食)이라야 한다.
만일 인간이 호랑이나 사자처럼 육식동물이라면 당연히 그의 이빨 모양도 날카롭고 뾰족해야 한다. 이처럼 인간의 몸에 적합하지 않는 음식이 들어올 때, 몸은 무거운 부담을 느끼며 의식적으로는 매우 탁한 상태가 된다.
동양의 모든 위대한 명상가들, 붓다나 마하비라도 이 사실을 강조했는데, 그것은 비폭력에 대한 관념과는 또 다른 차원의 문제이다. 그것은 두번째 문제다. 그대가 진정 명상 속으로 깊이 들어가고자 한다면 몸이 가볍고 자연스럽게 흘러가야 하기 때문이다. 비채식가의 몸은 너무나 많은 짐을 지고 있다. 고기를 먹을 때, 어떤 상황이 벌어지는지 한번 지켜보라.
동물을 죽일 때 죽임을 당하는 동물들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는가? 누구도 죽임을 당하고 싶지 않은 것은 당연하다. 생명은 스스로 오래 살고 싶어한다. 동물은 자진해서 죽으려 하지 않는다. 만일 누군가가 그대를 죽인다면 그대는 기꺼이 죽으려 하지 않을 것이다. 만일 사자가 덤벼들어 그대를 죽인다면 그대의 마음에 어떤 일이 벌어질 것인가? 똑같은 일이 사자를 죽일 때도 일어난다. 엄청난 고통, 공포, 죽음, 걱정,불안, 분노, 폭력, 슬픔, … ….
이 모든 것이 동물에게 일어난다. 몸 구석구석에 폭력과 걱정과 격통이 스며든다. 몸 전체가 독소로 가득찬다. 동물은 자신의 뜻에 반해 억지로 죽고 있기 때문에 온몸의 분비선에서 독소가 흘러나온다. 그리고 그대는 그 고기를 먹는다. 그 고기는 동물이 분비한 온갖 독소를 옮긴다. 모든 에너지가 독소인 데, 그 독소가 그대의 몸으로 운반된다. 그대가 먹는 고기는 동물의 몸에 속해 있었다. 그 몸은 특정한 목적을 갖고 있다. 동물의 몸에는 특정한 형태의 의식이 존재한다. 그러므로 동물의 의식보다 높은 수준에 있는 그대가 동물의 시체를 먹으면, 그대의 몸은 아주 낮은 수준으로, 동물의 수준으로 떨어진다. 그러면 그대 의식과 몸 사이에 거리가 생겨나고, 긴장과 불안이 따라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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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스러운(Natural) 음식이란, 그대의 혀(tongue)가 필요로 하는 음식
이 아니라 그대의 몸(body)이 필요로 하는 음식을 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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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중략) … … 인간은 자연스러운 것을, 그대에게 자연스러운 것을
먹어야 한다. 과일, 콩, 야채는 먹을 수 있을 만큼 먹으라. 이런 음식들의 아름다움은 필요 상으로 먹을 수 없다는 것이다. 자연스러운 모든 것은 항상 만족을 준다. 그대를 배부르게 하고 충분히 만족시켜 주기 때문이다.
그대는 충만감을 느낀다. 그러나 비자연적인 것은 결코 만족감을 주지 못한다. 아이스크림을 계속 먹어보라. 그대는 하루 종일 아이스크림을 먹어도 만족하지 못 할 것이다. 실제로 먹으면 먹을수록 더 먹고 싶을 것이다.
그것은 음식이 아니다. 그대의 마음은 속임수에 빠졌다. 현재 그대는 몸의 필요성에 따라 먹는 게 아니다. 그대는 단지 입맛때문에 먹고 있는 것이다. 혀(tongue)가 지배자가 된 것이다. ━이것이 수많은 사람들이 채식을 하는 데 어려워하는 근본적인 이유이다.━ 혀가 지배자가 되어서는 안된다. 혀는 위(stomach)에 대해서 아무 것도 모른다. 혀는 몸에 대해선 아무 것 도 모른다. 혀는 음식의 맛을 느끼는 것이다. 당연히 혀는 어떤 음식이 몸 을 위해 좋은지, 어떤 음식이 안 좋은지 가려 내야 한다. 그게 혀가 할 일 이다. 혀는 문 앞의 경비원일 뿐이다. 주인이 아니다. 만일 경비원이 주인 이 된다면 모든 게 엉망진창이 될 것이다.
이제 광고주들은 혀가 속임수에 빠지기 쉽다는 것을, 코가 속임수에 빠지기 쉽다는 것을 안다. 그것들은 주인이 아니다. 그대는 잘 모를 것이다. 세계적으로 음식에 대한 연구가 계속 되어 왔는데, 그 연구에 따르면 코를 꽉 막고 눈을 감는다면 양파를 먹어도 자신이 무엇을 먹는지 모른다고 한다. 맛의 절반은 냄새로 부터 오므로 코에 의해 결정되고 나머지 절반은 혀에 의해 결정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두가지는 지배자가 되었다. 이제 사람들은 아이스크림이 영양가 가 있으냐 없느냐는 문제가 아니다. 아이스크림은 맛도 있고 화학적 작용 으로 입맛을 만족시켜 줄 수도 있다. 그러나 몸이 필요로 하는 것은 아니다. 인간의 머리는 뒤죽박죽이다. 들소보다 더 혼란스럽다. 들소에게는 아이스 크림을 먹으라고 설득할 수 없다. 한번 시도해 보라! 자연스런 음식 … ….
내가 '자연스럽다(Natural)'라고 할 때는 그대의 몸이 필요로 하는 것을 의미 한다. 자연스러운(Natural) 음식이란, 그대의 혀가 필요로 하는 음식이 아니 라 그대의 몸이 필요로 하는 음식을 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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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과 폭력성의 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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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중략) … … 호랑이가 필요로 하는 것은 다르다. 호랑이는 아주
공격적이어야만 한다. 만일 그대가 호랑이가 먹는 고기를 먹는다면, 그대는 공격적으로 될 텐데, 어디에다 그대의 공격성을 표현하겠는가? 그대는 정글이 아니라 인간 사회에 살고 있다. 그러면 그대는 공격성을
억눌러야만 할 것이다.
그러면 악순환이 시작된다. 공격성을 억누를 때 무슨 일이 일어나는가? 그대가 분노하고 공격적일 때 모종의 독은 에너지가 발생한다. 그 독소는 그대가 정말로 공격적이고 누군가를 죽일 수 있는 상황을 만들어 준다. 그 에너지는 그대의 손(hands)으로 이동한다.
에너지는 그대의 이(teeth)로 이동한다. 이 두 지점이 동물들이 공격적으로 되는 곳이다. 인간은 동물의 왕국의 일부이다. 그대가 분노하게 되면
에너지가 발산되는데 그것은 손(hands)과 이(teeth)와 턱(chin)으로 온
다. 하지만 그대는 인간사회에 살고 있으므로 화를 내는 일이 항상 적절
하지는 않다. 그대는 문명세계에 살고 있으므로 동물처럼 행동할 수 없다.
만일 동물처럼 행동한다면 그것 때문에 그대는 너무 많은 대가를 치루어
야 한다. 그대는 그 정도 대가를 치룰 만큼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 그러면 어떻게 하겠는가? 그대는 분노를 손(hands)에 억누르고 이(teeth)에 억누른다. 계속해서 거짓으로 웃음을 지은채 이(teeth)로는 분노를 축적
하고 있다. 나는 자연스런 턱(chin)을 가진 사람을 드물게 본다.
사람들의 턱(chin)은 자연스럽지가 않다. 분노가 너무 많이 쌓여 굳어 있다. 턱(chin) 을 눌러 주면 분노가 풀릴 수가 있다. 손들(hands)이 추해지고 사람들이 손(hands)에 너무나 많은 분노를 억누르고 있기에 손(hands)은 우아함과 유연성을 잃었다. 마사지를 깊이 해본 사람들은 사람의 손(hands)을 깊이 만질 때, 손(hands)을 마사지할 때 그 사람이 분노한다는 것을 알게 된다. 만일 턱(chin)을 누르면 그 사람은 다시 화낼 것이다.
그들에게는 분노가 쌓여 있다. 그것들은 몸 안에 불순물들이다. 그것들은 발산되어야만 한다. 그것들을 발산하지 못하면 몸은 계속 무거울 것이다. 요가(Yoga) 수련은 몸 안에 축적된 모든 독소를 발산해 준다. 요가 운동이 그것들을 풀어 준다.
그래서 요가의 몸은 특유의 유연성을 갖고 있다. 요가 수련은 다른 운동과는 전혀 다르다. 요가 운동은 몸을 강하게 만들지 않는다. 반대로 몸을 더욱 유연하게 한다. 몸이 유연하면 그대는 전혀 다른 관점에서 강해진다. 그대는 더 젊어진다.
요가는 그대의 몸이 더욱 부드럽고 더욱 자연스럽게 흘러가도 록 만든다. 몸 안에 일체의 장애가 없다. 몸 전체가 그 자체의 깊은 리듬 속에 유기적인 개채로 존재한다. 그것은 시장의 소음과 같지 않다. 그것은 오케스트라와 같다. 몸 안에 장애가 없고 깊은 리듬이 있을 때 몸은 순수하다. 요가 수련은 더할 나위없이 유익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