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려움과 불안 내려놓기
안녕하세요? 사과나무입니다...*^^*
오늘 한 도반님과 쪽지로 대화를 나누다가
쪽지로 하기에는 너무 얘기가 길어질거 같아
차라리 게시판에 글을 남겨
좀 더 많은 분들이 읽어 보시고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었음 하는 마음에
'두려움과 불안 내려 놓기'에 대해서 한번 이야기 해 볼까 합니다...^^
여러가지로 부족한 글이 되겠지만 그냥 편한 마음으로 읽어 봐주시길.....^^
-두려움없음
우리는 많은 두려움과 불안을 느끼면서 삶을 살아 갑니다.
이런 글을 쓰고 있는 저 자신도 때때로 많은 두려움과 불안에 떨기도 하고 잠을 못 이루기도 하지요...
하지만 제가 신나이를 비록한 여러 영적메세지를 통해 깨닫게 된 진실은
"우리의 삶에 두려워해야 할 것은 아무것도 없다!"입니다.
많은 경우에 우린 이 사실을 잊고 사는데 오늘은 이 사실을 확실히 기억해 내고 싶어 이 글을 씁니다...^^
-궁극의 결과
어째서 우리의 삶에 두려워해야 할 것이 없는가 하면
모든 두려움은 "환상"이기 때문입니다.
왜 두려움이 환상인가 하면 모든 두려움은 우리가 "실패할 수 있다"라는 생각 때문에 생기는데
이 생각 또한 환상이기 때문입니다....^^
궁극의 결과는 이미 보장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잘못 가거나", " 잘못되는 일" 따위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여정은 신의 여정이자 신의 계획이기 때문입니다.
신은 완전하고 완벽한 존재이기 때문에 실패할 수 없습니다.
실패하는 신이란 신의 자격이 없는 신이고 그런 신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실패할 수 있는 신"은 오직 인간이 만들어낸 종교속에만 존재하는 신입니다.
-삶이란 과정
하지만 궁극의 결과는 이미 보장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인간적인 관점에서 본다면 우리는 실패를 체험할 수도 있습니다.
우리가 단기적인 결과에 집착한다면 말이지요.
하지만 삶이란 과정이고 실패는 성공으로 가는 길목입니다.
우리의 삶에 일어나는 모든 일은 완벽의 일환이자 성공의 과정입니다.
왜냐하면 궁극의 결과는 이미 보장되어 있으니까요....
그렇지만 우리는 많은 경우에 그 궁극의 결과(영혼의 참된의도)에 대해서 까맣게 잊고 맙니다.
그리고 단순히 우리 눈앞에 펼쳐져 있는 단편적인 모습을 갖고서 우리의 체험전체를 판단해 버립니다.
하지만 우리의 참된 존재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위대하며 지혜롭습니다.
-불편한 진실
우리는 우리의 삶에 일어나는 모든 체험들(특히 사건이나 사고, 재난재해 같이 불행한 일들)에 대해서
자신에게 그런일이 일어난 것은 자기 자신이 아닌 누군가 또는 어떤것의 '탓'이라고 얘기합니다.
하지만 진실은 우리의 삶에서 일어나는 모든 체험은 다른 누구의 탓도 아닌 스스로의 책임입니다.
왜냐하면 '그 체험'을 자신의 삶속으로 불러들이고 창조한 주체가 바로 자기 자신이기 때문입니다.
즉 모든 체험은 그 영혼의 바램이자 선택이기 때문입니다.
많은 경우에 이것은 우리를 불편하게 합니다.
"음주운전한 사람때문에 내가 당한 교통사고가 내 탓이라고? 그게 내 영혼의 선택이자 바램이라고?"
"사기꾼한테 집값을 날린것이 내가 창조한 일이라고?"
"내가 말기암에 걸린게 내가 스스로 선택한 일이란 말이야?"
-삶의 주체
네~ 물론 받아 들이기가 매우 어렵긴 하지만 이것은 분명한 진실입니다.
우리의 인생에서 그 어떤 누구도 다른 사람의 삶에 멋대로 끼어 들어 그 삶을 망쳐 놓을 수 있는 힘이 없기 때문입니다.
왜냐하면 그런 힘은 우주의 질서를 무너뜨리기 때문에 처음부터 신으로 부터 허락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은 이 진실을 거꾸로 받아 들여 누군가 자신의 삶을 망쳐 놓았다고 생각합니다.
누군가.... 어떤것이.... 또는 신이나.... 운명.... 아님 우연이나 사고따위가 자신의 인생을 뒤 바꿔 놓을 수 있다고 믿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완전히 거꾸로 된 진실이며 이런 거꾸로 된 믿음은 거꾸로 된 현실을 창조하게 됩니다.
즉 자신이 하고 싶어서 일을 잔뜩 벌려 놓은뒤에 "이게 왜 이래? 누가 그랬어?"라고 말하는 무책임한 사람같은
행동을 반복하는 것이지요...^^
-체험의 의미
우리가 이렇게 삶에 대한 거꾸로 된 믿음을 갖고 지속적으로 우리의 체험을 판단할 때
우리의 삶은 점점 더 꼬여가고 인생은 불행해집니다.
우리가 이렇게 건망증 환자와 같은 행동을 반복하는 이유는 바로 '영혼의 참된 바램'에 대해 모르기 때문입니다.
모든 체험은 그 영혼의 바램과 선택에 의해서 창조됩니다.
하지만 모든 사람이 자기 영혼의 참된 바램을 알고 이해하면서 살아가는 것은 아닙니다.
사실 체험속에 숨겨진 영혼의 참된 의도를 찾는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하지만 우리가 "궁극의 결과는 보장되어 있고 모든 체험은 그 영혼의 선택이다"라는 진실에 대해서 굳건한 믿음과 이해를 갖는다면.....
우리가 우리의 체험들에 대해 내리는 판단은 바뀌거나 또는 유보되어 질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근런 믿음을 갖고 우리가 스스로 '최악'이라고 부를 만한 체험들에 조차도
"..... 그래.... 비록 내가 지금 내영혼의 의도를 이해하진 못한다해도 ....이 체험도 다 내가 선택하고 내가 창조한 일이다. 왜냐하면 나에게 지금 이 체험이 필요했기 때문이니까...."라고 당당히 받아 들이게 될때....
우리는 진정으로 우리 삶의 주인이자 주인공이 되어 스스로의 삶을 통제하고 지배할 힘을 얻게 됩니다.
-마음의 힘
이렇게 볼때 결국 우리의 삶을 지배하는 것은 우리의 마음입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마음이 우리의 체험을 결정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우리의 '마음'은 우리가 '마음먹기'에 달려 있습니다.
우리가 이렇게 완전한 삶을 위해서 올바로 마음을 쓰기 위해서는'받아들임'에 대해서 바르게 이해해야 합니다.
그리고 받아들임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마음열기에 대해서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어떠한 이유에서든지 지금과 다르게 변하고자 한다면 젤 먼저 마음의 문을 열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마음이란 내 안의 세상과 내 밖의 세상을 연결시켜주는 유일한 통로이기 때문입니다.
즉 마음이란 세상을 통해난 창 또는 문이며 또한 때로는 벽이 될 수도 있습니다.
우리가 마음을 열지 않으면 우리안의 에너지가 밖으로 나갈수도 또 우리 주위의 에너지가 우리안으로 들어 올수도 없습니다.
-받아들임
예전에 저는 마음만 열면 다 된다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다시 말씀드리면 마음열기가 '받아들임"이고 '허용'이라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하지만 어떤날 있었던 체험으로 마음열기란 받아들임을 위한 준비임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마음을 연다는 것은 문을 연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세상의 그 어떤 것들도 스스로 그 문을 넘어 올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마음의 문 너머는 순수한 개인의 영역이며 그것을 넘는 다는것은 신이 우리에게 부여한 자유의지를 침해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때문에 설령 우리가 마음의 문을 열어도 우리가 스스로 그것을 '받아 들일' 때까지 그것은 우리안으로 들어 올 수 없습니다.
그렇습니다. 문 앞에 와 있는 그것을 '받아'서 우리의 안으로 '들여'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받아들임'의 진정한 의미입니다.
-신의 속성
받아들임은 깨달음으로 가는 필수조건입니다.
우리가 육체를 가지고서 이 물질세상에 온 이유는 우리가 개념으로 알고 있던 것들을 체험으로 경험하기 위해서 입니다.
더 요약해서 얘기하자면 우리가 신이라는 것을 체험하기 위해서 입니다.
그럼 우리가 체험하고자 하는 그 신의 속성이란 무엇일까요?
신의 속성은 사랑이고 사랑의 속성은 받아들임이고 하나됨입니다.
여기서의 받아들임이란 어떠한 조건도 없는 받아 들임입니다.
이것이야 말로 온전한 사랑의 모습이며 완전한 신의 모습입니다.
신은 모든것을 사랑하며 모든것을 허용합니다.
신은 우리의 모든것을 조건없이 받아들이며 또한 우리에게 무한한 사랑을 퍼부어줍니다.
-지금여기
이것을 바꿔서 얘기해보면
우리가 아무런 조건없이 완전히, 온전히 받아들일때 우리는 신이 되는 체험을 하게 된다는 말입니다.
우리가 이렇게 완전히 열리고 수용하게 될때 우리의 체험은 우리의 순수의식(우리내면의 신)으로 승화됩니다.
이 체험의 다른 이름은 바로 '깨달음'입니다.
우리가 이렇게 신이 되는 체험을 하게 되면 우리가 이 세상에 온 목적은 완성되고 우리는 더 큰 영적인 성장을 위하여 나아 가게 됩니다.
이런 깨달음의 상태에 도달하기 위해서 반드시 몇 생애를 살아야 한다거나 반드시 체험해야 하는 삶의 과정 같은것은 없습니다.
중요한것은 '지금 여기'를 얼마나 온전히 받아 들이고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우리 마음의 문을 열고 우리가 '지금 여기'서 체험하는 모든 것들을 100% 완전하게 이해하고 받아들이게 되면 우리는 깨닫게 됩니다.
때문에 우리가 마음만 열고 온전히 받아들이기만 한다면 언제 어디서든지 깨달을 수 있습니다.
-판단
하지만 우리의 일상은 어떠합니까?
우리는 우리에게 일어나는 여러가지 체험을 이리 저리 재면서 '판단'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내리는 이런 판단은 우리가 갖고 있는 불완전한 지식과 경험, 또는 기억에 의지합니다.
때문에 우리가 내리는 판단은 불완전합니다.
우리가 이렇게 우리의 체험들에 내리는 판단들 때문에 우리의 체험들은 완전의식으로 승화되지 못한채
'불완전'과 '미완성'이라는 꼬리표를 매단채 우리 내면의 저장창고인 '영혼'에 저장됩니다.
이렇게 영혼에 저장된 체험들은 '미완결'되고 '미완성'되어 언젠가 온전히 체험되어 지길(받아들여지질) 기다리게 됩니다.
만약 우리가 이번 생에서 우리 삶의 목적(깨달음-신과의 합일)을 이루지 못하게 되면
우리는 우리가 영혼에 저장해 놓은 '미완성'의 체험들을 가지고 이 땅으로 다시 돌아와 다시 한번 우리의 꿈을 이루기 위해서 도전하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환생의 목적이자 이유입니다.
(환생을 생각할 때 업이나 카르마 또는 죄에 대해서 많은 얘기들이 있습니다.
흔히 업이 마치 어떤 심판이나 인과응보의 개념으로 생각하지만
업이란 오직 자기 자신에 의해서 자기 자신의 영혼에 덧붙여진 무겁고 어두운 기억입니다.
그리고 그 기억을 떼어낼 수 있는 것도 바로 자기 자신 뿐입니다.)
-체험의 목적
'판단'이란 이렇게 우리가 깨달음의 상태로 들어가는 것을 가로 막는 장벽입니다.
그럼 과연 어떻게 하면 '판단'을 멈추고 온전히 '받아들임'의 상태로 옮겨 갈 수 있을까요?
그것은 우리가 삶속에서 겪게 되는 체험의 목적을 이해하면 됩니다.
삶속에서 일어나는 여러가지 체험속에는 오직 하나의 목적만이 존재합니다.
그것은 우리가 신임을 체험할 수 있도록 완전한 '받아들임'을 위한 수단이자 도구일 뿐이라는 것입니다.
즉 체험 자체가 갖고 있는 개별적인 의미는 전혀 중요하지 않다는 말입니다.
우리가 체험을 할때 오직 하나의 질문만이 있습니다.
'나는 지금 이 체험을 얼마나 온전히 받아들이고 있는가?'
좋은 체험이던지 아니면 나쁜 체험이던지 모두 당신을 위한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당신이 신임을 체험하기 위해서 스스로 당신의 인생에 창조한 창조물이기 때문입니다.
즉 당신이 지금 이 순간에 느끼고 있는 그 체험은 신이 당신을 위해서 보내준 선물이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체험의 참 의미를 이해하게 되면 우리는 판단을 멈추고 모든 체험들에게 감사할 수 있게 됩니다.
그리고 이렇게 매일 매일 자신의 삶속에서 일어나는 모든 체험들을 축복하고 감사하게 될때
우리는 더욱 더 열리게 되며 더 많이 받아들일 수 있게 됩니다.
그러다 어느 순간 우리는 우리가 체험하는 '지금 이순간'을 완전히 받아들이기 되고
그 순간 우리는 신과의 합일, 하나됨, 깨달음의 상태로 옮아 가게 됩니다.
혹시 지금 두렵거나 불안하신가요?
그렇다면 아래의 문장을 크게 읽어 보세요...^^
"궁극의 결과는 보장되어 있다"
"실패는 환상이다"
"모든 체험은 스스로의 선택이자 신의 선물이다"
"내 인생의 주인은 나다"
"신과 나는 하나다"
삶은 진실로 마음먹기에 달려 있습니다.
당신은 지금 과연 어떤 마음을 먹고 계십니까? *^^*
2011년 1월 13일 -사과나무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