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제한적 허용의 종말>
안녕하세요? 사과나무입니다....^^
오늘 저는 얼마전에 저에게 떠오른 아주 충격적인 깨달음을 여러분과 나누어 볼까 합니다....^^
며칠전 저는 인간완성님의 퇴출에 대해서 또 다시 운영진을 비난하는 글을 올린 도미노님께 긴 장문의 댓글을 달았습니다.
글 속에서도 밝혔지만 그 이야기들은 사실 인간완성님께 드리고 싶던 이야기였습니다.
그러나 소심했던 사과나무는 인간완성님께 이 이야기를 할까 말까 매일 매일 고민만 하다가
결국 '어짜피 떠나실텐데 그냥 편하게 보내드리자...'며 그냥 가슴에 묻었습니다.
그렇게 인간완성님은 떠나가셨고 신나이사이트도 다시 평온을 되찾아 가는 듯했습니다.
그런데 잠잠하던 게시판에 도미노님께서 다시 불을 당겼고 그 불은 결국
제 마음속에 있던 도미노를 쓰러뜨리고 말았던 겁니다...^^
사실은 그날 많이 피곤했었습니다. 일도 힘들었었고...
또 제가 있는 경산에 눈이 많이 내려서 눈치우느라 고생도하고....
글을 다 쓰고 나니 새벽 3시가 좀 넘었더군요...^^
저의 마음을 도미노님글의 댓글로만 표현하기는 너무 아쉬워서
자유게시판에 "소귀에 경읽기를 해결하는 법!"이라는 글로 따로 올리기도 하였습니다
-충격적인 반전
그렇게 제 마음속에 담겨 있던 생각들을 쏟아 낸뒤에 잠자리에 들었지만 잠이 오지 않았습니다.
전 잠자리에 누워서도 계속 마음속으로 글을 쓰고 있었습니다....ㅎㅎㅎ
(이것은 저의 오랜 습관입니다. 화두가 하나 생기면 일을 할때도 밥을 먹을때도 잠을 잘때도 계속 그 생각을 한답니다..^^)
그러다가 느닷없이 마음속에서 생각 하나가 떠올랐습니다.
"무제한적 허용은 오직 자기 자신을 위한 것이다!"
순간 눈이 번쩍 떠졌습니다. 계속해서 또 다른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자기 자신을 위한 무제한적 허용의 종말은 깨달음이며,
타인을 향한 무제한적 허용의 종말은 죽음이다!"
그렇습니다. 이것이 바로 제가 오늘 여러분과 함께 나누고 싶은 깨달음입니다....^^
며칠전 처음 이 생각이 떠오랐을때 전 너무나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아니, 무제한적 허용의 종말이 죽음이라니?....'
마치 망치로 머리를 한 대 맞은것 같았습니다.
이제 그 충격을 고스란히 여러분께 나누어 드릴까 합니다.
왜냐하면 전 아낌없이 주는 사과나무니까요....ㅎㅎㅎ
-영성의 척도?
많은 영성서적이나 가르침에서 사랑과 허용에 대해 얘기합니다.
그리고 많은 영성인들도 무제한적 허용이야 말로 진정한 사랑이며 깨달음의 길이자 영성의 척도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어떤 이들은 그것을 삶의 목표로 삼기도 하고
또 어떤 이들은 남들에게 그것을 실천하지 하지 못함을 미안해 하기도 합니다.
우리 신나이에도 무제한적 허용을 주장하시는 분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물론 그런 생각에 반대하는 분들도 계십니다. 저 또한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저 또한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의 무제한적 허용은 혼란만을 부추길 뿐이며 시간낭비일 뿐이라고 생각해 왔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 가슴속에는 남들에 대해 그런 무제한적 허용을 실천하지 못함에 자책감과 죄의식을 가져 온것도 사실입니다.
제 가슴은 무제한적 허용은 바람직한 길이 아니라고 말하고 있었지만 다른이들에게 그것을 논리적으로 설명할 자신이 없었습니다.
뭐랄까요? 심증만 있고 물증이 없었다고 할까요? ^^
그래서 무제한적 허용에 관한 오랜 논쟁에도 침묵으로 일관 했습니다.
그런 저의 모습이 때로는 제 자신이 비겁하게 느껴지기도 했었고 또 어떤때는 제 자신의 영성이 바닥으로 떨어지는 듯한 느낌을 받기도 했습니다.
-늦은밤의 깨달음
며칠전 도미노님께 드렸던 글에 전 이렇게 적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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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 허용, 용서..... 다 좋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아직 절대적 사랑, 절대적 허용, 절대적 용서이라는 경지에 오르지 못한 사람들입니다.
정확히 말하자면 신나이언은 그렇게 되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한가지 조건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우리가 그렇게 되기 전까지는 제한적 사랑, 제한적 허용, 제한적 용서를 체험해야만 한다는 겁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절대적 경제에 오르지도 못했는데 그런 절대적 사랑과 허용과 용서를 실천하려 한다면...
그것은 타인이 우리자신의 성장을 방해하거나 더 나아가서는 우리 자신을 파괴하도록 허용하는 것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매우 역설적이지만 우리는 그렇게 절대적인 경지에 오를 때까지 제한적인 사랑을 할 수밖에 없으며 또 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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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이때까지는 막연한 느낌이었습니다.
가슴에서 느껴지는데로 글을 쓰긴 했지만 왜 이렇게 해야 하는지....
어째서 이렇게 되는지를 논리적으로 설명하기는 힘들었습니다....^^
하지만 글을 마치고 난 후 잠자리에 누웠을 때 갑자기
"무제한적 허용은 오직 나 자신을 위한것이다!"라는 생각 하나가 떠올랐고
그 생각 하나가 모든것을 설명해 주었습니다.
며칠동안 생각에 생각을 거듭하였고 고민에 고민을 더했습니다.
그리고 이제 전 여러분께 분명히 말씀드릴 수 있게 되었습니다...^^
"자신을 위한 무제한적 허용의 종말은 깨달음이며, 타인을 향한 무제한적 허용의 종말은 죽음입니다!"
왜냐하면 타인을 향한 무제한적 허용이란 자신이 가진 모든것을 내어 준다는 뜻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가진 우리의 가장 소중한것 까지도요... 그리고 우리가 가진 가장 소중한 것은 바로 '생명'입니다.
때문에 진정한 '무제한적 허용'은 언제나 '생명의 포기'를 의미합니다.
-무제한적 사랑의 실천법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저 사과나무가 오늘부터 '무제한적 사랑과 허용'을 실천하기로 결심했습니다.
그럼 과연 어떤 변화가 생기게 될까요?
첫번째로 전 제가 가진 모든 돈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어야 합니다.
이땅에는 돈이 없어 고통받고 돈을 절실히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그러니 제가 진정으로 무제한적 사랑과 허용을 실천하려고 한다면
제가 가진 돈은 한푼도 남김없이 모두 이웃을 위해 나눠줘야 합니다.
그 다음엔 제가 가진 모든 음식을 굶주리는 사람들에게 나눠 줘야 합니다.
이땅에는 지금 이 순간에도 먹을것이 없어서 고통받는 소외된 이웃들이 너무나 많이 있습니다.
그러니 제가 가진 모든 음식또한 소외당한 사람들에게 나눠 줘야 합니다.
음식뿐만 아니라 내가 가진 집과 자동차, 모든 생활용품들도 다 나눠 줘야 합니다.....
이제 전 정말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이 진정한 무소유를 실천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배가 고프지만 먹을것도 없고 사먹을 돈도 없습니다.
누군가 나를 불쌍하게 생각해서 음식을 나눠준다 해도 전 그것을 먹을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세상에는 여전히 나를 기다리는 굶주린 이웃이 있으니까요...ㅠ.ㅠ
그렇게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지나고..... 일주일이 지나도록 아무것도 먹지 못하고... 아무것도 할 수가 없습니다.
결국 전 무제한적 사랑과 무제한적 허용이란 생명의 포기를 의미함을 깨닫고 생을 마감합니다...^^
이런 비극적인 사랑의 종말은 비단 다른 사람만을 향한 것이 아니라 다른 모든 생명에게도 마찬가지로 적용됩니다.
만약 내가 사람이 아닌 이 지구의 모든 생명을 나의 무제한적 사랑과 허용의 대상으로 삼았다 해도 마찬가지입니다.
지금 당장 내가 나의 왼팔을 잘라 산속깊이 던져 놓는다면 수많은 생명들이 그것에 감사할 테니까요.
결국 나는 나의 팔뿐만 아니라 나의 모든 몸과 나의 모든 피와 나의 모든 생명을 내어 주어야 합니다.
-희생의 댓가
다른 사람과 생명을 향해 무제한적 사랑과 허용을 실천하고자 하는 마음은 아름답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정말로 실현하기 어려운 이상입니다 .
왜냐하면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자신의 생명을 포기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남을 위해 자신의 생명을 희생하는 것은 분명 숭고한 일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비록 불가능하지는 않지만 매우 어려운 일입니다.
세상에는 위기의 순간에 자신의 생명을 받쳐서 다른이의 생명을 구하는 분들이 계십니다.
그 분들의 희생은 숭고하며 아름답습니다.
그 분들은 자신들의 삶에서 되고자 했던 자신이 되는 체험을 선택하였고 그러므로 그분들의 삶은 완성되었습니다.
하지만 무제한적 사랑과 허용이 생명의 포기를 요구한다면
과연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그것을 추구하고 그것을 실천하려 할까요?
타인과 다른 생명을 위해 희생한 댓가가 자신의 죽음이라면
과연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그것을 기쁘게 받아 들일 수 있을까요?
때문에 많은 영성인들이 갖고 있는 "타인에 대한 무제한적 사랑과 허용"에 대한 이상은 환상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무제한적 사랑과 허용'을 외치지만 그 사람들은 전혀 그런 사랑을 실천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아니 그들은 사실 매우 제한적이며 이기적인 사랑과 허용을 실천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죽지 않고 살아 있음이 그 증거입니다.
-참된 사랑과 허용
그렇다면 과연 수많은 영성서적과 가르침에서 말했던 무제한적 사랑과 허용은 대체 무엇일까요?
그것은 다른 사람이나 다른 생명에 대한 무제한적 사랑과 허용이 아니라 바로 '자기 자신을 향한 무제한적 사랑과 허용" 입니다!
자기 자신을 향한 절대적 사랑과 절대적 허용, 절대적 용서야 말로 신과 하나 되는 길이며 깨달음으로 가는 지름길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이렇게 절대적으로 자신을 허용하게 되면 우리는 완전히 깨닫게 되며,
우리가 완전히 깨닫게 되는 순간 나와 남의 구분이 사라집니다.
나와 남의 구분이 없기 때문에 우리가 남을 사랑하고 남을 허용하며 남을 용서하지 않을 방도가 없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 순간부터 남을 완전히 사랑하고 남을 완전히 허용하며, 남을 완전히 용서할 수 있게 됩니다.
이렇게 수많은 영적 가르침에서 말하는 '사랑'과 '허용'은 남이 아닌 자기 자신을 향한 것이자 자기 자신을 위한 것입니다.
그 어떤 영성서적이나 영적 메세지에도 '남을 위해 자신의 생명을 버리라" 든지 "너의 모든 재산을 이웃에게 나눠 줘라!"라는 가르침은 없습니다.
만약 진정으로 타인을 향한 무제한적 사랑과 허용이 깨달음으로 가는 지름길이고 영성의 척도라고 한다면
그 오랜 시간동안 그 수많은 가르침중에 그것이 들어있지 않을 이유가 없을 것입니다.
오히려 '너희의 모든 재산을 헌납하라! 나를 위해 너희의 생명을 버려라!"라는 말은 전형적인 사이비종교가 즐겨 사용하는 방법일 뿐입니다...^^
- 나를 위한 사랑
우리가 깨달음의 경지에 이를 때까지 우리는 남보다 자신을 더 사랑해야 합니다.
이 말은 남을 미워하거나 남을 돕지 말아야 한다는 말이 아닙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서 남을 사랑하고 허용해야 합니다.
하지만 그 보다 더 우리 자신을 사랑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그래야만 우리가 이 세상에 다시 돌아오면서 목표했던 영적인 성장, 영적인 깨달음을 이룰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야만 우리가 진정으로 남을 사랑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사실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을 무제한적으로 사랑하고 무제한적으로 허용한다는것은
우리가 의식적으로 선택하고 행동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그것은 오직 우리를 통해 일어날 뿐입니다!
우리가 우리 자신을 완전히 사랑하고 완전히 허용하게 되었을때,
그것은 마치 아침이 되면 밝은 빛이 온 세상을 비추듯이... 우리를 통해 일어날 뿐입니다.
그것은 진정한 깨달음뒤에 우리에게 찾아오는 선물이자 특권입니다.
그때까지는 우리는 최선을 다해 우리 자신을 사랑해야 합니다.
-사랑의 충돌
우리가 삶을 살아가면서 우리 자신을 위한 최고의 선과 남을 위한 최고의 선이 충돌하게 될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이럴때 우리는 당당히 우리 자신을 위한 최고의 선을 선택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자신을 사랑하고 자신을 허용하며 자신을 용서하는 것이야 말로
우리가 되고 싶은 자신이 되는 지름길이며 궁극적으로 다른 이를 사랑하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때문에 우리가 그런 이기적인 선택을 했다고 해도 자책감이나 죄의식을 느낄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신나이1권에 보면 이것에 대해서 자세히 설명하고 있습니다.
닐이 묻습니다. "어떻게 하면 좋은 인간관계를 만들 수 있습니까?..."
그러자 신이 대답합니다. "이기적인 사람이 되고 이기적인 사랑을 하라....'
그 편이 자신을 희생하는것보다 효율적이며 지속적일 것이라고 말이죠.
희생은 기대를 불러오고 기대가 충족되지 않으면 요구하게 되며, 요구가 관철되지 않으면 싸움이 시작됩니다.
그러므로 희생하지 말고 자신을 위해 살아야 합니다
가장 친밀한 관계인 남녀간의 사랑에서 조차 이럴진데 일반적, 사회적 관계에서의 사랑이란 더 말할 필요가 없을 겁니다....^^
물론 다른 사람을 위해 희생하고 봉사하면서도 진정으로 기쁘고 행복할 수 있다면 그것은 그 사람의 삶에 큰 선물이자 축복이 될것입니다.
하지만 앞에서는 남을 위해 희생 해놓고 돌아서서는 힘들어 하고 괴로워하는 삶이라면
그것은 그 사람의 삶에 커다란 장애가 될 것입니다.
때문에 우리는 자기 자신에게 솔직해 져야 합니다. 그리고 솔직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받아들임과 감사하기
이쯤에서 한가지 꼭 짚고 넘어가야 할 이야기가 있습니다.
이것은 바로 제가 다른 글에서 자주 얘기했던 받아들임과 감사하기에 관한 것입니다.
저는 그동안 많은 글과 대화에서 '받아들임'과 '감사하기'에 대해 언급했습니다.
제 이야기의 요지는 "모든 일은 좋고 나쁨에 상관없이 모두 나 자신이 선택하고 창조한 일이므로 기쁘게 받아들이고 감사해야 한다"입니다.
그런데 이말은 어떻게 보면 "자기 자신을 사랑하고 허용하며 자신을 위한 삶을 살라"는 이 글의 논지와 맞지 않는듯 보입니다.
나에게 일어난 모든일이 내가 선택하고 창조한 일이니 기쁘게 받아 들어야 한다면
나를 힘들게 하고 아프게 하고 고통스럽게 하는 저 사람도 모두 내가 선택하고 내가 창조한 것이니 기쁘게 받아 들어여 하지 않을까요?
물론 100% 맞는 말입니다. 그 동안 우리의 인생속에 등장했던 모든 악역배우들은
모두 우리들의 선택(영혼들의 합의)에 의해 우리의 삶속으로 들어 왔습니다.
때문에 우리는 그 체험을 기쁘게 받아들이고 감사해야 합니다.하지만
우리 자신에게 일어나는 모든 체험을 기쁘고 감사하게 받아 들여야 한다는 말이
지속적으로 나에게 고통과 괴로움을 주는 그 사람(사건)을 계속 허용해야 한다는 말은 아닙니다.
신나이에도 나와 있듯이 그런 무조건적인 허용이 참된 사랑의 표현도 아닐 뿐더러
그런 무분별한 행동은 자신과 상대방 모두에게 전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사고의 반복
나에게 일어난 교통사고가 내 영혼의 숭고한 목적이 담긴 나의 선택이기에 그것을 기쁘고 감사하게 받아들여야 하지만
그렇다고 교통사고가 지속적으로 일어나는 것을 허용해야 한다는 뜻은 아닙니다.
만약 그렇게 한다면 그건 정말로 정신나간 짓이겠지요...^^
우리가 우리의 모든 체험을 감사하게 받아들여야 하는 이유는 그것이 이미 우리에게 "일어났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게 벌어진 모든 일은 우리 영혼의 선택이자 창조의 결과이니 당연히 우리는 그것을 감사하게 받아 들어야 합니다.
하지만 우리가 감사히 받아들인다는 것이 반드시 우리에게 일어난 모든 일이 '좋은일'이란 뜻은 아니며
우리가 그것을 지속적으로 반복해야 할 이유도 없습니다.
우리가 모든 일을 감사하게 받아들인다해도 여전히 모든 체험에는 '좋은 체험'과 '나쁜 체험'이 존재합니다.
좋은 체험이란 우리를 기분좋고 기쁘게 만들며 그것을 지속적으로 체험하고 싶게 만드는 일입니다.
나쁜 체험이란 우리를 기분 나쁘게 만들고 아프게 만들며 그것을 두번 다시 반복하고 싶지 않게 만드는 일입니다.
부정적인 체험에 긍정적인 마음이 더해지면 그것은 우리에게 긍정적으로 작용합니다.
이것은 마치 모든 약은 독이지만 그것을 받아 들이는 우리의 마음이
그것을 약이라 생각하고 먹기 때문에 우리에게 좋은 영향을 발휘하는 것과 마찬가지고
선생님으로 부터 호된 꾸지람을 듣는 일은 아픈 일이지만
우리가 그것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면 우리에게 좋은 약이 되는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하지만 긍정적인 체험에 긍정적인 마음이 더해지면 그것은 시너지효과를 발휘합니다.
즉 (부정적 체험 + 긍정적 사고 = 긍정적 영향)을 만들어 내지만
(긍정적 체험 X 긍정적 사고 = 폭발적인 변화)를 만들어 낼 수 있다는 말입니다.
때문에 우리는 모든 체험에 감사해야 하며 아울러
우리의 삶속에 벌어지는 모든 체험중에 '선한 일과 악한 일', '좋은 일과 나쁜 일'을 구분해 내야 합니다.
그렇게 해서 우리의 삶이 부정적체험을 통한 힘들고 더딘 성장이 아니라
긍정적체험을 통한 기쁘고 빠른 성장이 되도록 노력해야합니다.
만약 우리가 "악이란 존재 하지 않으며 모든 체험은 축복이자 선물이고 모든 사람은 신이 보내준 천사다"라는
한마디 말로 이 세상을 규정하려 한다면 그것은 우리의 삶과 모든 체험을 무의미하게 만드는 일일 뿐입니다.
-분리의식
어쩌면 이런 저의 얘기를 듣고 제가 굉장한 분리의식에 빠져 있다고 비난하시는 분들도 계실겁니다.
많은 영적 가르침에서도 분리의식에 대해 얘기합니다. 분별하지 말고 판단하지 말라고.....
우리는 모두 하나인데 저는 지금 나와 남을 구분하고 좋은 일과 나쁜 일, 선한 일과 악한 일을 구분하라고 말하고 있으니
어쩌면 그렇게 보이는 것이 당연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렇다면 이런 경우는 어떨까요?
우리가 요리를 하다가 실수로 오른손이 칼로 왼손을 벴다고 합시다.
그 순간에 우리가 "아~ 왼손과 오른손이 다 내 몸에 붙어 있는 하나이니까
오른손이 하는 짓을 그냥 허용해야 겠구나..." 하면서
계속 오른손이 왼손을 칼로 베는 것을 허용하고 있어야 하는 걸까요? ^^
아니면 오른손이 하는 짓을 재빨리 막아야 할까요?
이때 우리가 반사적으로 오른손을 멈추고 왼손을 살펴 보는 것이 과연 '분리의식' 때문일까요?^^
과연 우리가 어떻게 반응하는 것이 왼손과 오른손 그리고 그것들이 붙어 있는 몸 전체와
그것의 주인인 영혼에게 도움이 되는 바람직한 일일까요? ^^
사람과 사람의 관계도 왼손과 오른손의 관계와 전혀 다르지 않습니다.
-무제한적 허용의 환상
저는 앞에서 타인을 향한 무제한적 허용의 종말은 죽음이라고 얘기했습니다.
어떤 분들은 그것은 너무 극단적인 예이고 커다란 비약이라고 말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이번엔 제가 한 발 양보해서 생명을 포기하진 않는 무제한적 허용에 대해 생각해 볼까 합니다...^^
자~ 신나이사이트에서 밤이나 낮이나 무조건적인 사랑과 허용을 주장하시는 우리의 도미노님께서
우리나라의 대통령이 되셨다고 합시다....^^
우리의 도미노대통령님께서는 신나이헌장과 목적에 맞는 무제한적 사랑과 무제한적 허용, 무제한적 용서를
국정운영의 기치로 걸고 야심차게 그 첫발을 내디뎠습니다.
도미노대통령님의 첫번째 업적은 바로 "도로교통법폐지"였습니다.
취임첫날, 그는 대한민국 운전자들이 자유롭게 운전할 권리를 짓밟아온 악날한 도로교통법을 폐지했습니다.
이제 우리나라의 모든 운전자들은 자신들이 달리고 싶은데로 마음껏 달릴 수 있게 되었습니다.
교통체증 유발은 물론 에너지낭비의 주범인 신호등이 사라진것은 말 할 필요도 없습니다.
1년후 도미노대통령님은 모든 민형사법률도 폐지하였습니다.
물론 교도소에 수감되어 있던 범법자들도 모두 석방시켰습니다.
그리고 도미노대통령은 새로운 헌법을 만들어 공포했습니다.
"대한민국 헌법 제1조 1항 - "니 맘대로 하세요!"
그리고 며칠뒤에 도미노대통령은 권력을 노린 군부에 의해 대통령직에서 축출되었다는 슬픈 이야기 입니다...^^
-단순한 진리
자~ 과연 이런식의 무제한적인 허용이 바람직한 일일까요?
아닙니다. 이것은 혼란과 고통만을 가중시킬 뿐입니다.
무제한적인 허용이 전혀 불가능한 일은 아니지만
지금 현재 우리의 상태에서 그것은 작동하지 않습니다.
때문에 '무제한적인 사랑과 허용'이란 환상일 뿐입니다.
우리가 무제한적인 사랑과 허용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모든 구성원들이 다른 이들을 해하거나 힘들게 하지 않겠다는 분명한 의지를 갖고 있을때만 작동합니다.
모든 구성원들이 그렇게 하는데 동의하기 위해서는
"남에게 피해를 주는 것보다 남에게 도움을 주는 것이 자신을 위해 더 좋은 일"
이라는 단순한 진리를 깨달아야 합니다.
하지만 지금 현재 우리의 의식수준에서는 그것은 매우 요원한 일입니다.
때문에 우리는 반드시 제한적 허용이란 단계를 거치면서 우리의 의식을 확장시켜야 합니다.
우리 모두가 그 진리에 눈 뜰 때까지.....
-도미노의 파라독스(Domino's Paradox)
다시 재밌는 이야기를 하나 해보겠습니다...^^
무제한적 사랑과 허용을 남발했다가 대통령직에서 쫒겨난 도미노님은
16년동안 군부의 추적을 피해 지리산 깊은 계곡에서 숨어 살았습니다.
그러다가 어느날 보리수나무 밑에서 명상을 하시던 도미노님은
마른 하늘에 날벼락을 맞게 되셨고
그 벼락을 맞은 후유증으로 불현듯 깨달음을 얻으셨습니다...ㅎㅎㅎ
그래서 이제 때가 되었음을 깨닫고 하산하시어
불쌍한 중생들에게 자신을 깨달음을 나누어 주고 계셨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도미노님께서 한 초등학교 운동장에 수많은 군중들을 모아 놓고
'무제한적 사랑과 허용'이란 주제로 강론을 펼치고 계셨습니다.
그런데 강론이 시작되고 약 30분뒤,
부산에서 온 프라툼이라고 하는 미치광이가 자동차를 타고 나타나
"사이비교주 도미노는 물러가라"는 프랭카드를 나부끼면서 군중과 도미노님을 향해 돌진해 오는 사건이 일어난 것입니다.
그 절대절명의 순간!
우리의 깨달음의 현자 도미노님은 깊은 생각에 빠지게 됩니다.
'우쒸~~~ 이거 어떻게 해야 하나? 저 미치광이를 막자니 무제한적 허용을 막는 셈이 되고,
그냥 놔두자니 불쌍한 사람들을 죽이게 되어 무제한적 사랑을 어기는 것이 되고.....
도대체 날 더러 어쩌란 말이야??? 암튼 프라툼은 끝까지 인생에 도움이 안되는 구나....ㅠ.ㅠ'
ㅎㅎㅎ.... 이것은 제가 스스로 '도미노의 파라독스(Domino's Paradox)' 라고 이름 붙인 문제입니다.
참된 허용에 관한 깨달음이 떠오른 다음날 이 이야기가 생각 났는데
너무나 절묘하고 완벽한 문제인거 같아서 제가 아주 마음에 들어하는 얘기입니다.
제가 이 비유를 떠올리는데 도움을 주신 도미노님께서 감사하면서 아울러
밤이나 낮이나 무제한적 사랑과 허용을 외치시는 도미노님의 이름을 영원히 기억하기 위해서
'도미노의 파라독스(Domino's Paradox)' 라고 이름 붙였는데 그 이름까지도 매우 아름답게 느껴집니다..^^
-최고의 선
자~ 여러분이 만약 깨달음 현자라면 과연 어떤 선택을 하시겠습니까?
저는 당연히 차를 멈추고 사람들을 구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개인의 삐뚤어진 자유를 허용하는 것보다 다른 사람의 생명을 살리는 것이 훨씬 바람직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도미노의 파라독스(Domino's Paradox)' '에서 잘 보여지듯이
설령 깨달은 사람이라 할지라도 때에 따라서는 무제한적인 허용을 포기해야 할때가 있습니다.
만약에 무제한적인 허용과 사랑이 충돌하게 된다면 우리는 당연히 사랑을 선택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개인의 자유보다 사랑이 훨씬 중요하고 값지기 때문입니다.
때문에 우리는 삶 속에서 만나는 모든 선택의 순간에서 항상 최고의 선을 선택해야 합니다.
최고의 선이란 더 좋은 일이며, 더 아름다운 일이며, 더 바람직한 일입니다.
이 사랑과 허용의 충돌에 관한 이야기는 '초인생활'에도 나오는데 ,
예수님께서 살육과 강도짓을 일삼던 산적떼들을 사랑의 파동으로 물리치는 일화로 잘 설명되어 있습니다.
-무분별한 허용
우리가 지금까지 믿어 왔던 '무제한적 허용'은 사실 '무분별한 허용'입니다.
무분별한 허용이란 마치 브레이크 없이 달리는 자동차와 같습니다.
브레이크 없는 자동차가 안전하게 달리려면 두가지 조건이 있습니다.
한가지는 모든 차가 똑같은 속도로 달리는 것입니다.
모두 같은 속도로 움직이니 부딪칠 일이 없겠지요?
또 다른 방법은 외계인들이 UFO에 사용하는
초강력울트라슈퍼짱튼튼 합금으로 자동차 차체를 만들어서 어떠한 충돌에도 끄떡없이 만드는 것입니다.
이 두가지 조건이 총족되지 않는다면 브레이크 없이 달리는 자동차는 지옥으로 가는 급행열차가 될 것입니다.
여기서 모두가 똑같은 속도로 움직인다는 것은 사회의 구성원이 모두 같은 의식을 갖고 있음을 뜻하고
절대 부서지지 않는 특수합금으로 차체를 만든다는 말은 깨달음을 얻어 영원히 파괴되지 않는 육체를 완성한다는 말입니다.
이 두가지 경우가 아니라면 무조건적인 허용이란 오직 무분별한 허용이 될 뿐입니다.
-우리의 문제
이제 신나이모임 얘기를 잠시 해볼까요?^^
신나이모임에는 참 다양한 사람들이 계십니다.
모두가 다 특별하고 모두가 다 똑같은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신과 나눈 이야기'라는 같은 동기를 갖고서 모인 사람들입니다.
신나이를 보고 감동했고 그 감동을 자신의 삶에서 이어가길 원하며
궁극적으로 신나이에서 말하는 고진재가 되어 그런 고도로 진화된 사회를 이땅위에 실현하고픈 사람들의 모입니다.
하지만 동기와 목표는 같지만 방법과 과정이 틀리다 보니 사람들끼리의 부딪힘이 많습니다.
이것은 꼭 신나이만의 문제가 아닌 모든 모임들에서 공통적으로 있는 문제일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한국 신나이모임에서는 크고 작은 논쟁과 싸움이 끊이 질 않았습니다.
처음 신나이가 탄생한 뒤부터 지금까지도요.....^^
그러면서 우리 한국신나이는 10년이 넘는 세월동안 아주 더딘 성장을 해왔습니다.
저는 그 이유가 참된 허용에 대한 그릇된 이해 때문이었음을 깨달았습니다.
이것은 이 얘기는 신나이회원분들에게 하는 얘기이자 저 자신에게 하는 이야기입니다.
우리는 그동안 "우리는 신나이를 읽고 사랑을 실천하려는 영성인이다"라는 생각을 하면서
'영성인은 참고 희생하고 허용하고 사랑해야 한다. 그리고 우린 더 참아야 한다. 왜냐하면 우린 신나이언이니까...ㅎㅎㅎ"
라는 생각으로 우리에게 찾아온 수많은 문제들을 덮어 버렸던 것이지요.
그 동안 많은 분들이 신나이사이트에 분란과 혼란을 몰고 왔습니다.
그것은 분명 그 분들과 우리 영혼들의 합의에 의한 공동창조였습니다.
그리고 그런 체험에는 분명 아주 숭고한 영혼의 목적이 들어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그런 영혼의 목적이 무엇인지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고
때문에 그런식의 혼란체험은 주기적으로 우리를 찾아 왔습니다.
그리고 그때마다 항상 참된 사랑과 허용이 또 다른 논쟁거리가 되었지요.
우리의 영혼은 우리가 자신들의 의도를 이해하고 받아 들일때까지 지속적으로 같은 체험을 불러들입니다.
이제 또 한번 인간완성이라는 커다란 태풍이 지나갔습니다. 그리고 저는 이제 확실히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지금까지의 모든 체험은 모두 우리에게 참된 사랑과 허용의 진짜 의미를 기억하게 하기 위한 우리 영혼들의 숭고한 목적이었음을....
물론 그렇지 않은 경우만 빼고요...^^
-신나이산악회
우리 한국신나이모임을 산악회라고 가정해봅시다.
우리 신나이산악회에는 다양한 사람들이 모입니다.
얼굴도 다르고 나이도 다르고 지역도 다르고 직업도 다른 사람들이
자유롭게 만나서 함께 산을 오르면서 친목을 도모해 갑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습니다.
한 회원이 새로 들어왔는데 이 사람은 노래부르는것을 너무 좋아해서 등산을 하면서 큰소리로 노래를 불렀습니다.
어떤이들은 좋아하기도 했지만 또 어떤이들은 시끄럽다고 싫어했습니다.
그러자 그 신입회원이 하는 말이...."아~ 영성산행을 하는 신나이산악회에서 노래도 마음대로 못합니까?'
그러자 옆에 있던 다른 회원이 눈에 불을 켜면서 따집니다.
"아... 듣기 싫다면 안하면 되는거지 뭔 말이 그리 많아. 노래를 하고 싶으면 노래방에 가서 하면 되잖아!"
그러자 옆에 있던 또 다른 회원이 말합니다.
"음... 말이 좀 심한것 같은데요.... 싫어 하는 사람도 있지만 좋아 하는 사람도 있잖아요.
그리고 우리 신나이산악회 규정에 어디 노래 하면 안된다는 규정이 있습니까?"
그러자 또 다른 회원에 말합니다. "우리는 영성산행을 추구하는 신나이산악회이니까 다 사랑으로 생각하고 받아 들입시다."
그렇게 한바탕 소동이 일어난뒤에 운영진의 진화로 논란은 수그러 들었지만 불씨는 여전히 남아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다음번 산행에서는 더 큰 일이 벌어졌습니다.
또 다른 신입회원이 들어왔는데 이 사람은 입만 열면 다른 산악회 얘기였습니다.
물론 신나이산악회에 들어와서도 얼마든지 다른 산악회 얘기를 할 순 있지만
이 사람은 정말 저럴바엔 뭐하러 신나이산악회에 들어왔나 싶을 정도로 개념이 없었습니다.
그러더니 급기야 이 회원은 충격적인 발언을 합니다.
"지금 우리가 가는 길은 좋은 길이 아닙니다. 내가 다른 산악회에서 가봐서 아는데 더 좋은 길이 있어요. 그러니까 그 길로 갑시다."
몇몇 사람들은 동요하기 시작했고 또 다른 회원들은 흥분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몇몇 회원들 사이에서 그 회원을 퇴출시키자는 건의가 들어왔고 결국 운영진회의도 열리고
화장실에서 비상토론도 해봤지만 별다른 진척은 없었습니다.
회원들은 두패로 갈려서 여전히 내가 맞다, 니가 맞다 같은 말만 반복하고 있었으니까요.^^
신나이산악회의 회원들은 산을 아직 반도 오르지 못했습니다.
왜냐하면 아직까지도 문제회원을 어떻게 처리할지에 대해 길고 긴 마라톤회의를 계속하고 있을 뿐이니까요.....^^
비록 비유이지만 전 이것이 지금까지 한국신나이의 모습이자 모순이라고 생각합니다.
한국신나이의 진짜 문제는 수 많은 회원들을 통솔하고 이끌어갈 투명하고 강력한 내부규정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다 보니 혼란이 생길때마다 '신나이정신이 어쩌니...', 신나이헌장이 어쩌니....', '사랑과 허용이 어쩌니....'하면서
이런 애매모호한 것들을 갖고 논쟁을 하게 된것이지요. 그러다 보니 시간은 시간대로 가고.... 힘은 힘대로 빠지고....
산으로 나있는 모든 길은 결국 정산으로 우리를 안내할 것입니다. 거기에 맞거나 틀린길 따위는 없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길중에는 어려운 길과 쉬운 길이 있을 것이며 아름다운 길과 볼것 없는 길이 있을 것입니다.
등산에 나섰으면 열심히 산을 오르면 되는데 우리는 지도책을 들고서 니길이 맞다 내 길이 맞다 싸움만 하면서
우린 결국 같은 자리를 빙빙 맴 돌고 있었을 뿐입니다. 얼마든지 다른 길을 선택할 수 있고 그 길을 갈 수 있습니다.
하지만 어짜피 서로 원하는 길이 다르다면 각자 헤어져서 원하는 길로 가면 될것인데
니길로 가자 내 길로 가자 하면서 싸우는 것은 시간 낭비이자 에너지 낭비일뿐입니다.
그래서 저 사과나무가 감히 건의합니다.
'우는 아이에겐 선물을 안주신다'는 산타할아버지의 확실한 가이드라인처럼
우리 한국신나이도 누구든지 보면 한눈에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는
투명하면서도 강력한 내부규정을 만들것을 건의 합니다.
예를 든다면 욕설, 비방에는 주의 1번, 주의 3번이면 경고 1번, 경고 3번이면 강퇴!와 같이 말입니다....^^
왜 우리에게 이런 제한과 규정이 필요한지는 지금까지 길게 설명 드렸으니 다시 안해도 되겠죠? ㅎㅎㅎ
-선언
"나 사과나무는 이제 나의 삶과 내가 속한 세상에 '남을 위한 무제한적 허용의 종말'을 고합니다.
이제 나는 무한한 사랑과 무한한 허용은 오직 나 자신을 향한 것임을 분명히 이해했습니다.
나는 나에게 일어나는 모든체험이 나의 선택임을 알기에 그것을 감사하며 기쁘게 받아들일 것입니다.
이제 나는 최선을 다해 다른 사람을 사랑하고 허용할 것이며 옹서할 것입니다.
그리고 그 보다 더 많이 나를 사랑하고 허용할 것이며 용서 할 것입니다.
만약 나를 위한 최고의 선과 다른이를 위한 최고 선이 충돌하게 된다면
주저없이 나를 위한 최선을 선택할 것이며 그것으로 인해 어떠한 자책감이나 죄의식도 갖지 않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궁극적으로 나를 위한 선택이 곧 남을 위한 선택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나는 매순간 나를 사랑하고 허용하며 용서함으로서 나의 인생을 기쁨과 환희로 채워 나갈 것입니다.
어느날 나는 온전히 열리게 될 것이고 그 때 내가 곧 남이었음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그리하여 나를 사랑하듯이 남을 사랑하고 나를 허용하듯이 남을 허용하고 나를 용서하듯이 남을 용서하게 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모두 하나이기에 그렇지 않을 방도가 내게 없기 때문입니다."
-마치면서
지금까지 부족한 생각이지만 최선을 다해서 저의 작은 깨달음을 설명드렸습니다...^^
어쩌면 이것은 저 혼자만의 깨달음 일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이 깨달음은 저에게 너무나 크고 놀라운 변화를 가져다 주었습니다.
제가 참된 사랑과 허용에 대한 깨달음을 얻고 난 뒤에
저는 마치 제 인생의 매우 중요한 숙제를 마친 기분이 들었고
또한 저를 오랬동안 괴롭혀 왔던 매우 어려운 수학문제를 푼것 같은 기분이 들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길을 잃고 방황하다가 다시 집으로 돌아간 느낌이 들기도 했구요....^^
이제 저는 두번 다시는 '무제한적 허용'이라는 달콤한 말에 속아서 제 인생을 허비하는 실수를 되풀이 하지 않을 것이며
제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그렇게 되는 것을 지켜보지도 않을 것입니다.
이제 저는 터무니 없는 '무제한적 사랑과 허용'을 주장하는 사람들과 맞서 싸울 힘과 지혜를 얻었습니다.
아니 그런 사람들에게 이 글을 읽게 하는 것만으로도 매우 강력한 효과가 있을 거라 믿습니다...^^
마지막으로 저를 이런 귀한 깨달음으로 인도해 주신 인간완성님과 도미노님
그리고 신나이에서 악역을 맡아주신 모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의 말씀을 전합니다.
특히나 인간완성님께서는 가장 완벽한 시간에 등장하셔서 가장 완벽한 방법으로 존재하시다가
가장 완벽한 시기에 가장 완벽한 방법으로 신나이를 떠나셨습니다.
님이 아니었다면 저는 결코 이 귀한 깨달음에 도달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신은 오직 우리에게 천사만을 보내주었다는 신나이의 구절이 다시 한번 가슴을 울리고 있습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정말 감사하구요,
이 글을 읽으시는 모든 영혼들의 여정에 신의 사랑과 기쁨이 함께 하시길 진심으로 기원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2011년 2월 20일 -사과나무올림-