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사과나무입니다.
지난 주말에 빛고을님들과 함께 금강소풍에 다녀왔습니다.
얼마전부터 제 머리속에 "받아들임"이라는 화두가 떠올라 매일 매일 그 화두를 가지고 씨름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금강소풍에 초대를 받게 되었고 게다가 감사하게도 귀한 시간까지 내주셔서 '채식과 깨달음의 길'에 관해서 강의를 하는 좋은 기회까지 얻게 되었습니다.
금강에 있으면서도 마음속에는 계속 "받아들임"에 관한 생각으로 이리저리 머리를 굴리고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토요일날 저녁 모닥불을 피워 놓고 둘러 앉아 이야기를 나누는 중에 제 마음속에 생각이 하나 떠올랐습니다.
그것은 "받아들임"이란 "받아서 들이는 것"이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렇습니다. 받아들임이란 바로 받아서 들여 놓는 것입니다.
많은 영성서적이나 가르침 또는 메세지에서 '받아들임'과 '허용' 또는 '수용'에 대해서 얘기합니다.
그러나 지금까지 그말의 참뜻을 잘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받아들임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마음열기에 대해서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어떠한 이유에서든지 지금과 다르게 변하고자 한다면 젤 먼저 마음의 문을 열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마음이란 내 안의 세상과 내 밖의 세상을 연결시켜주는 유일한 통로이기 때문입니다.
즉 마음이란 세상을 통해난 창 또는 문이며 또한 때로는 벽이 될 수도 있습니다.
우리가 마음을 열지 않으면 우리안의 에너지가 밖으로 나갈수도 또 우리 주위의 에너지가 우리안으로 들어 올수도 없습니다.
지금까지 저는 마음만 열면 다 된다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다시 말씀드리면 마음열기가 '받아들임"이고 '허용'이라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하지만 이번 금강에서의 체험으로 마음열기란 받아들임을 위한 준비임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마음을 연다는 것은 문을 연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세상의 그 어떤 것들도 스스로 그 문을 넘어 올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마음의 문 너머는 순수한 개인의 영역이며 그것을 넘는 다는것은 신이 우리에게 부여한 자유의지를 침해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때문에 설령 우리가 마음의 문을 열어도 우리가 스스로 그것을 '받아 들일' 때까지 그것은 우리안으로 들어 올 수 없습니다.
그렇습니다. 문 앞에 와 있는 그것을 '받아'서 우리의 안으로 '들여'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받아들임'의 진정한 의미입니다.
받아들임은 깨달음으로 가는 필수조건입니다.
우리가 육체를 가지고서 이 물질세상에 온 이유는 우리가 개념으로 알고 있던 것들을 체험으로 경험하기 위해서 입니다.
더 요약해서 얘기하자면 우리가 신이라는 것을 체험하기 위해서 입니다.
그럼 우리가 체험하고자 하는 그 신의 속성이란 무엇일까요?
신의 속성은 사랑이고 사랑의 속성은 받아들임이고 하나됨입니다.
여기서의 받아들임이란 어떠한 조건도 없는 받아 들임입니다.
이것이야 말로 온전한 사랑의 모습이며 완전한 신의 모습입니다.
신은 모든것을 사랑하며 모든것을 허용합니다.
신은 우리의 모든것을 조건없이 받아들이며 또한 우리에게 무한한 사랑을 퍼부어줍니다.
이것을 바꿔서 얘기해보면
우리가 아무런 조건없이 완전히, 온전히 받아들일때 우리는 신이 되는 체험을 하게 된다는 말입니다.
우리가 이렇게 완전히 열리고 수용하게 될때 우리의 체험은 우리의 순수의식(우리내면의 신)으로 승화됩니다.
이 체험의 다른 이름은 바로 '깨달음'입니다.
우리가 이렇게 신이 되는 체험을 하게 되면 우리가 이 세상에 온 목적은 완성되고 우리는 더 큰 영적인 성장을 위하여 나아 가게 됩니다.
이런 깨달음의 상태에 도달하기 위해서 반드시 몇 생애를 살아야 한다거나 반드시 체험해야 하는 삶의 과정 같은것은 없습니다.
중요한것은 '지금 여기'를 얼마나 온전히 받아 들이고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우리 마음의 문을 열고 우리가 '지금 여기'서 체험하는 모든 것들을 100% 완전하게 이해하고 받아들이게 되면 우리는 깨닫게 됩니다.
때문에 우리가 마음만 열고 온전히 받아들이기만 한다면 언제 어디서든지 깨달을 수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깨달음이라는 체험의 메카니즘입니다.
하지만 우리의 일상은 어떠합니까?
우리는 우리에게 일어나는 여러가지 체험을 이리 저리 재면서 '판단'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내리는 이런 판단은 우리가 갖고 있는 불완전한 지식과 경험, 또는 기억에 의지합니다.
때문에 우리가 내리는 판단은 불완전합니다.
우리가 이렇게 우리의 체험들에 내리는 판단들 때문에 우리의 체험들은 완전의식으로 승화되지 못한채
'불완전'과 '미완성'이라는 꼬리표를 매단채 우리 내면의 저장창고인 '영혼'에 저장됩니다.
이렇게 영혼에 저장된 체험들은 '미완결'되고 '미완성'되어 언젠가 온전히 체험되어 지길(받아들여지질) 기다리게 됩니다.
만약 우리가 이번 생에서 우리 삶의 목적(깨달음-신과의 합일)을 이루지 못하게 되면
우리는 우리가 영혼에 저장해 놓은 '미완성'의 체험들을 가지고 이 땅으로 다시 돌아와 다시 한번 우리의 꿈을 이루기 위해서 도전하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환생의 목적이자 이유입니다.
(환생을 생각할 때 업이나 카르마 또는 죄에 대해서 많은 얘기들이 있습니다.
흔히 업이 마치 어떤 심판이나 인과응보의 개념으로 생각하지만
업이란 오직 자기 자신에 의해서 자기 자신의 영혼에 덧붙여진 무겁고 어두운 기억입니다.
또한 그 무거운 기억을 떼어낼 수 있는 것도 바로 자기 자신 뿐입니다.)
'판단'이란 이렇게 우리가 깨달음의 상태로 들어가는 것을 가로 막는 장벽입니다.
그럼 과연 어떻게 하면 '판단'을 멈추고 온전히 '받아들임'의 상태로 옮겨 갈 수 있을까요?
그것은 우리가 삶속에서 겪게 되는 체험의 목적을 이해하면 됩니다.
삶속에서 일어나는 여러가지 체험속에는 오직 하나의 목적만이 존재합니다.
그것은 우리가 신임을 체험할 수 있도록 완전한 '받아들임'을 위한 수단이자 도구일 뿐이라는 것입니다.
즉 체험 자체가 갖고 있는 개별적인 의미는 전혀 중요하지 않다는 말입니다.
우리가 체험을 할때 오직 하나의 질문만이 있습니다.
'나는 지금 이 체험을 얼마나 온전히 받아들이고 있는가?'
좋은 체험이던지 아니면 나쁜 체험이던지 모두 당신을 위한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당신이 신임을 체험하기 위해서 스스로 당신의 인생에 창조한 창조물이기 때문입니다.
즉 당신이 지금 이 순간에 느끼고 있는 그 체험은 신이 당신을 위해서 보내준 선물이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체험의 참 의미를 이해하게 되면 우리는 판단을 멈추고 모든 체험들에게 감사할 수 있게 됩니다.
그리고 이렇게 매일 매일 자신의 삶속에서 일어나는 모든 체험들을 축복하고 감사하게 될때
우리는 더욱 더 열리게 되며 더 많이 받아들일 수 있게 됩니다.
그러다 어느 순간 우리는 우리가 체험하는 '지금 이순간'을 완전히 받아들이기 되고
그 순간 우리는 신과의 합일, 하나됨, 깨달음의 상태로 옮아 가게 됩니다.
지금까지 금강소풍에서 떠오른 '받아들임'에 관한 새로운 생각들을 두서 없이 말씀 드렸습니다....^^
이 이야기가 맞는 얘긴지 아님 그냥 저 혼자만의 생각인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제 내면속에서 떠오른 이 생각들은 저에게 밝고 명확한 느낌을 주었습니다.
때문에 저는 이 생각들이 내 내면의 진실이라고 생각하고 함께 나누고자 올려봅니다.
신나이가족 여러분들도 매순간 '지금 여기'를 온전히 받아들이기 위해서 노력하는 하루 하루 되시길 기도합니다.
사랑합니다....*^^*
사과나무 올림
(제가 신과 나눈 이야기 한국동호회 http://cwgkorea.net 에 올린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