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의 고대역사
○조선 - 단군 47대(2,096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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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대 |
재위년 |
이름 |
서 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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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대 단군 |
93 |
왕 검 |
B.C.233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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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대 단군 |
58 |
부 루 |
224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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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대 단군 |
45 |
가 륵 |
2182 |
|
4대 단군 |
38 |
오 사 구 |
213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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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대 단군 |
16 |
구 을 |
2099 |
|
6대 단군 |
36 |
달 문 |
2083 |
|
7대 단군 |
54 |
한 율 |
2047 |
|
8대 단군 |
8 |
우 서 한 |
1993 |
|
9대 단군 |
35 |
아 술 |
1985 |
|
10대 단군 |
59 |
노 을 |
1950 |
|
11대 단군 |
57 |
도 해 |
1891 |
|
12대 단군 |
52 |
아 한 |
1834 |
|
13대 단군 |
61 |
흘 달 |
1782 |
|
14대 단군 |
60 |
고 불 |
1721 |
|
15대 단군 |
51 |
대 음 |
1661 |
|
16대 단군 |
58 |
위 나 |
1610 |
|
17대 단군 |
68 |
여 울 |
1552 |
|
18대 단군 |
49 |
동 엄 |
1484 |
|
19대 단군 |
55 |
구 모 소 |
1435 |
|
20대 단군 |
43 |
고 흘 |
1380 |
|
21대 단군 |
52 |
소 태 |
1337 |
|
22대 단군 |
48 |
색 불 루 |
1285 |
|
23대 단군 |
76 |
아 흘 |
1237 |
|
24대 단군 |
11 |
연 나 |
1161 |
|
25대 단군 |
88 |
솔 나 |
1150 |
|
26대 단군 |
65 |
추 로 |
1062 |
|
27대 단군 |
26 |
두 밀 |
997 |
|
28대 단군 |
28 |
해 모 |
971 |
|
29대 단군 |
34 |
마 휴 |
943 |
|
30대 단군 |
35 |
내 휴 |
909 |
|
31대 단군 |
25 |
등 을 |
874 |
|
32대 단군 |
30 |
추 밀 |
849 |
|
33대 단군 |
24 |
감 물 |
819 |
|
34대 단군 |
23 |
오 루 문 |
795 |
|
35대 단군 |
68 |
사 벌 |
772 |
|
36대 단군 |
58 |
매 륵 |
704 |
|
37대 단군 |
56 |
마 물 |
646 |
|
38대 단군 |
45 |
다 물 |
590 |
|
39대 단군 |
36 |
두 흘 |
545 |
|
40대 단군 |
18 |
달 음 |
509 |
|
41대 단군 |
20 |
음 차 |
491 |
|
42대 단군 |
10 |
을 우 지 |
471 |
|
43대 단군 |
36 |
물 리 |
461 |
|
44대 단군 |
29 |
구 물 |
425 |
|
45대 단군 |
55 |
여 루 |
396 |
|
46대 단군 |
46 |
보 을 |
341 |
|
47대 단군 |
47 |
고 열 가 |
29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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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 47대 단군 - 2,096년 | |||
3. 조선시대
조선(고조선)은 한국이 천산(한탱그리산),배달국이 태백산을 중요시한 것처럼 백두산을 중요시했습니다. 그리고 단군삼경檀君三京을 나라를 운영하는 축으로 삼았습니다. 단군삼경은 중심에 아사달 남쪽에 평양 서쪽에 안시성입니다. 아사달은 지금의 하얼빈으로 추정되지만 안시성과 평양의 위치는 분명치 않습니다. 고조선은 왕검할아버지께서 창업한 이래 47대 고열가 단군을 끝으로 2096년간 존속한 나라입니다. 여기에 북부여의 고무서단군까지는 다시 5대가 추가됩니다. 고조선은 배달국이래 전한 천부경,삼일신고,366사(참전계경)을 계승하고 왕검할아버지께서는 이 세가지 경전의 진리를 쉽고 간단하게 압축한 경전인 단군팔조교를 고조선 창업과 함께 반포하였습니다. 그리고 2세 부루단군께서는 어아가,3세 가륵단군께서는 중일경, 11세 도해단군께서는 천지인경,33세 감물단군께서는 영세위법등의 여러 현묘한 경전을 오늘날까지 전하고있습니다. 특히 단군조선은 당시 세계를 휩쓸었던 대홍수(9년홍수)를 토목공학기술을 사용하여 가장 성공적으로 극복한 선진과학국입니다. 훗날 고조선의 2세단군이 되시는 부루태자께서 한족들이 대대로 이상적인 태평성대로노래하는 요순시대에 그들이 9년홍수를 극복할 수 있도록 기술적인 지도를 했음이 여러 역사서에 등장하고 있습니다. 당시로서는 국가의 존망을 가늠하는 중요한 기술이었던 이른바 오행치수로 알려진치산치수의 과학적 기술은 실로 단군조선이 원조인 것입니다. 천부경,삼일신고,366사와 단군팔조교등의 많은 경전에서 알 수 있는 재세이화, 홍익인간의 고조선의 정신문명과 오행치수로 알 수 있는 치산치수의 선진과학기술은무려 2000년이 넘는 왕국을 존속시키는 힘이었다고 보여집니다. 그리고 고조선은 훗날 고구려,백제,신라등의 우리 고대국가는 물론이고 헝가리,요,몽고,터어키,금,청등의 여러나라에도 그 직접 또는 간접적으로 원형을 제공한 중요한 나라입니다.
o조선의 이름
최남선은 조선을 '처(음)샌'이라하여 최초의 문명처라고 해석하였다.
이병도는 조선이라는 국호를 '아침의 땅'이라는 말인 '아사달'이 한자로 번역된 것이라 하였다.
o고조선의 멸망과 한사군
고조선이라함은 단군조선과 그후에 은나라가 망할 때 기자가 조선에 망명하여 세웠다고 하는 기자조선 ,그리고 한나라 초기 연나라의 위만이 전왕조의 마지막 왕 준을 내쫓고 건국한 위만조선등을 아울러 가르키는 것으로 생각해왔다.( 기자조선과 위만조선의 실체와 장소에는 여러 가지 설이 나누어있다) 중국을 통일한 한나라는 무제때 동방점령을 목적으로 요동지방 진출을 시작하였다.이 때 동북아시아의 패권을 잡고 있었던 위씨조선과 충돌이 불가피했는데 서기전 108년에 위씨조선을 굴복시키고 점령지를 통치하기 위하여 4개의 지방행정구역으로 나눈 것이 한사군으로 낙랑,임둔,진번,현도로 알려져있다. 한사군이라는 명칭을 역사술어로 사용한 것은 일제의 관학사학가들이었다. 이들은 조선을 식민지로 영구화하기위해 조선의 역사를 타율성을 강조하였는데 ,그 근거가 되는 역사사실의 하나가 한사군이었다.이들의 논리에 의하면 조선의 역사는 자율적인 역사가 아니라 외부의 칩입과 이에 따른 영향으로 진행되는 타율적인 역사이며 ,따라서 선진문물을 보유한 국가의 식민지가 되는 것은 필연적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한나라의 식민지로 건설된 한사군의 존재는 타율성을 입증하는 좋은 근거가 되었다. 광복이후 일제에 의하여 왜곡, 날조된 한국사의 실체를 찾기위한 연구가 활발해지면서 한사군의 문제도 재조명되었다. 그 결과 한사군은 낙랑군을 제외하면 그 존속기간이 불과 25년 정도에 이르는 짧은 기간 존속하였으며 ,가장 늦게 멸망한 낙랑군도 그 기능이 후기에는 대동강유역을 중심으로하는 좁은 지역에서 이름을 유지하고 있었을 뿐이라는 사실을 밝혀냈다.이와같이 한사군은 일제에 의하여 그 실체보다 확대해석되어 지금까지도 한국고대사의 인식을 그르치게 하는데 영향을 끼쳐왔다.
자료출처:
http://www.tangun.com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23권 396쪽
겨례역사 6000년 안호상저 기린원 1992년 298쪽
한단고기 태백일사 삼한관경본기 번한세가 하 정신세계사 222쪽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